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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동은엄마' 박지아의 우아한 본캐 "'더 글로리' 최강 빌런? 욕심 안 냈어요"[인터뷰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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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더 글로리' 속 동은엄마를 보며 "기 빨린다"는 말을 실감했던 것 같다. 복수가 삶의 목표가 된 여자 동은(송혜교)에게, 그녀는 최초의 가해자였다. 학폭 가해자들에게 딸을 팔아넘기다시피 한 것으로 모자라 학교에서 내쫓겠다며 기어코 동은의 집에 쳐들어온 알코올 중독 엄마에게 "연진이보다 나쁘다" "분노와 짜증이 인다"는 반응이 빗발쳤다. 다 지독하게 연기한 덕분이겠지만, 반은 미친 듯한 동은엄마를 연기한 배우 박지아가 내심 걱정도 됐다. 하지만 "잘 봐줘서 고맙다"고 그저 작게 미소지은 검은 단발의 그녀는 여전히 조심스럽고 온화했다.

"대본을 받으면 전체가 보고싶어요. 그래야 제가 어디에 어떻게 서있어야 되는지 알 수 있으니까. 전체를 보니 나쁜 인물이 너무 많은 거예요. 별별 인간이 종류별로 다 있어요. 학폭, 마약쟁이, 갑질, 가정폭력… 세상 나쁜 애들은 다 뽑아놨더라고요. '내가 뭘 해도 그렇게 세지 않겠다' 생각했어요. 욕심 내도 나머지를 넘을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동은이의 엄마'를 충실히 해내자고 생각했어요. '내가 나쁜 여자를 보여주겠어!' 해 봐야 나쁜 사람이 너무 많아서, 또 잘 하는 분이 많을 거라서.(웃음)"

그녀의 짐작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적재적소에 놓인 '더 글로리'의 빌런들은 강력하고도 찰졌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박지아의 동은엄마는 막강했다. 파트2 공개 후 반응이 터졌다. 박지아는 "제가 제일 나쁘다고 해서 '제가요?' 했다"면서도 ."연락 없던 친구며, 예전 함께한 감독님께도 연락이 오더라"며 웃었다. "파트2에서 존재가 좀 보였구나, 관심을 좀 더 받는 중인가보다 했어요."

2002년 데뷔한 박지아는 작품마다 뚜렷한 인장을 새긴 다채로운 연기로 정평난 배우다. 레전드 공포물 '기담'(2007)의 엄마 귀신, '곤지암'(2018)의 원장귀신 등 호러영화 속 독보적 캐릭터로 뚜렷이 존재감을 새겼고, 여러 영화는 물론이고, 드라마 '닥터스'(2016), '이판사판'(2017~2018), '붉은 단심'(2022), '클리닝업'(2022) 등 장르를 불문한 드라마에서도 활약했다. '더 글로리'에선 동은엄마 정미희 역을 맡았다. 김은숙 작가와는 첫 인연이다. 막연히 인연을 기대치 않았던 대 작가에게 처음 받아본 대본은 충격이었다.

"대본이 워낙 뜨거웠어요. '이 사람 뭐지? 이렇게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궁금해질 정도였어요. 이 공을 내가 무너뜨리면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배우들도 느꼈을 거예요. 살과 피가 녹아있는 것 같은 대본인데,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가 없는. '내 몫을 해내지 않으면 배우 자격이 없는 거야' 했지요. 저에게는 쇼크였어요."

부담 때문이었을까. 처음엔 동은엄마에 대해 잘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전형적인 싸구려 여자로 보일까봐, 그냥 '못된 엄마' 이렇게 설명될까봐 고민이 많았다"는 박지아는 첫 대본리딩을 떠올렸다. 동은이 송혜교 뒤엔 동은엄마 박지아가, 연진이 임지연 뒤엔 연진엄마 손지나가 앉았다. 4시간 가까이, 쉬는 시간에도 자리를 뜨지 못한 박지아에게 김은숙 작가가 다가왔다. '너무 어렵다, 어디서 본 뻔한 인물을 연기할까봐 겁이 난다'는 박지아에게 김 작가는 말했다. "음, 맘대로 해요. 제가 추천했어요."

여지가 없을 것이란 지레짐작에서 벗어나자 대본만 보며 했던 고민에 숨통이 트였다. '다 보시고 선택하셨구나' 알고 나니 자신감을 가지고 생명을 넣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미쳤다.

"알코올중독 센터를 가볼까 했는데, 결국엔 자료 영상을 체크하긴 했지만 가지 않았어요. 제일 중요한 건 파트1의 모습이 파트2에선 변하게 나오게, 2000만원에 동은이를 팔아넘긴 여자가 18년 뒤엔 어떻게 됐을까. 제가 정리하고 타당성을 만들어야 했어요. 남편 없는 미혼모가 미용실에서 일하다 남자도 바뀌고 하는 빤한 스토리만으로 채울 수가 있나요. 사기도 당하고 종교도 빠지고 별별 경우의 수를 종합해가며 좁혀나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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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아는 한참을 걸어다녔다 한다. 대사를 중얼거리며 동은엄마를 떠올리고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다보면 힘을 응축할 시간이 온다. 몸이 구부정해지고, 삐딱해지고, 목소리가 바뀌어 갔다. 알코올-마약 중독자들의 전후 사진에서 힌트를 얻어 몸무게도 최대한 뺐다. 파트1과 파트2 사이 무려 7kg을 줄여 40kg대 생애 최저 몸무게를 만들었다. 반짝이 의상 또한 박지아의 아이디어다. 강렬한 탈색 헤어는 대본부터 묘사가 있었단다.

