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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나의 해방일지' 박해영 작가 "드라마 속 인물 모두 내 안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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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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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서울 대신증권에서 열린 '제9회 대신크리에티브포럼'에서 박해영 작가가 대담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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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해방일지' 속의 염미정, 염창희, 엄마까지도 제 드라마 속 모든 등장인물은 다 제 안에 사는 여러 사람들의 한 부분이에요. 제가 여러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고 잘 들여다보면 자기 안에 여러 사람이 살아요. 따뜻한 마음도 있고 누구 하나를 처참하게 망신주고 싶은 마음도 있고, 선도 악도 독도 다 있어요."

'나의 해방일지', '나의 아저씨', '또 오해영' 등 여러 편의 '인생 드라마'를 써낸 박해영 작가는 자신의 '평범함' 속에 있는 마음을 깊이 들여다 보고 그 일부로 인물을 창조해 낸다. "인물의 대사를 쓰려면 작두를 타듯 그 인물에 빙의를 해야"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이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또 자신의 마음 속 조각을 꺼내 그 안에 자신과 다른 속성 한 두개를 주입해 새로운 인물을 만드는 식이다.

박 작가는 "스스로도 자신을 지겹게 평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평범한 사람을 드라마 속에서 봐줄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작가의 몫"이라며 "사람 때문에 치이고, 상처 받는 일이 많지만 약속에 빨리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은 드물다. 내가 보고 싶은 사람,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을 생각하고 쓴다"고 말했다.

24일, 대신증권은 박해영 작가를 초청해 '제9회 대신크리에티브포럼'을 진행했다. 아래는 이날 질의응답 형식으로 진행된 포럼 내용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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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해방일지' 이후 근황은?
-1년 정도 지났는데 그동안 바쁘진 않았다. 여행이 끝난 뒤 '여독'이 남는 것처럼 방송 이후 감정적 파고가 있었다. 좋았다는 사람 얘기도 들으며 6개월 그렇게 보내고 나머지 6개월은 이제 뭐하지 하면서 가만히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작가님의 작품을 '인생작'으로 꼽는다. 평범한 주인공들을 특별하게 만드는 비결은?
-일반적으로 드라마에 나오는 특별한 직업, 능력을 가진 사람을 주인공으로 차용하는 일이 별로 없다. 실제로 그런 사람을 본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제가 봤던 의사나 변호사 중에 상당히 매력있던 사람이 있었다면 썼을 수도 있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많은데 드라마에서 봐줄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작가의 몫이다.

▲성공 비결을 물으면 언제나 감독과 배우에게 그 공을 돌린다. 감독, 배우와 소통하는 비결이 있나?
-저는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배우들과 소통을 안 하고 오로지 감독과만 한다. 배우가 대본을 보고 이해를 못하면 내가 잘못 쓴 것이다. 방송 현장은 한 팀이 보통 200명으로 6개월 같이 작업한다. 200명 모두 만나는 사람은 감독 밖에 없다. 만약 내가 배우와 소통하면 감독, 작가 소통 창구가 2개가 돼 오히려 배우가 당황할 수 있다.

▲'나의 해방일지' 집필의 배경은?
-나는 항상 아이템을 내 속의 갈증에서 찾는다. '또, 오해영' 때는 '다시 태어나면 마음껏 사랑을 주고 쉽게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캐릭터를 만들었다. '나의 아저씨'를 끝내고 나서는 솔직히 말해 돈도 명예도 생겼다. 하지만 내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우 소고기를 가격을 안 보고 시킨다거나 택시를 탈 때 택시의 색깔을 안 보고 잡는 두 가지 정도만 변했다(웃음). 행복하지도 않고 감정의 '해갈'이 없었다. 돈도 명예도 있는데 '해갈'되지 않는 감정의 정체를 찾아 다시 글을 쓰다 보니 내가 사람을 멸시하며 살았구나, 남을 보듯 자기를 본다는데 남한테 이렇게 했으니 사랑스럽지 않고 내가 이 모양이구나. 이 감정이 해결되면 나도 사랑스러워지겠지, 그런 마음으로 쓰기 시작했다.

▲작품의 대사 하나 하나가 야구로 치면 '전력투구' 같다. 명대사, 어록으로 채워지는 작품을 쓰는데 걸리는 시간은?
-집필기간을 말하기 전에 저는 약간 컴플렉스인 게 대사다. 지인이 어느날 댓글을 봤는데 "병걸렸데, 명대사병"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듣고 찔리는 게 '서사가 딸린다는 건가', '너무 힘을 준다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를 정제해야 맛이 살다 보니 대사가 함축적으로 변했다. 이러다 보니 집필 기간이 긴 편인데 보통 한 편당 4~5년이 걸린다. 한 작품이 끝나면 1년은 그 여파가 와서 여독을 빼고, 1년 정도에 대략적인 형체와 질감을 갖게 되고 캐릭터와 이런 것들을 맞춰서 짜다보면 2~3년이 더 걸린다.

