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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11개월 만에 막 내린 '테라·루나' 권도형 국제도주극... 한미 '신병확보' 경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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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네그로서 '위조 여권' 쓰다 체포
법무부 범죄인 인도 청구 절차 착수
뉴욕검찰 권씨 기소, 美 송환될 수도
한국일보

권도형(오른쪽) 테라폼랩스 대표가 24일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에 있는 고등법원에 출두하고 있다. 포드고리차=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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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총액 50조 원이 증발한 가상화폐 ‘테라ㆍ루나’ 폭락 사태의 주범 권도형(32) 테라폼랩스 대표가 도피 11개월 만에 동유럽 국가 몬테네그로에서 검거됐다. 인터폴 적색수배, 여권 무효화 조치에도 여러 국가를 옮겨 다니며 수사망을 피해 왔지만, 위조 여권을 사용하다 결국 덜미가 잡혔다. 그가 사건의 실체를 밝힐 핵심 인물인 만큼 검찰 수사에 호재인 것은 분명하다. 다만 여러 국가가 얽혀 있는 가상화폐 사기의 특성상 국내 송환은 자신할 수 없다. 미국도 권 대표를 8개 혐의로 기소한 상황이다.

11개월 도피극, 위조 여권에 '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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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형(가운데) 테라폼랩스 대표가 수갑을 찬 채 24일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에 있는 고등법원에 출두하고 있다. 포드고리차=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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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은 24일 “몬테네그로 인터폴 측이 보낸 지문 정보와 경찰청이 보유한 자료를 대조한 결과, 현지에서 검거된 인물을 권씨로 특정했다”고 밝혔다. 현지 경찰은 그와 측근 한창준 차이코퍼레이션 대표를 전날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 공항에서 붙잡아 이날 문서위조 혐의로 기소했다. 이들은 위조된 코스타리카ㆍ벨기에 여권으로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행 항공기 탑승을 시도하다 체포됐다. 벨기에 여권에 적힌 이름은 ‘왕(Wang)’, ‘응우옌(Nguyen)’ 등 가명이었다. 우리 경찰은 몬테네그로 측으로부터 두 사람의 손가락 지문 10개씩 정보를 받아 대조 작업에 착수했고, 이날 신원을 최종 확인했다.

테라ㆍ루나는 애플 엔지니어 출신의 권 대표가 설립한 블록체인 기업 ‘테라폼랩스’가 발행한 가상화폐다. 한때 시가총액이 세계 10위 안팎까지 올랐지만, 지난해 5월 일주일 만에 가격이 99% 폭락했다. 당시 휴지 조각이 된 루나와 테라의 시가총액은 50조 원이나 됐다. 막대한 손실을 본 투자자들은 즉각 권 대표 등을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사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권 대표는 그해 4월 폭락 사태가 터지기 한 달 전 가족과 함께 싱가포르로 출국했고, 이후 두바이를 경유해 세르비아로 도주했다. 이에 검찰도 인터폴 적색수배를 요청하고 여권을 무효화하는 등 자진 귀국을 압박해 왔다.

檢 수사 호재지만 국내 송환은 불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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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폼랩스를 공동 창업한 신현성(왼쪽)·권도형 대표. 테라폼랩스 블로그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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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체포는 검찰 수사에 중대한 분기점이다. 검찰은 그간 국내에 남아 있던 신현성 전 차이코퍼레이션 대표 등 공범을 중심으로 수사를 진행해 왔다. 핵심은 루나 등이 자본시장법상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하느냐였다. 루나의 증권성이 인정되면 사전 발행된 코인으로 거액을 벌어들인 신 전 대표 등에게 사기적 부정거래 혐의를 적용할 수 있어서다. 실제 검찰은 신 전 대표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루나가 투자계약증권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명확한 자료가 없고 혐의를 다퉈 볼 여지가 있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검찰 관계자는 “권 대표가 어떤 진술을 하느냐에 따라 신 전 대표 수사도 급물살을 탈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부는 24일 권씨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몬테네그로 당국에 범죄인 인도를 청구했다. 그러나 미국, 싱가포르 등 다른 나라도 그를 데려오고 싶어 해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 미 뉴욕검찰은 권 대표의 체포 소식이 알려진 직후 그를 증권 사기 등 8개 혐의로 기소하기도 했다. “뉴욕검찰이 권씨의 신병을 인도할 방법을 찾고 있다”는 현지 보도도 나왔다. 결국 키를 쥔 건 범죄인 인도 재량권을 가진 몬테네그로 당국인데, 전망은 밝지 않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통상 범죄 입증 가능성이 크고 형량이 높은 국가로 송환하는 경향이 있다”며 “미국의 자본시장 범죄 형량이 더 높고, 혐의 입증도 더 수월해 보인다”고 비관적 의견을 내놨다.

다만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남부지검 합동수사단은 권 대표의 국내 송환이 성사될 수 있도록 모든 방법을 강구할 방침이다. 이날 신 전 대표의 차이코퍼레이션을 재차 압수수색하며 수사 의지도 드러냈다. 제3국 송환 가능성을 열어놓고 사전 대비책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 이석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몬테네그로는 처벌의 효과성 못지않게 외교적 실익까지 저울질할 것”이라며 “다른 나라로 권 대표의 신병이 넘어가도 수사관을 파견해 형사사법 절차를 진행하는 등 ‘플랜B’를 미리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광현 기자 nam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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