"의상 피팅하는 데 직접 갔죠. 이 여자, 빛나고 싶었던 젊은 시절이 있었을 것 같다. 빛나지 못한 한이 옷에 있으면 어떨 해서 옷마다 반짝이를 달면 어떨까 했어요. 또 하나 벨트요. 내복을 입어도 벨트를 하고 있을 것 같았어요. 몸에 선을 긋고 싶었는지 모르겠어요. 저만의 서브텍스트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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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아가 대면해 호흡을 맞춘 배우는 크게 두 사람이다. 연진이 임지연, 그리고 동은이 송혜교. 그는 임지연을 두고 "그렇게 예쁜 사람이 있나 싶더라"며 "맞춰볼 때보다 슛 할 때 잘 하더라. 준비를 치밀하게 하고 그 안에서 놀아버리는 스타일이다. 촬영장 분위기도 밝아졌다"고 회상했다.

엄마와 딸로 거듭해 만났던 송혜교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두 캐릭터의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들어간 촬영이 거듭될수록 감탄했다. 박지아는 "송혜교씨가 정말 연기를 잘한다. 어찌나 잘 하는지 속으로 '연기 레슨을, 개인교습을 받나봐' '그냥 이렇게 잘하진 않겠지' 하다가 물어도 봤다. 그런건 아니라고 하더라"며 "깜짝 놀라고 충격받고 정신차렸다. 스스로에게 까불지 말아라 그랬다"고 혀를 내둘렀다.

"송혜교는 톱스타이자 연예인이잖아요.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이다 생각했는데, 만나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보니 완전히 인물에 들어가 있었어요. 저도 도움을 굉장히 많이 받았어요. 제가 엄청 준비해서 던졌는데 이 친구가 다시 받아서 던져주는데, 정말 재미있는 순간이고 희열의 순간이죠. 작업할 때 그만큼 행복한 순간이 없어요. 완전히 동은이였어요. 저를 엄마로 보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각양각색 미친 악인들과 긴 드라마를 끌고가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런데 해내더라고요."

술에 취해 엉망이 된 동은엄마가 집에 불을 지르며 발악하고 동은이 절규하는 장면은 박지아 또한 잊을 수 없다. 살을 뺴고 체력이 금방 바닥나 너덜너덜해진 가운데서 촬영한 장면이다. 박지아는 "송혜교 너무 멋있었다. 리허설 때는 단조로운 느낌이었는데 큐사인이 들어가니 광기가 있었다"면서 "저 역시 쏟아냈다. 갈 데까지 간 쓰레기 엄마지만 이렇게 살고 싶었던 건 아닌데 하는 마음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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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은이가 앞에서 우는 사람은 저밖에 없어요. 그러면 저도 그럴수밖에 없게 해야 하잖아요. 동은이는 뭐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저를 어찌하지 못해요. 천륜, 그걸 얼마나 끊어내고 싶겠어요. 그런데 그것이 안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제가 그 이유가 되어줘야 했어요. 동은이가 우는 사람도, 무뤂을 꿇는 사람도 엄마뿐이에요. 그렇다면 제가 거기까지 만들어줘야 했어요."

다 쏟아낸 뒤 정미희가 정신병원에 갇히는 장면이 박지아의 마지막 촬영이었다. 8개월을 그렇게 달렸는데도 박지아는 동은 엄마를 놓기가 싫었다고 한다. 그제야 뭘 좀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매니저와 옥수수를 나눠먹는데, 안 먹던 곡기와 소금기가 한꺼번에 들어가니 손이 곱는 느낌마저 들었다고. 그렇게 박지아와 작별한 동은엄마는 '더 글로리'의 최강 빌런으로 시청자와 만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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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작품 덕분입니다. 최고 빌런이라 봐 주시면 너무 감사할 뿐이죠. 제가 해야 할 일은 복기의 시간을 갖는 것, 이제 복기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이건 이 드라마가 처음인 것 같아요. '그때 이럴 걸, 저럴 걸' 그런 생각이 안 들고, 더 할 방법도 없었어요. 후회는 없어요."

강렬한 빌런 캐릭터로 다시 주목받았지만, 그녀는 다채로운 색깔의 배우다. 전소민과 노래방을 뒤집어 놓은 '클리닝업'의 3부 노래방 씬처럼 그녀의 유쾌하고 즐거운 명장면들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박지아는 "제가 웃긴 것도 많이 했는데 '센캐'가 또!"라며 "이거 하고 나면 재밌는 거 할 수 있겠죠? '기담'이 다시 회자되고 있던데 '거기까진 가지 말자' 하면서 '멈춰, 멈춰' 하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결과가 좋으니까 이렇게 작품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죠. 시청자 분들이 보시는 대로, 그것이 답 같아요. 좋게 봐주시는 말씀도, 질책하시는 말씀도 다 들어서 앞으로 가고자 하는 길에 잘 토대로 만들어야죠.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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