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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푸틴 “벨라루스에 핵 배치”…美의원은 “한국에 전술핵 재배치 고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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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냉전 붕괴 후 30여 년 만에 국외에 핵무기를 배치하겠다고 선언, 미국과 서방에 대한 핵 위협 강도를 또 한번 끌어올렸다. 미국과의 핵무기 통제 조약(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발표한 지 한 달 만이기도 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5일(현지 시각) 국영 TV 인터뷰에서 “벨라루스에 러시아의 전술 핵무기를 배치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이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며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이스칸데르 미사일 여러 개와 전술핵 탑재가 가능한 항공기 10대를 이미 벨라루스에 보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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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월 17일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 관저에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회담을 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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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에 있는 역외 영토이자 발트 함대의 기지가 있는 칼리닌그라드에 구(舊)소련 시절부터 핵무기 저장고를 갖추고, 핵무기를 실을 수 있는 미사일과 순양함, 폭격기를 두고 있다. 하지만 구소련의 핵미사일이 러시아에 반환된 1996년 이후 러시아가 추가로 나라 밖에 전술핵을 배치하는 것은 처음이다.

유럽 국가들은 이번 조치가 사실상의 ‘핵 확산’을 유발할 수 있다고 보고 우려하고 있다. 독일 일간 디벨트와 프랑스 주간 르누벨옵세르바퇴르 등은 “푸틴이 벨라루스 핵 배치라는 새 카드로 핵 위협의 수준을 높이려 한다”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의 대응 가능성을 시사했다.

미국 의회에선 한국에 미국 핵무기를 배치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미국 연방 상원 외교위원회의 2인자 격인 공화당 간사 제임스 리시 의원이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 핵무기를 한국에 재배치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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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리시 의원


미국 연방의회 중진이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문제를 직접 제기하고 나선 것은 바이든 행정부 들어 처음 있는 일이다. 25일 미국의소리(VOA) 방송 보도에 따르면, 리시 의원은 이 방송에 이메일을 보내 “북한의 잦은 미사일 시험이 바이든 행정부를 안이하게 만들었지만 이 시험을 보통 일로 봐서는 안 된다”면서 “최근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는 여러 단·중거리 미사일 시험과 동반해 이뤄졌고 이 무기 중 다수는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런 시험들의 속도와 다양성은 북한이 ‘전시 사용(wartime use)’을 모의 시험하고 있으며 미국의 동맹국들에 자신이 무력 충돌의 확대를 주도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려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리시 의원은 “북한의 이런 목적을 허용하지 않으려면 바이든 행정부가 동맹과의 핵 기획·작전 메커니즘만 확대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미국 핵무기의 한반도 재배치 역시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한·미 양국 정부는 현재 핵전력 운용상의 공동 기획·실행 메커니즘 확대를 주로 논의하고 있는데 이것만으로는 북핵 위협에 맞서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취지다.

바이든 행정부는 그간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에 대한 직접적 언급을 삼가면서, 관련 질문이 나오면 “우리의 목표는 한반도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라든가 “미국의 모든 방어 역량을 동원해 한국에 확장 억제를 제공하겠다”는 식으로 답해왔다. 미국 핵무기의 한국 내 재배치 가능성을 배제하는 취지의 답변으로 부정적 기류를 전달한 것이다. 그 배경에는 핵무기 비확산을 중시하는 미국 민주당 행정부의 성향과 1991년 이후 미국이 전술핵무기를 대거 폐기해 재배치를 검토할 전술핵무기가 마땅치 않다는 현실적 이유가 함께 작용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워싱턴DC의 북핵 전문가 중에서도 적의 탐지·요격이 어려운 공중·해상 플랫폼에 탑재하고 있는 전술핵을 한국 내 지하 벙커로 옮기면 오히려 억지력이 떨어진다는 등의 이유로 한반도 재배치에 부정적인 사람이 많은 편이다.

반면 공화당 측에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가 본격화된 10여 년 전부터 종종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를 대안으로 거론해 왔다. 미·북 군사적 긴장이 한껏 고조됐던 2017년 9월 당시 상원 군사위원장이었던 고(故) 존 매케인 의원은 CNN 방송 인터뷰에서 “한국 국방장관이 불과 며칠 전에 전술핵 재배치를 촉구했다”며 “그것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7년 10월 맥 손베리 하원 군사위원장도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를 만나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며 우리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내 핵무장 여론이 높아지면서 워싱턴DC의 분위기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미국 3대 싱크탱크 중 하나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지난 1월 발표한 ‘미국의 대북 정책 및 확장 억제에 대한 제언’이란 보고서에서 “저위력(low-yield) 핵무기의 한반도 재배치를 위한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며 “이를 위한 준비 작업과 관련한 운용 연습(TTX)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당장 전술핵 재배치를 하지는 않더라도 그 가능성에 대비한 준비 작업을 시작할 필요는 있다는 뜻이었다.

[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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