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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사설] ‘안전한 곳’이 안전하지 않은 새로운 양상의 금융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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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독일 최대 투자은행 도이체방크의 주가가 한때 14.9% 폭락하고 부도 가능성을 보여주는 지표도 8.3% 치솟는 등 신용 위기에 몰렸다. 이 은행 대출 중 미국 상업용 부동산 비율이 높다는 이유로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고조됐기 때문이다. 도이체방크는 10분기 연속 흑자를 낼 정도로 재무 구조가 탄탄하지만, 이런 대형 은행마저 투자자들은 믿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가장 안전하다고 여겼던 미 국채가 도리어 위험 요인이 되고, 많이 유치한 예금이 부메랑이 돼 은행을 파산시키고 있다.

최근 세계 금융 불안의 요인이 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은 종전 금융 위기 공식을 깼다. 회수하지 못하는 부실 채권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자산 절반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미 국채에 투자했다가 파국을 맞았다. 미 기준금리 급등으로 금리와 거꾸로 움직이는 국채 가격이 폭락해 장부상 평가 손실을 입었고, 이를 불안하게 여긴 예금주들이 일제히 예금 인출에 나섰다. 이 은행은 예금 지급을 위해 미 국채를 만기 전에 파는 바람에 큰 손실을 본 끝에 문을 닫고 말았다. 미 국채를 들고 있는 세계 금융회사들도 지금 당장 드러나지 않을 뿐 다들 평가상 손실을 보고 있다.

파산 직전에 몰렸던 크레디스위스 은행이 UBS에 인수되는 과정에서도 투자자들은 뒤통수를 맞았다. UBS가 크레디스위스가 보유한 ‘코코본드(조건부 자본증권)’의 지급 책임을 지지 않고 상각 처리하는 바람에 채권 22조원이 휴지 조각이 됐다. 채권이 주식보다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충격에 투자자들은 다른 은행들의 자본 구성도 의심하기 시작했고, 그 불똥이 도이체방크로 튀었다.

지난해 말 우리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흥국생명이 5년마다 관례적으로 조기 상환하는 신종 자본증권 5억달러를 무기한 상환 연기하겠다고 해 시장이 패닉에 빠졌다. 언제 어떤 경로로 위기가 촉발될지 모르는 세상이다. 민간 부채가 GDP의 2.2배인 3700조원에 이르고, 제2 금융권 부동산 PF가 110조원에 이르는 상황에서 잘못 불이 붙으면 큰 위기로 비화할 수 있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곳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은 새로운 양상의 금융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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