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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고물 수집해 5남매 키웠는데..." 아프리카 가족 비극에 주민들도 울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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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서 화재로 나이지리아 남매 4명 숨져
15년 동안 무역일하며 '코리안 드림' 희망
코로나로 사정 나빠져... "이유 없이 무시"
한국일보

27일 새벽 경기 안산시 단원구의 한 빌라에서 불이 나 나이지리아 국적 남매 4명이 숨졌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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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한 가족이었는데 믿기지가 않네요.”

27일 오전 11시 경기 안산시 단원구의 한 다세대주택 앞. 잿더미가 된 집 앞을 서성이던 나이지리아 출신 치네두씨가 울먹였다. 이날 새벽 화재로 숨진 나이지리아 국적 남매 4명의 부모와 10년 넘게 알고 지냈다는 그는 “아이들과 놀아줬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비극적 소식을 듣고 사고 현장을 찾은 또 다른 나이지리아인 마이클씨도 “열심히 살던 가족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다”며 황망해했다.

주민들 "웃음 잃지 않고 화목했던 가족"


외국인 거주지 안산 선부동 다세대주택에서 불이 나 나이지리아 국적의 어린 4남매가 숨졌다. 부모가 두 살 난 막내를 챙겨 대피하는 사이 11세 여아와 7세ㆍ6세 남아, 4세 여아는 불길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변을 당했다.

숨진 4남매의 아버지 A씨는 15년 전 한국에 와 고물을 수집해 모국 나이지리아에 내다 파는 일을 했다.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그는 늘 웃음을 잃지 않고 가족을 부양했다. 동네에서 마트를 운영하는 김모(80)씨는 “A씨는 가게에 올 때마다 밝게 인사하고 빈 병이나 가스레인지 같은 고물을 가져갔다”며 “초콜릿을 자주 한 움큼씩 사갈 만큼 자녀들도 사랑하는 아빠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A씨 가족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10년 가까이 가족을 알고 지낸 주민 정모(58)씨는 “중고품을 수거해 파는 일 자체가 큰돈이 안 되는데, 감염병 사태가 길어지면서 사정이 더 나빠졌다”고 안타까워했다. A씨가 늘 허름한 옷차림으로 다니다 보니 이유 없이 무시하거나 해코지하는 사람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월세 저렴해 외국인 많이 거주

한국일보

27일 오전 나이지리아 국적 어린이 4명이 숨진 경기도 안산 한 빌라 화재 현장에서 경찰과 소방관계자들이 합동감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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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가 난 곳은 반월공단 인근 외국인 밀집지역이다. 원래는 중앙아시아 등 고려인이 많이 모인 마을이었지만, 최근 들어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출신 거주민 유입이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근 다문화센터 관계자는 “공단에서 가깝기도 하고, 안산의 끝자락이라 월세가 저렴해 외국인들이 속속 터전을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불이 난 다세대주택도 40여 명의 입주민 대다수가 외국인이었다. 건물 1층은 반지하 구조여서 A씨 가족이 화를 입은 2층이 사실상 1층이나 마찬가지였다. 가족은 부엌 겸 거실과 작은 방 2개로 이뤄진 약 40㎡(12평) 크기의 집에서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50만 원을 내고 살았다.

하지만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웃음과 꿈을 잃지 않던 일곱 가족의 ‘코리안 드림’은 화마에 산산조각 났다. 주민 B씨는 “이 동네는 집주인을 빼고 다 외국인”이라며 “이역만리 타지에서 어렵게 삶을 일구는 이들이 왜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하늘이 원망스럽다”고 한탄했다.

김소희 기자 kimsh@hankookilbo.com
임명수 기자 s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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