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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스타트업 굶기는 과잉행정”…정부 지원금 매년 연체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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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난한 ‘K-창업’, 과잉행정과 데스밸리]①

10년차 맞은 정부 스타트업 지원사업

지원금 지급 연체 문제 반복 ‘고질병’

“선진국형으로 지원 제도 뜯어고쳐야”

[이데일리 지영의 기자] 정부의 지원 자금을 받아 도약을 준비하는 초기 스타트업들이 과잉행정 절차에 몸살을 앓고 있다. 도입된 지 10년이 지났음에도 고질적인 지원금 연체 문제가 반복되는 상태다. 투자업계에서는 정부의 낡은 기업 지원 절차가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과잉행정이 만든 스타트업 보릿고개...임금체불·기술개발 멈춤 ‘속 앓이’

27일 벤처투자(VC)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운영하는 대표적인 초기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 ‘팁스(TIPS)’에서 해마다 지원금 지급 연체 문제가 빈번히 발생해 초기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파악됐다. 팁스는 유망 기술을 보유한 초기 기업 육성을 위해 사업화를 위한 초기 투자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수혜 대상으로 선정되면 기업별로 최대 5억원의 연구개발비(R&D) 및 창업사업화 자금 1억원, 해외마케팅 비용 1억원 등을 지원받게 된다.

이데일리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문제는 팁스가 도입 10년차를 맞은 오래된 사업임에도 고질적인 지원금 연체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지급되어야 할 지원금이 평균 2~3개월 연체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지원금 지급 전까지 정부 부처 및 직접적 관리 기관 간에 거치는 행정 절차가 길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팁스 사업의 예산 배정 부처는 기획재정부, 직접적 사업 운영 기관에 자금을 출연하는 사업관리 부처는 중소벤처기업부다. 엔젤투자협회 및 창업진흥원이 사업관리 기관으로 정부와 초기 스타트업의 가교 역할을 한다. 기재부에서 심의를 거쳐 배정한 예산이 중기부로 배정되고, 중기부에서 결재 과정을 거쳐 해당 예산을 다시 사업관리 기관으로 자금을 출연한다. 기관의 사업비 계좌에 정부 자금이 입금되면 지급 시스템을 통해 포인트로 전환해 개별 기업에게 전달되는 방식이다. 기본적으로 기재부의 예산 승인 및 배정 과정에서 지연이 자주 발생하는 데다, 중기부나 관리기관인의 배정·결재 지연이 몇 차례만 발생해도 스타트업들은 평균 수개월 이상을 자금 없이 버텨야 한다.

팁스 운영사를 맡은 VC 관계자는 “해마다 스타트업들이 힘들다는 건의가 곳곳에서 올라가지만, 매번 돌아오는 답변은 동일했다. 정부 사업이니 어쩔 수 없고 이 정도 지연은 감안하라는 것이다”라며 “사업 시행 10년이다. 이제는 대안을 모색할 때가 한참 지났다”고 말했다.

지급 지연으로 스타트업이 지는 부담은 상당히 높다. R&D 비용의 경우 초기 스타트업의 인건비 및 주요 지출에 쓰인다. 대금을 치르지 못해 기술 개발이 멈추거나, 주요 연구역들의 월급이 체불되는 사태가 발생한다는 평가다.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음에도 보릿고개에 걸려 넘어지는 셈이다. 지원 대상이 대부분 기술을 개발 중인 초기 기업인 점을 감안하면 금융권 대출을 이용하는 등의 대안이 없음은 물론이다. 기업 신용도, 자산도 담보가 될 만한 것이 없는 상태여서다. 보릿고개를 넘기기 위해 스타트업 대표가 지급 지연 기간을 버티기 위해 사비를 지출해 사업 대금 및 직원 급여를 지급해야 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팁스 대상 기업 관계자는 “물론 정부에서 사업을 키워보라고 예산을 주시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하는 일임을 안다”면서도 “다만 지원 체계가 더 개선된다면 기업들이 초기 사업을 더 원활히 키워나갈 수 있을 것이고, 환경도 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을 보탰다.

“지급 연체, 개선 어려운 일 아냐. 대안은 여럿”...문제는 정부의 개선 의지

업계에서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지원금 지급 체계를 개편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정부의 R&D 예산 지원 방식은 여러 가지다. 팁스처럼 정부가 행정 절차를 거쳐 직접 심의 및 지급하는 형식의 경우 지연 문제가 빈번하지만, 매년 일정 비율을 출자해 외부 금융 기관에 위탁해두거나 펀드를 통해 지원하는 대안도 마련할 수 있다는 평가다. 해외 기술기업 지원사업 형태의 경우 대체로 정부 출자를 통해 만든 R&D펀드에서 자금이 집행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연계 금융사를 붙여 ‘중간 사다리’를 놓는 것도 방법이라는 조언도 나온다.

한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는 “지원금 지급 연체가 빈번한 시기에 쓸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주는 것도 방법이다. 정부 심의로 증권사나 VC가 정부 보증하에 개입해서 브릿지론을 제공하는 방식도 고려해볼 수 있다”며 “어차피 명확하게 지원확약이 있는 정부지원금이라면 금융기관이 보조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사다리를 놓는 유연한 사고도 필요해 보인다.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나”라고 조언했다.

이와 관련 기재부 및 중기벤처부 측에서는 다소 지연이 있었으나 현 체계에 큰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내놨다. 정부 측은 “연초 자금 출연 과정 등에서 행정절차상 이유로 자금 지급이 다소 지연됐다”면서도 “정부는 스타트업에 대한 자금지원을 차질없이 진행하고 있다. 사업비 교부 절차를 신속히 진행해 사업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향후에도 민간주도 혁신성장을 위한 스타트업 지원을 지속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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