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4 (수)

일본이 언제나 우리에게 '재앙'인 이유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김창훈 칼럼니스트]
한미일 군사동맹이 성큼 다가오는 것 같다. 군사동맹이라는 분명한 목표가 아니라면 강제징용배상을 비롯한 과거사 문제가 이렇게 졸속으로 해결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필자에게는 한일정상의 만남이 군사동맹을 위한 사전포석으로 보였다. 사안의 심각성이 커지자 서울대 민주화교수협의회가 윤석열 정부를 성토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민교협은 성명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한일관계는 장기적으로 더 악화되고 불안정해질 것이며, 한미일 군사협력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한미동맹이 미일동맹의 하위동맹으로 편입되어 대한민국의 자주성이 크게 훼손될 것이다. 이것은 이미 글로벌 중견국가로 도약한 대한민국의 선택지가 될 수 없다."(☞관련 기사 : 서울대 교수들 "굴욕 강제동원 해법, 최소 존중도 없다)

프레시안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6일 오후 일본 도쿄 긴자의 오므라이스 노포에서 친교의 시간을 함께하며 생맥주로 건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일본의 맹목적인 미국 추종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아베를 위시한 일본의 우익은 미국에 앞서 인도태평양전략을 구상했다. 미국은 원폭을 차치하고도 단 이틀간의 공습만으로 민간인 10만명을 사망케 했다. 반면에 중국은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수천만의 희생자를 낳았다. 그런 피해자 중국을 향해 미국이 중국 봉쇄에 본격적으로 나서기도 전에 미리 인도태평양전략을 설계한 것이다. 혹시 일본은 뼛속부터 전쟁국가였던 것은 아닐까? 아시아지역을 대재앙으로 몰아넣었던 일본의 전쟁광기가 외부에서 이식된 민주주의의 외피 속에서 잠시 감추어져 왔던 것은 아닐까? 만약에 그 광기가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외부로 걸어 나오게 된다면 동아시아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일본에는 언제부터 전쟁유전자로서의 '호전성'이 각인된 것일까? 한일 군사동맹이 가시화되는 지금이야말로 일본의 생래적 야만성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할 때가 아닐까? 도대체 일본은 왜 한국에 대해 오만하고 중국에 대해 적대적일까?

근대 일본의 호전성의 배경에는 한 사람이 있다. 일본의 1만원권 화폐의 주인공인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다. 그는 개화기에 <문명론의 개략>이라는 책을 써서 일약 일본의 정신적 지주로 인정받게 된 인물이다. 문제는 그의 문명론이 당시 유럽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였던 유럽중심주의를 그대로 차용했다는 데에 있었다. 김상준 경희대 교수의 저서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 (김상준 지음, 아카넷 펴냄)에 따르면 후쿠자와의 책은 19세기 영국의 역사학자 헨리 버클의 <영국문명사>나 프랑스의 역사학자 프랑수아 기조의 <유럽문명사>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이들은 유럽만이 제대로 된 문명이고 유럽의 외부는 유럽의 계도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우월한 서구와 열등한 비서구의 이항대립이 이들의 논리를 관통하는 시각이었다. 유럽중심적 관점을 일본에 차입하여 후쿠자와는 자신의 논리를 구축했다. 그는 일본에 서구적 개인관, 국가관을 전파한 인물로 추앙받는다. 일본 학계에서 천황으로 통했던 마루야마 마사오가 숭배하는 후쿠자와의 본 모습은 어떠했을까?

