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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사설] ‘연포탕’ 약속 처음부터 거짓말이었나, 좌절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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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3.3.13/뉴스1 ⓒ News1 허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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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정책위의장에 친윤계 박대출 의원을 임명하면서 당직 인선을 마무리했다. 이로써 국민의힘은 김 대표와 함께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최고위원 5명 전원, 당 정책위의장, 사무총장, 전략기획·조직부총장, 대변인, 여의도연구원장 등 내년 총선 전략을 짜고 공천 실무를 맡을 핵심 당직이 모두 친윤계로 채워졌다. 원내대표 자리가 남았지만 이는 의원들이 선출한다. 후보로 거론되는 김학용·윤재옥 의원도 모두 친윤계다.

전당대회에서 이긴 측이 주요 당직을 차지하는 것은 정치권의 관행이다. 당직을 고르게 나누면 바람직하겠지만 그러지 않아도 특별히 문제 될 것은 없다. 하지만 김 대표는 전당대회 과정에서 수도 없이 ‘연포탕(연대·포용·탕평)’을 공약했다. 주요 당직에 비윤계를 등용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그러나 전당대회가 끝나고 당직 인선 뚜껑을 열어보니 친윤 일색이었다. 김 대표는 연포탕 약속을 하지 않았어도 충분히 당선됐을 것이다. 그런데 왜 약속하고 며칠 만에 노골적으로 식언을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국민의힘은 전당대회 후 당 지지율이 올라가는 ‘컨벤션 효과’를 누리기는커녕 오히려 떨어지는 ‘역컨벤션 상황’을 겪고 있다. 비교적 젊은 비윤계 후보가 전멸한 데다 정부의 주 69시간 근무시간제 혼선, 대일 외교 논란까지 더해져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을 지지했던 청년층의 이탈이 심각하다고 한다.

김 대표는 자신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총선 승리라고 거듭 말했다. 선거는 지지층을 확실히 결집하고 중도층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오는 당이 이긴다. 역대로 분열한 당은 패했고, 서로 합친 당이 이겼다. 김 대표는 당원끼리만 치른 선거에서 당선됐지만 ‘연포탕’과 같은 핵심 약속을 뒤집으면서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총선에서 어떻게 승리하겠다는 건가.

김 대표 측은 “당의 대다수가 친윤계라 연포탕이 어렵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처음부터 지킬 생각 없이 거짓말 공약을 한 것이다. 또 “인사뿐 아니라 정책·메시지·일정 등을 통해 ‘더 큰 연포탕’을 선보이겠다”고 하지만 말장난일 뿐이다. 정치권에선 김 대표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식언할 사람은 아니라는 평가가 많다. 결국 김 대표는 연대, 포용, 탕평 약속을 지키려고 했지만 여권 핵심들에게 막혀 좌절된 것이란 추측도 나온다. 이 과정을 보면 내년 총선 공천을 두고 분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윤석열 정부가 또 소수당이 되면 나라의 장래가 걸린 연금·노동·교육 등 모든 개혁이 물 건너가게 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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