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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국방장관까지 해임에...이스라엘, 네타냐후 ‘사법 장악 시도’에 등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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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내부서도 반발...“트럼프의 대법원 장악 후폭풍에서 배워라”

여론의 극심한 반대에도 사법부 장악을 위한 법 개정을 밀어붙여 온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정부 내 반발과 시위 격화로 궁지에 몰렸다. 국방장관의 공개 비판에 이어 여당 출신 정부 인사와 일부 외교관이 반대 의사를 밝히고, 대통령마저 입법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네타냐후 총리는 전날 국방장관을 해임하며 입법 강행 의지를 보였으나, 도리어 야당과 국민의 반발만 더 키우고 말았다. “연정 내 극우를 제외한 온건파까지 등을 돌리며 네타냐후가 정치적 고립에 빠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간 하레츠와 더타임스오브이스라엘 등 현지 언론은 27일(현지 시각) “네타냐후 총리가 곧 사법 개혁 추진과 관련된 중대 발표를 할 예정”이라며 “(사법 개혁 입법을) 현 단계에서 중단하는 안이 유력하다”고 보도했다.

네타냐후의 우파 리쿠드당과 극우 오츠마 예후디트(유대인의 힘) 등이 손잡고 지난해 12월 출범한 우파 연정은 올해 초부터 대법원의 권한을 대폭 줄이는 법 개정을 추진해 왔다. 이스라엘 헌법에 반하는 의회의 입법을 막을 수 있는 대법원의 ‘사법 심사’ 권한을 사실상 박탈하고, 여당이 법관 인사를 담당하는 법관선정위원회를 통제하는 것이 골자다. 요르단 강 서안의 이스라엘 정착촌 확대 등 이스라엘 극우가 추진해온 민족주의적 정책 입법에 대법원이 위헌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스라엘에는 헌법재판소가 따로 없고, 대법원이 그 기능을 대신한다.

조선일보

"사법 장악 말라" 국민 저항에… 궁지 몰린 네타냐후 - 26일(현지 시각)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이 국기를 들고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사법 장악' 강행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네타냐후 총리가 사법 장악 중단을 촉구한 국방장관을 해임하자 예루살렘과 텔아비브, 하이파 등 주요 도시에서 수십만명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 일부는 네타냐후 총리 관저 진입을 시도하기도 했다. /로이터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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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야당과 법조계, 시민단체 등은 이를 “입법 독재를 위한 사법 파괴”로 규정하고 지난 석 달간 격렬한 반대 시위를 벌여왔다. 이스라엘 예비군도 이에 동조, 최근 ‘복무 중단’을 선언했다. 이스라엘 최대 노조단체가 총파업을 선언하면서 27일부터 상점과 은행, 공항은 물론 이스라엘 해외 공관마저 문을 닫기 시작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정부와 여당 내에서도 반발이 쏟아졌다.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은 25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안보 위기를 초래하는 사법 개혁 시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미국 뉴욕 주재 아사프 자미르 이스라엘 총영사는 “이스라엘의 민주주의와 자유가 파괴되고 있다”며 사임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26일 공개 항명(抗命)한 갈란트 장관을 불러 해임을 통보하고, 트위터에 “복무를 거부하는 자들에게 결연하게 맞서야 한다”는 글을 올리며 사태 수습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날 오후 국방장관 해임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예루살렘과 텔아비브, 하이파, 베르셰바 등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기습 시위를 벌이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수십만명의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밤새 시위를 벌였고, 일부는 네타냐후 총리의 관저 앞으로 몰려들어 난입을 시도했다.

이스라엘 국민은 “집권당이 사법부를 장악하면 아무 견제 없는 ‘입법 폭주’가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우파 연정의 사법 장악 시도를 비판해온 하레츠는 “이스라엘은 트럼프 정부의 대법원 장악에서 배우라”는 칼럼을 싣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임기 중 대법관 3명을 자기 입맛에 맞는 보수 성향으로 임명한 후 대법원이 잇따라 보수적 판결을 내리며 정치 편향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미 대법원은 최근 임신 중절 전면 금지가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조선일보

지난 2월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각료 회의에 참석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사법부 장악을 위해 법 개정을 강행하려던 그는 연립정부 내 온건파들의 반발로 정치적 위기에 처했다. /로이터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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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네타냐후가 이끄는 리쿠드당 출신 미키 조하르 문화부 장관은 27일 “네타냐후 총리가 사법 개혁 중단을 결정하면 당은 그의 결정을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극우 오츠마 예후디트 당대표인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은 “네타냐후 총리가 사법 개혁 입법을 중단하면 연정에서 탈퇴하겠다”고 위협했다. 이날 수도 텔아비브의 의회 앞에선 정부의 사법 장악에 반대하는 8만여 명이 모였고, 예루살렘엔 친(親)네타냐후 단체들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랍비 17명이 “사법 개혁을 관철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미국 백악관은 27일 “이스라엘 상황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며 “하루빨리 타협점을 찾을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밝혔다. 앞서 미 국무부와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도 지난달 이스라엘 상황에 우려를 표명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우파를 대표하는 인물로 역대 최장기 집권 총리.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를 졸업하고 1988년 하원 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만 46세의 나이에 최연소 총리에 올라 1996~1999년, 2009~2021년 6월까지 총리직을 수행했고, ‘반(反)네타냐후’ 연정에 밀려 실각한 지 1년 반 만인 지난해 12월 극우 성향 정당들과 손잡으며 3차 집권에 성공했다. 극우·민족주의 성향의 우파 연정은 현재 이스라엘 의회(크네세트)에서 총 120석 중 64석을 차지하고 있어 야당 협력 없이도 단독 입법이 가능하다.

[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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