후쿠자와가 쓴 글들을 보자. (김상준의 상기 책에서 인용) "대만 야만인은 금수와 같은 자로 사람 두서넛 잡아먹는 것은 보통이고" "조선인은 미개한 백성이다. 극히 완고하고 어리석으며" "지나 인민의 겁약하고 비굴함은 실로 터무니없고 그 유례가 없다" "지나, 조선 이 두나라 그 고풍구습에 연연하는 마음은 백천년 옛날과 다르지 않으며 도덕마저 땅바닥에 떨어지고 잔혹·불염치는 극에 달해도 여전히 오만하여 자성의 마음이 없는 자와 같다". 그의 말은 <외교론>에서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다. "세계 각국이 서로 대치하는 것은 금수가 서로 잡아먹으려는 기세로, 잡아먹는 자는 문명의 국민이고 먹히는 자는 미개한 나라이므로 우리 일본국은 그 잡아먹는 자의 대열에 서서 문명국민과 함께 좋은 먹잇감을 찾자."

국부로 추앙받는 사상가의 이웃 국가를 향한 시선은 저열하기 짝이 없다. 그런 사람이 설파한 문명개화가 제대로 된 '문명'일 리가 없다. 다시 김상준의 설명이다. "그(후쿠자와-필자주)는 자신이 본 '서구근대'의 본질이 힘에 의한 지배에 있음을 파악하고 있었고, 이러한 힘에 의한 지배를 '문명화'요 '개화'라고 부르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후쿠자와였기 때문에 대만, 조선, 중국 침공 등 연이은 일본의 무력 팽창 행위를 항상 아주 적극적으로 지지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이를 앞장 서서 거리낌 없이 부추기고 선동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조선의 선비들이 서구와 맹목적 서구화를 추구하던 일본을 인의(人義)를 모르는 금수(禽獸)라칭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국제관계에서의 평화론을 '몽상'이라 치부한다. 평화론을 몽상이라 외면하면서 힘에 의한 해결을 '현실주의'라 생각한다. 그런데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들의 '현실주의'는 '현실적'이지 않다. 아니 그런 '현실주의'는 특정 상황에서의 '현실주의'에 지나지 않았다. 근대 유럽이 맞닥뜨린 상황이 그러했다.

김상준에 따르면 200년간의 평화상태가 지속된 17~18세기 동아시아와 달리 유럽은 폭력으로 점철된 특이한 경로를 통과했다. 16세기 초 종교개혁 이후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까지 유럽은 근 300년간 전쟁 상태였다. 종교개혁이 촉발한 유럽의 내전은 30년전쟁에서 절정에 이른다. 30년전쟁을 정리한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에도 스페인 왕위 계승권 전쟁, 스웨덴과 러시아 사이의 북방전쟁, 오스트리아왕위계승전쟁, 7년 전쟁이라 불리는 제2차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 전쟁 등 유럽은 수백년간 아비규환 상태였다. 전쟁 참여자만이 아닌 일반인들이 서로를 의심하고 죽이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지상에 펼쳐진 지옥이었다.

김상준은 근대 유럽이 경험한 상호적대의 경험을 제국주의적 팽창의 핵심 동력원으로 생각한다. 김상준의 말이다. "저는 유럽 근대가 이렇듯 구교와 신교 간의 깊은 불신과 증오의 내전 상태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이후 세계사에 지울 수 없는 깊은 흔적을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유럽 전체를 휩쓸고 지나간 내전은 나와 우리 안이라는 선 밖의 인간에 대한 불신을 깊게 만들었다. 내부의 전쟁이 일단락되면서 유럽은 제국주의적 팽창을 향해 폭주하기 시작한다. 인간이 아닌 비인간이었던 '선 밖의 그들'은 다른 종교신자에서 토착 원주민으로 바뀌어 갔다. 유럽인들의 호전적 심성은 이제 피식민지 민중들을 향해 제한없이 투사되었다. 이것이 유럽이 자랑하는 근대계몽의 확장이었다. 외부를 적대하면서 자본주의가 격화시킨 내부의 갈등을 간신히 억제할 수 있게 됐다.

