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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착취의 현장"…얼룩말 '세로' 탈출 소동에 동물원 환경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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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3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구의동 주택가에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탈출한 얼룩말 세로를 포획한 어린이대공원 관계자들이 세로를 태우고 공원으로 돌아가고 있다. 독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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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얼룩말 ‘세로’가 동물원을 탈출한 소동을 계기로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동물을 가두어 놓는 방식의 동물원 환경에 대해 되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6일 서울어린이대공원 등에 따르면 지난 23일 오후 수컷 그랜트 얼룩말 '세로'가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동물원에서 우리를 부수고 탈출해 서울 시내를 활보하다 붙잡혀 3시간여만에 돌아왔다.



이후 2019년생인 세로가 두 살 때 엄마를, 세 살 때는 아빠를 잇달아 잃었다는 사연이 전해졌다. 홀로 지내면서 급격히 외로움을 타기 시작한 세로는 옆집 캥거루와 싸우기 일쑤였고 밥도 잘 먹지 않았다.

세로의 복귀 후 대공원 측은 재발 방지를 위해 울타리 소재를 목재에서 철제로 바꾸고 높이도 더 높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래 암컷 얼룩말과의 합사도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서울어린이대공원 허호정 사육사는 24일 JTBC와 인터뷰에서 “지금 세로는 다행히 회복이 잘 돼서 건강하지만 심리 상태가 사실은 완전히 삐져 있는 상태”라며 “간식도 일단 안 먹는다는 표현을 확실히 하고 시무룩하게 문만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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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전, 얼룩말 세로가 생활하는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의 초식동물마을 우리. 왼쪽 목제 울타리 너머에는 캥거루가 생활하고 있다. 최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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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얼룩말 탈출 소동을 계기로 초원을 달려야 할 얼룩말이 다시 좁은 동물원에 갇히게 된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이 이어지면서 동물원 환경을 비판하는 글이 서울시설공단 홈페이지 다수 올라왔다.

한 네티즌은 “도심 한복판으로 탈출한 얼룩말이 이상한 게 아니라 동물원이라는 것 자체가 동물권 개념이 없던 시대의 잔재”라며 “환경을 개선하거나 해외 생츄어리(야생동물 보호시설)에 보내야 한다”고 썼다.

다른 네티즌은 “동물원에 동물 산책로를 마련하라”거나 “세로가 여자친구를 만나기 전까지만이라도 얼룩말 친구들이 있는 곳에서 지내게 해달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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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환경을 개선하거나 동물원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동물권 단체를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번 소동과 관련해 동물자유연대는 공식 SNS에 ‘도심 속 얼룩말 이상한가요. 동물원이라는 이상한 장소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동물자유연대는 “사막에서 정글, 북극부터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동물원에 전시되고 있는 동물들의 고향은 참으로 다양하다. 콘크리트 벽에는 그들의 고향을 닮은 벽화가 그려져 있고 시멘트 바닥에는 바위나 빙하 모양을 한 조형물이 설치되어있다”며 “가짜 고향을 흉내낸 사육장에서 동물들은 텅빈 눈으로 멍하니 관람객들을 바라보거나 무기력에 빠져있고, 정신병에 의한 이상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고 했다.

이어 “얼룩말이 도심 속 차도를 달리는 모습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듯 모든 동물에게는 진짜 어울리는 장소가 있다”며 “그 장소가 비좁은 케이지 안이나 유리장 너머 사육장이 아닌 것은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동물원에서 태어난 두 살짜리 얼룩말 ‘세로’에게 난생 처음 달려본 울타리없는 세상은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까”라며 “동물원은 그들에게서 헤엄치고 달릴 자유를, 하늘을 날고 산에 오를 기쁨을 앗아가야 만들 수 있는 착취의 현장”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섣불리 동물들을 자연으로 돌려보내거나 동물원을 없애라는 주장은 위험한 발상이란 반론도 있다.

신남식 서울대 수의과대학 명예교수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동물원에서 잘 크고 있는 동물이 야생으로 가면 먹이를 찾거나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 등을 모두 새로 배워야 해 동물로서는 매우 괴롭다”고 설명했다.

또한 “안전이 보장된 울타리 높이를 갖추고 행동 풍부화 프로그램 등을 통해 정신적·육체적 건강을 지켜주는 게 동물원 동물들의 처우를 위한 일”이라며 “동물원은 교육적·정서적 측면의 기여도 크다”고 덧붙였다.

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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