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기찻길 따라 줄줄이 깔린 ‘검은 카펫’…여기는 세상에서 가장 긴 발전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스위스 기업 선 웨이즈는 최근 철로 사이 공간에 태양광 전지판을 까는 기술을 개발했다. 철로 사이 공간을 이용하면 태양광 전지판 때문에 주변 미관이 손상되는 일을 피할 수 있다. 선 웨이즈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스위스 신생벤처기업 ‘선 웨이즈’
철로 사이에 태양광 전지판 뉘어
전기 생산하는 기술 개발해 ‘눈길’

평범해 보이는 기찻길, 그 위를 사람이 빨리 걷는 속도에 가깝게 열차가 서서히 움직인다. 특별할 것 없는 모습에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 때쯤, 카메라의 시선이 열차 아래로 파고든다. 그러자 뭔가 바쁜 움직임이 포착된다.

납작하고 네모난 ‘검은 카펫’ 같은 물체가 열차 바닥에서 내려오더니 철로 사이의 오목한 공간에 들어가 한 장씩 잇따라 눕는다. 마치 밥상에 놓인 젓가락 한쪽과 다른 한쪽 사이를 벌린 뒤 신용카드 여러 장을 허리띠처럼 길게 이어붙이는 듯한 모습이다. 열차에서 생긴 쓰레기를 버리거나 철로를 정비하는 일은 아니다. 분명 일반적인 열차 운행 중에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이 모습은 스위스 신생벤처기업 ‘선 웨이즈’가 최근 인터넷에 공개한 영상의 일부인데, 철로 사이에 태양광 전지판을 설치하는 작업을 개념적으로 보여준다. 철로 사이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아 주변 경관을 해치지 않는다. 전지판 설치 때문에 자연을 훼손할 일도 없다. 그동안 주목받지 않았던 ‘노는 공간’이 태양광 발전을 빠르게 확대할 새로운 길을 열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노는 공간 활용해 미관 훼손 없어
철로, 전지판 사이즈와 안성맞춤
열차 아래 장치 달아 자동 세척도

■ ‘노는 공간’에서 전기 쏙쏙

과학전문지 인터레스팅 엔지니어링 등은 최근 스위스 기업인 선 웨이즈가 태양광 전지판을 철로 사이에 여러 장 깔아 전기를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전했다.

태양광 발전은 대표적인 재생에너지로, 탄소감축에 확실한 효과가 있다. 하지만 태양광 전지판을 산이나 들에 기둥을 박아 지붕처럼 세워야 하는 게 문제다. 태양광 전지판을 설치하기 위해 산림을 밀어내는 등 환경 문제를 일으킨다는 시비가 있다.

이 때문에 도심의 건물 같은 인공물에 태양광 전지판을 설치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이번엔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시선이 문제다. 검은색 일색인 색깔 때문이다. 투명한 태양광 전지판도 개발 중이지만, 아직 연구 단계다.

그런데 철로 사이에 태양광 전지판을 깔면 이런 문제가 사라진다. 땅바닥과 밀착한 철로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아 주변 미관을 해칠 일이 없다. 경제적인 효용 가치가 있거나 환경적으로 보호해야 할 이유가 있는 곳도 아니다. ‘노는 공간’이라는 얘기다.

게다가 표준 크기의 태양광 전지판을 밀어넣기에 철로 사이는 안성맞춤이다. 선 웨이즈는 자신들이 설치하는 태양광 전지판의 폭이 1m, 길이가 1.7m라고 밝혔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철로 폭은 1.435m이다. 태양광 전지판을 깐 뒤 도구를 작동시켜 설치 작업을 할 만한 공간적인 여유가 충분하다. 선 웨이즈는 전용 장비를 갖춘 열차를 이용해 자동으로 태양광 전지판을 설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람이 열차를 슬슬 몰고 가기만 하면 알아서 철로 사이에 태양광 전지판이 쏙쏙 들어간다는 뜻이다.

태양광 전지판 표면을 때때로 닦는 일도 지나가는 열차 아래에 자동 세척장치를 달아 해결한다. 보통의 태양광 전지판은 오염이 심해지면 사람이 걸레로 닦아내야 하지만, 철로 사이에 들어간 태양광 전지판은 청소 도구를 갖춘 열차를 통과시키면 그만이다.

경향신문

스위스 기업 선 웨이즈가 구상한 전용 열차가 태양광 전지판을 잇따라 설치하는 상상도. 이 회사는 태양광 전지판을 스위스 전역의 철로에 설치하면 연간 전력 수요의 2%를 감당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선 웨이즈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5317㎞ 스위스 철도망에 깐다면
대형 발전소 몇 개 분량 전력 생산
5월 서부 기차역에 첫 설치 계획

■ 대형 발전소 덜 짓는 효과

선 웨이즈는 총 길이 5317㎞에 이르는 스위스 내 철도망에 태양광 전지판을 깐다면 축구장 760개에 맞먹는 면적을 확보할 수 있다고 봤다. 이렇게 해서 생산할 수 있는 전력은 연간 1TWh(테라와트시)로 선 웨이즈는 추산했다. 스위스 전체 전력 수요의 2%다. 대형 발전소 몇 개에 해당하는 전력량을 철로 사이에 깐 태양광 전지판에서 뽑아낸다는 뜻이다.

영국과 이탈리아 기업도 유사한 연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스위스 로잔연방공대 연구진과 협력 중인 선 웨이즈는 태양광 전지판을 손쉽게 자동 설치할 수 있는 이번 기술로 특허를 얻었다.

선 웨이즈는 회사 공식자료를 통해 “유럽에는 26만㎞, 전 세계적으로는 100만㎞의 철로가 있다”며 “행정적인 허가만 받는다면 2030년까지 유럽 내 철로 수백㎞에 태양광 전지판을 설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선 웨이즈는 우선 올해 5월 스위스 서부의 한 기차역 근처에 태양광 전지판을 처음 설치할 계획이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 채용부터 성차별, 27년째 OECD 꼴찌 이유 있었다
▶ 뉴스 남들보다 깊게 보려면? 점선면을 구독하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