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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소녀의 시점으로 어른이 되어 느끼는 감정들의 연원을 얘기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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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칭 여자아이 시점 연작소설집 낸 손보미 작가 인터뷰

동아일보

최근 10대 소녀들의  내면 세계를 다룬 연작소설집 ‘사랑의꿈’(문학동네)을 펴낸 손보미 작가. 그는 22일 인터뷰에서 “이번 소설집에 등장하는 ‘나’라는 인물을 통해 (어른이 된) 독자들이 지금 느끼는 감정의 연원을 파악해 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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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어 느끼는 수치심, 상실감 등 감정의 연원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최근 출간된 소설집 ‘사랑의 꿈’(문학동네)으로 돌아온 손보미 작가(43)의 말이다. 지난해 8월 추리소설의 색채를 띤 장편 ‘사라진 숲의 아이들’을 선보인 그는 이번 단편집에서 10대 소녀 ‘나’의 내면 이야기를 1인칭 시점으로 펼쳐놓는다.

22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그는 “우린 어린시절을 일생에서 가장 보호받는 시기라고 여기지만 돌이켜보면 사소한 위험에도 노출돼 있었고 어이없게 무언가를 빼앗긴 경험도 있다”면서 “어른이 되어 느끼는 대부분의 감정들은 사실 우리가 이미 어릴 때 한 번쯤 겪어봤던 것들”이라고 했다.

손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초등학교 시절 불조심 관련 글로 상을 탄 그에게 “네가 아니어도 상을 받았을 것”이라는 선생님의 말은 낭패감과 비정함을 안겨줬다고 회고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어리다는 이유로 무언가를 쉽게 빼앗기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했던 경험에서 출발했다”고 했다.

1인칭 여자아이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잇달아 쓴 것은 추리 장르였던 전작만큼이나 작가에게 새로운 시도였다. 손 작가는 “‘여자 아이’의 이미지와 소재 거리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고 했다. 자전적 이야기는 아니지만 한때 경남 마산의 평범했던 10대 소녀였던 작가의 내면의 목소리가 소설에 담겼다.

소설 속 ‘나’들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변화하는 주변 세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헤쳐나 간다. 단편 ‘밤이 지나면’에서 부모의 이혼으로 외삼촌 집에 맡겨진 ‘나’는 낯선 여자에게 자신을 데리고 ‘사라져 달라’고 애원한다.

지난해 이상문학상 수상작이자 이번 소설집에 실린 6편의 단편 중 하나인 ‘불장난’에서 부모의 이혼과 재혼을 겪는 ‘나’는 옥상에 올라가 종이에 불을 붙인다. 손 작가는 “소외감이나 수치심,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 등을 해소하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표제작 ‘사랑의 꿈’과 ‘해변의 피크닉’은 하나의 이야기를 각각 엄마와 딸의 시선으로 풀어냈다.

2009년 등단한 15년차 소설가인 그는 소설집 ‘그들에게 린디합을’(2013년) ‘디어 랄프 로렌’(2017년)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2018년) 등을 내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문학동네가 주관하는 젊은작가상을 2012년부터 4년간 연달아 받기도 했다.

지치지 않고 써내려가는 비결을 묻자 손 작가는 “소설을 쓸 때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작업이 재밌느냐, 없느냐’”라고 말했다. “지나치게 완벽을 추구하면 스트레스를 받잖아요. ‘내일 또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제게는 성공작이예요. 항상 ‘이 작품은 나의 최고작이 아니다’라는 말을 가슴에 품고, 하루에 2000자 이상 쓰는 걸 목표로 씁니다. 처음 구상할 때는 2000자 채우기도 힘들지만 작품 중반쯤 가면 하루에 4000자를 쓸 때도 있죠.”

그는 장대한 이야기보다는 개별적인 한 인간이 겪어야 했던 일을 소설로 풀어내왔다. 손 작가는 “충분히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서 “아이들이라면 충분히 보호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벌어지는 일들을 아이들의 관점에서 쓴 게 이번 작품”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예기치 못한 전개로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하는 순간이 많은 작품을 쓰고 싶다. 소설을 통해 인간의 본질, 존재성을 이끌어내는 작가가 되겠다”며 웃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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