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최초’ 개척해온 차준환, 7번 클린점프로 세계선수권도 첫 메달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시 피는 한국피겨] 차준환, 한국 남자피겨 새 역사 쓰다

남자 피겨 싱글 은메달 쾌거, 15세때 공식대회 첫 4회전 점프 등

한국 ‘최초의 기록’ 수차례 작성… 프리서 0.08점 감점 ‘클린 연기’

동아일보

세계선수권 은메달 차준환이 25일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경기를 마친 뒤 자신의 점수(196.39점)를 확인하면서 놀라고 있다. 차준환은 프리스케이팅 개인 최고 점수를 받았다. 23일 쇼트프로그램에서도 개인 최고점(99.64점)을 기록한 차준환은 합계 296.03점으로 은메달을 땄다. 한국 남자 선수 최초의 세계선수권 메달이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내게도, 한국 남자 선수들에게도 첫 메달이라는 게 너무 영광스럽다.”

한국 남자 피겨 싱글에서 ‘최초의 길’을 걸어온 차준환(22·고려대)이 또 하나의 기록을 남겼다. 차준환은 25일 일본 사이타마 슈퍼아레나에서 열린 2023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196.39점을 받아 이틀 전 쇼트프로그램(99.64점)과 합산 296.03점으로 은메달을 차지했다. 한국 남자 선수의 세계선수권 싱글 첫 메달이다. 차준환은 지난해 베이징 겨울올림픽에서 세웠던 자신의 역대 최고점(282.38점)도 경신했다.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 모두 개인 최고점이었다.

23일 쇼트프로그램을 마쳤을 때 차준환은 우노 쇼마(일본·104.63점), 일리아 말리닌(미국·100.38점)에 이어 3위였다. 전문가들은 차준환의 메달 획득을 전망하면서도 프리스케이팅에서 순위를 끌어올리기는 힘들 것으로 봤다. 프리스케이팅 연기에 쿼드(4회전) 점프 6개를 넣은 말리닌의 기본 기술점수(106.66점)가 차준환(85.40점)보다 20점 이상 높았기 때문이다. 여섯 가지 쿼드 점프를 소화하는 말리닌은 ‘쿼드의 신’으로 불린다. 차준환의 프리스케이팅엔 쿼드 점프 2개가 포함됐다.

말리닌은 세 가지 쿼드 점프에서 회전 수 부족 판정을 받았다. 이 때문에 기술점수(107.08점)에서 차준환(105.55점)을 1.53점 앞서는 데 그쳤다. 차준환은 트리플 플립 점프에서 에지 사용에 따른 주의를 받아 수행점수가 0.08점 깎인 것을 제외하고는 완벽에 가까운 연기를 펼치면서 구성점수(90.74점)에서 말리닌(80.98점)을 크게 앞섰다. 차준환은 이날 4회전 점프를 두 번, 3회전 점프를 다섯 차례 깔끔하게 성공시키며 가산점 20.25점을 챙겼다. 프리스케이팅 참가자 24명 중 가산점이 20점을 넘은 선수는 차준환이 유일했다.

동아일보

차준환이 한국 남자 선수 최초로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 싱글에서 메달을 목에 걸었다. 23일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싱글 쇼트프로그램 경기에 나선 차준환이 마이클 잭슨의 메들리 곡에 맞춰 연기하는 모습. 사이타마=게티이미지


차준환은 “오늘 굉장했다. 무엇보다 내가 만족하는 경기를 펼쳤다. 후련하게 경기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며 “연습했던 대로 해나가려 했다. 실수하더라도 집중해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날 ISU는 영화 007 사운드트랙 메들리에 맞춰 연기한 차준환에 대해 “한국 선수 최초로 세계선수권 메달 획득의 기회를 앞두고 있었는데 제임스 본드처럼 침착했다”고 평가했다.