▲다음 작품은 그럼 4년 걸리는 건가?
-천만다행이게도 이건가 싶은 질감이 떠올라서 2~3년 안에 뭔가가 나올까 싶다.

▲박해영이 생각하는 행복은?
-'편안함'이다. 어떤 분이 그러더라. 내가 가장 원했던 감정은 불안하지 않은거라고. 그말도 이해가 갔다. 저는 평범한 사람인데 제가 뭔가를 성취해서 행복을 꾸려낼만한 조건이 아니었다. 공부도 그저 그랬고, 괜찮은 게 아무것도 없었고 애초에 특별함은 포기했던 것 같다. 하지만 방송판에 들어오고 나서 깨달았는데 나는 '이름에 대한 욕망'이 어마어마했다. 방송이나 드라마에는 기본적으로 관여 된 모든 사람의 이름이 나오는데 나의 특별함을 증명하는 것에 대해 욕심이 컸다. 나에게는 불안함이 지옥이었다. 제가 '어금니 꽉 깨물고 글을 쓴다'고 한 적이 있는데 다시 돌이켜보면 잘난 게 없으니까 내가 어떤 존재라는 걸 글로써 증명해 보이기 위해 이렇게 힘들었구나 생각했다. 에라 그냥 사랑하자, 밥 벌이 정도 하고 편안하게 일해보자. 마음 편한 게 내가 세상에서 좋아하는 행복이란 걸 느꼈다.

▲'나의 아저씨' 등 작품 속에 좋은 어른이 많이 나온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좋은 어른은?
-사실 나의 아저씨를 쓸 때 '어른'이란 개념을 염두에 두진 않았다. 음악 감독님이 곡을 만들면서 곡 이름을 '어른'으로 지으면서 '좋은 어른'이 회자가 됐는데 개인적으로 인간대 인간으로 보고 썼지 특별히 어른을 염두에 두진 않았다. 한 목사님이 설교 중에 "모든 사람은 살면서 귀인을 기다리는데 40 넘은 사람은 스스로가 귀인이 돼줘야 한다"고 했다. 사실 '나의 아저씨' 속 인물들은 귀인의 마인드로 썼다.

▲가장 영향을 준 인물은?
-가장 크게 영향을 준 인물은 부모다. 제가 보니까 내가 밖에서 증오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은 엄마의 연장선, 밖에서 호감을 느끼는 사람은 아버지의 연장선 같더라. 가족 말고 가장 영향을 준 사람은 오랜 시간 같이했던 사람은 아니고 슬쩍 만난 사람이다. 한 명은 다큐를 배우려고 교육원에 갔을 때 담당 교수님이었다. 당대 최고의 다큐 작가였는데 그 교수님은 다큐를 배우러 간 나에게 "다큐보다는 극(드라마)이 어울린다"고 추천해 줬다. 당시에는 상처가 됐지만 10년이 지나고 알았다. 진짜로 보는 눈이 있었구나라고. 한 명 더 얘기하자면 보조 작가 시절 같이 일했던 작가 동생이다. 1990년대 말 시트콤 보조작가였는데 다른 팀이었던 그 애는 버려지는 아이템 조각 중에서 내가 쓴 것만 골라서 다 읽었다. 그리고는 '너무 재미있다'고 언제나 얘기해 줬다. 작가기 때문에 (질투로) 좋은 걸 보면 화나고 잠도 못 잘만도 한데 그 친구는 '너무 재밌어, 언니' 이러는데 눈물 나게 고마웠다.

▲나의 해방일지 시즌2를 팬들이 기다리는데?
-시즌2가 있으려면 작품속 구씨가 있어야 하는데 그는 알코올 홀릭이다. 그가 개과천선하지 않으면 시즌 2는 없을 거다. 하지만 그 캐릭터가 그럴 리는 없을 것 같으니 시즌 2는 없을 것 같다.

▲(청중 질문) 드라마 PD 전공생인데 연출가로서 가져야할 태도나 생각이 있다면?
-공부하는 단계에서 뭐라고 할 수 있는 말은 없다. 만약 나중에 현장에 들어온다면 이런 태도는 갖췄으면 좋겠다. 글을 쓰는 사람의 글이 재미없더라도 단순히 '호불호'로 얘기하지 마시고 '이렇게 가면 더 좋아질 것 같다'는 식으로 항상 발전 방향으로 말을 하는 습관을 가지면 좋겠다. 어떤 작가를 만났을 때 단점을 커버하려고 하지 말고 장점을 부각시키는 방식 말이다. 나도 나의 단점을 안다. 서사가 약하다. 하지만 그거를 하면 내 장점(대사와 캐릭터)이 사라진다. 현장에서는 그렇다. 배우도 그렇다. 작가와 배우의 장점을 부각시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다.

※강연 중 제 옆자리에서 타자 소리 때문에 고통 받으셨던 청중 분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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