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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서울 국평아파트 3억이면?"…분양시장 흔드는 김헌동표 '원가공개' 실험[부동산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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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원가 공개 파장, 아파트 보는 관점·거래 시장 변혁으로 이어질까

업계 "공기업 행보 의미 있지만 민간과는 다른 구조" 호소도

뉴스1

김헌동 서울주택공사(SH공사) 사장이 서울 강남구 개포동 서울주택도시공사에서 '내곡지구 사업결과 평가' 발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2022.9.22/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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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집값이 폭등하던 문재인 정부 한창 피크 때도 서울에 아파트를 지으면 3억5000만원이면 충분히 지을 수 있었어요. 서울보다 땅값이 절반으로 낮은 경기도 아파트 분양가가 10억원이 넘으면 그걸 사도 되겠느냐. 지금 대부분의 건설사와 공기업은 분양원가를 공개 못 하고 있는데, 우리가 원가 공개를 하면 시민들은 그걸 이용해서 아파트를 분양받거나 살 때 잣대로 활용할 수 있죠."

김헌동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은 지난 21일 본사 회의실에서 기자 설명회를 열고 마곡9단지 분양원가를 공개하면서 이처럼 말했습니다. 김 사장이 SH의 아파트 분양 원가를 공개한 건 2021년 11월 취임 이후 이번이 벌써 7번쨉니다.

그간 준공 시기별, 강남·강서·강동구 등 지역별로 공개한 분양원가는 대체로 비슷한 수준입니다. 2012년 1~2월 착공해 2014년 7~8월 준공한 강남구 세곡2-1단지와 내곡1단지 분양원가는 평(3.3㎡)당 1040만원 안팎. 2014년 준공한 마곡 4단지 1121만원, 2017년 준공 오금1단지 1077만원, 2020년 준공 고덕강일4·고덕강일8·마곡9단지는 1134만~1291만원이었습니다.

분양수익도 공개했습니다. 이번에 공개한 마곡9단지의 경우 한 채당 3억3600만원(건물값 2억1000만원, 땅값 1억3500만원)인 전용 59㎡ 433가구를 5억800만원에 분양해 1억7200만원씩 34%의 수익률을 보였다는 설명입니다. 원가 4억7300만원(건물값 2억8200만원, 땅값 1억9100만원)인 전용 84㎡는 2억200만원의 이익을 보고 6억7500만원에 529가구를 분양, 29.9%의 수익률을 올렸다고 밝혔습니다.

서울 '국민평형' 대 아파트를 짓는 데 3억5000만원 안팎이면 충분하다는 자신감은 여기서 나온 거죠. '아파트값 거품 빼기'는 김 사장이 약 20년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 몸담으며 몰두해온 숙원사업이기도 합니다. SH를 시작으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각지 도시공사 등 공기업이 분양원가를 공개하고, 민간도 이에 자극받으면 집값이 정상화될 수 있다는 게 그가 일관되게 해온 주장입니다. 실제로 마곡9단지 인근 민간 분양 전용 59㎡의 호가는 11억5000만원, 84㎡는 14억9000만원에 매물이 올라와 있어 공공과 차이가 큽니다.

◇동일 입지·평형 민간 분양가 14억…아파트값 논란 '정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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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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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SH는 지난달 청약 사전예약을 받은 고덕강일3단지처럼 토지임대부 분양주택, 이른바 '땅은 빌리고 건물값만 내는 반값 아파트'를 내년까지 최대 9000채 공급한다는 계획입니다. 당장 5월 마곡에서 사전예약이 나올 예정이며, 은평과 서초 등 여러 지역이 물망에 오르고 있습니다.

최근 재건축 사업장 입주 지연 사태로 불거진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 지점인 공사비도 직접 검증하는 업무를 서울시로부터 요청받고 준비 중인 것으로도 알려졌습니다.

모두가, 이른바 '강남 개발'이래 반백 년간 한국 경제의 뇌관이 돼온 아파트값 논란을 정조준하는 사업들인 셈이죠.

김 사장발(發) 아파트 원가 공개는 자연히 민간 건설사의 아파트값 '진짜 가격' 관련 궁금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15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발표한 '2월 말 기준 민간아파트 분양 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3.3㎡당 평균 분양가는 3044만원이었습니다.