동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동안 차준환은 한국 남자 피겨에서 ‘최초의 기록’을 여러 차례 작성해 왔다. 15세이던 2016년 공식 경기 첫 4회전 점프를 성공시켰다. ISU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과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첫 메달도 차준환이 따냈다. 세계선수권 톱10에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린 선수도 그였고 4대륙선수권 첫 우승도 차준환의 몫이었다.

차준환은 베이징 올림픽 직후 열린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 또 한 번 개인 최고기록 경신에 도전했었다. 하지만 공식연습 첫날 부츠의 끈을 고정하는 후크가 부러졌다. 임시로 수리한 스케이트를 신고 출전했는데 쇼트프로그램에서 17위에 그친 뒤 프리스케이팅은 기권했다.

차준환은 “이번에도 대회를 준비하면서 같은 곳이 또 부러져 여기 오기 전에 스케이트를 바꿔야 했다”며 “지난해에는 부츠 때문에 기권했지만 오늘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보여드렸다. 이런 경험이 나를 더 성장하게 해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차준환의 은메달로 한국은 내년 세계선수권 남자 싱글 출전권 3장을 확보했다. 차준환은 “베이징 올림픽이 끝나고 동료 선수, 가족들에게 ‘다음 올림픽 때는 한국 남자 선수들 티켓 3장을 얻고 싶다’고 말했었는데 오늘이 그 시작인 것 같아 너무 기쁘다”고 했다.

이번 대회 금메달은 우노(301.14점)에게, 동메달은 말리닌(288.44점)에게 돌아갔다.

‘꽃피는 연아 키즈’… 이해인, 10년만에 세계선수권 메달

여자 싱글 은메달 목에 걸어
김예림 유영 등도 꾸준히 좋은 성적


‘피겨 여왕’ 김연아(33)는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뒤 은퇴했다. 하지만 김연아가 한국 피겨에 뿌린 씨앗은 10년가량 지난 올해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고 있다.

동아일보

이해인. 사이타마=신화 뉴시스


‘연아 키즈’의 대표주자인 이해인(18·세화여고)은 24일 일본 사이타마 슈퍼아레나에서 열린 2023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싱글에서 220.94점(쇼트프로그램 73.62점, 프리스케이팅 147.32점)을 받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우승자 사카모토 가오리(일본·224.61점)에게 근소하게 뒤졌다.

김연아 이후로 한국 선수가 피겨 세계선수권에서 메달을 딴 것은 이해인이 처음으로 10년 만이다. 김연아는 세계선수권에서 모두 6개(금 2개, 은 2개, 동 2개)의 메달을 수확했다. 마지막 메달은 2013년 세계선수권의 금메달이다.

이해인은 지난달 ISU 4대륙선수권대회에서도 210.84점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 역시 한국 선수로는 김연아 이후 14년 만의 정상 등극이었다. 이해인은 아홉 살 때 김연아가 출연한 아이스쇼를 보고 피겨 선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해인뿐 아니라 김예림(20·단국대), 유영(19) 등도 세계 무대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에서 9위를 한 김예림은 그해 ISU 그랑프리 5차 대회 NHK 트로피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여자 선수의 그랑프리 대회 우승은 김연아 이후 처음이었다. 김예림은 지난달 4대륙선수권에서는 이해인에 이어 은메달을 수확했다. 올 시즌 다소 부진하지만 유영도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는 김연아 이후 최고 성적인 5위까지 올랐다.

동아일보

신지아. 대한빙상경기연맹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주니어 무대에서도 새싹들이 쑥쑥 자라고 있다. 신지아(15·영동중)는 지난달 캐나다 앨버타주 캘거리에서 열린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싱글에서 총점 201.90점으로 2위를 차지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2위다. 같은 대회 아이스댄스에서는 임해나(19)-예 콴(22) 조가 은메달을 따내며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 이 종목 시상대에 올랐다.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엔 피겨 최강국인 러시아 선수들이 참가하지 않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제재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피겨가 질과 양 모두에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금의 분위기를 이어간다면 한국 피겨는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겨울올림픽에서도 메달을 기대해 볼 만하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