유럽의 '타자를 향한 적대감'은 그대로 일본에 차입되었다. 후쿠자와가 숭배한 유럽의 문명개화의 이면에는 이런 스토리가 존재했다. 일본 특유의 칼의 문화와 접촉하면서 호전성은 더욱 강화되었다. 유럽의 제국주의적 심성이 일본에 그토록 철저히 이식된 데에는 외부에 호응하는 내부적 요인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그것을 '유교의 부재'라고 생각한다. 기독교 신앙이 신자 개개인의 도덕적 반성을 촉발시키는 근원적 힘이었듯이 유교는 유교적 공동체 내부에서 도덕적 향상심을 불러일으키는 동력이었다. 기독교 신앙의 시작과 끝은 개인으로 수렴된다. 이 사실을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책 <죽음에 이르는 병>(쇠렌 키르케고르 지음 세창출판사 펴냄)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기독교는 모든 개인이, 남자든 여자든, 하녀든 장관이든, 상인이든 이발사든, 학생이든 혹은 그 밖의 어떤 사람이든 모든 사람은 각자가 지금 하나님 앞에 현존하고 있다고 가르친다."

기독교에는 개인, 가족, 공동체 그리고 국가를 '도덕성'으로 연결하는 관점이 부재한다. 연결이 끊어진 상태를 의식적으로 이어붙이려고 철학자 헤겔은 인륜성이라는 개념을 고안해 낸다. 그는 개인을 넘어서는 공동체와 국가를 연결하는 새로운 차원의 도덕성을 숙고했다. 반면에 동아시아 유교의 근본은 천하가 모두의 것이라는 천하위공(天下爲公)에 있었다. 유교는 개인의 도덕적 정체성을 공동체, 국가, 천하로 연결지으려 했다. 유교에서 개인은 원자적 개인이 아니다. 유교는 조상숭배를 통해 원초적 도덕감을 고양하고 이 도덕감에 의거해 도덕성의 공시적 확장을 도모한다. 이 공시적 확장이 천하인 것이다. 모두가 도덕군자가 되지는 못할지라도 이런 도덕성기획에 따라 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도덕성에서 발원하는 염치는 가지게 되었다. 일본이 한국과 갈라지는 결정적 지점이 바로 유교적 심성의 유무이다. 일본의 한국철학 연구자 오구라 기조는 자신의 책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오구라 기조 지음 모시는 사람들 펴냄)에서 "한국은 '도덕지향성 국가'이다"라고 선언한다. 도덕지향적 삶이 꼭 도덕성을 담보하는 삶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지향성의 단계를 통과해야만 도덕적 향상도 가능해지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도덕성을 매개로 개인의 내면에서 출발하여 공동체, 국가, 천하로 이어지는 보편성의 지반을 확보한 한국과 달리 일본은 그 '보편성'의 확보에 실패했다. 그러하기에 일본은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한 반성을 버거워한다. 반성이 성립하려면 반성 이전에 반성의 주체인 확고한 자아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보편성의 지반이 마련되지 않았기에 일본인에게는 그들만의 정체성이 없다. 일본을 대표하는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이 <윤리 21>(가라타니 고진 지음, 도서출판b 펴냄)에서 지적했듯이 일본인은 마을공동체 '무라'를 넘어서는 보편성을 내면에 확보하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간의 상호 감시만이 이들의 도덕적 행위를 산출하는 가냘픈 지지대다. 이 상황에서 내가 존중하지 않는 대상으로부터의 감시와 견제를 무시하는 것은 나의 권리가 된다. 한국이 요구하는 '진심 어린 사과'를 수행할 도덕적 정체성을 담지한 주체가 부재하기에 그들의 '사과'는 한국인에게 늘 공허하게 들린다.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의 재가동을 계기로 한일은 군사동맹의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이 협력은 위험한 협력이다. 협력의 상대가 도덕적 고양을 국가적 차원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일본이기에 더욱 그렇다. 어지러운 세상이다. 이런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서 한 가지 사실만은 기억해두자. 일본은 언제나 우리에게 '재앙'이었다는 것을.

[김창훈 칼럼니스트]

- Copyrights ©PRESSian.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