SH가 공개한 원가의 3배 정도인데, 실제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 9억9333만원(KB부동산 집계, 2월 기준)으로 김 사장이 자신한 '국평 3억원'의 3배입니다. 서울 아파트의 '몸값'이 3배 뻥튀기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올 수 있는 대목입니다.

다만 민간 건설업계에서는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공기업은 미분양이 나도 세금 보전이 가능하고 임대로 돌려도 되지만, 민간 건설사는 엄연히 '리스크 테이킹(risk-taking)', 위험감수비용을 오롯이 짊어지는 데다, 브랜드 경쟁도 해야 해 사업 구조 자체가 다르다는 설명이죠.

◇건설업계 "폭리 취한 것 아냐…공공과 경쟁 구조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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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2023.3.15/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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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한 관계자는 "SH는 땅도 맘대로 할 수 있고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비용도 세금으로 하는 반면, 우리는 금융과 홍보·마케팅 등 여러 제반비용이 들어간다"며 "민간 기업은 경영적 판단에 대한 비용도 든다. 민간과 공공 차원에서 원가란 개념이 많이 다를 수 있다"고 귀띔했습니다.

예컨대 20~30%씩 수익이 나는 사업장이 있는가 하면 마이너스(-)가 되는 사업장도 있는데, 섣불리 원가를 공개했다가 수익이 난 사업장만 '폭리'를 취한 것처럼 부각될 우려도 있다는 것이죠.

다만 그는 "공기업은 세금으로 공공사업을 하는 곳이니까 시민에게 투명하게 밝히는 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원가 공개의 경우에는 민간과 공공은 너무 다른 구조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공개하는 건 맞지 않을 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요새는 예전 같지 않게 고객들의 눈높이도 높아졌기 때문에 사물인터넷(IoT)과 여러 스마트 기술 및 기능, 인조대리석 같은 자재, 마감품질, 시스템 에어컨 등 섬세하게 신경 쓸 게 많다. 브랜드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이라며 "결국은 소비자가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지점에서 형성되는 만큼, 고급화 수요에 맞춰 입지 좋은 땅에 고급 자재를 사용해서 지은 확실히 차별화된 아파트까지 획일적으로 '3억 5000만원' 하는 식으로 묶을 순 없다는 의미로도 읽힙니다. 사실 시장에서 선호하는 아파트는 '역세권·대단지·브랜드' 제품이란 현실도 무시할 순 없는데요.

이 관계자는 "자동차도, 핸드폰도, 노트북도, 치과 진료 등 제품들이 다 원가 공개를 하지 않는데 아파트만 원가를 공개하라는 건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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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공공주택으로 알려진 싱가포르 공공주택 '피나클 앳 덕스톤' 50층 전망대에서 김헌동 SH 사장과 함께 싱가포르 도심을 내려다보고 있다. (서울시 제공) 2022.8.2/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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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vs. 투자…아파트 보는 관점까지 바꿀 수 있을까

아파트만 이처럼 원가 논란이 불거지는 데엔, 아파트가 필수재인 의식주 중 하나를 차지하는 주거의 일반적인 형태인 데다, 그 값이 너무 폭넓게 '널뛰기'하는 까닭이 있습니다. 몇 년 전 우리는 자고 나면 아파트 호가가 1000만원씩 오르는 것을 분명 경험했죠.

이와 관련해 부동산 전문가인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위원이 내놓은 설명이 인상적인데요, 한국에선 부동산이 '살기 위한 홈(home)'이 아니라 '사고파는 하우스(house)'가 된 지 오래라는 지적입니다. 특히 저금리 국면에선 금리 부담이 없으니 누구나 약간의 자본으로 뛰어드는 투자대상이 된 거죠.

아파트값을 올리는 주체가 비단 건설사만은 아닌 겁니다. 이런 점에서 SH의 원가 공개 시도는 단순히 민간 건설사를 대상으로 꺼내든 '칼날'쯤으로 치부되기보단, 아파트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고 주택 거래 시장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새로운 자극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바람을 가져 봅니다.

sab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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