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김택근의 묵언] 예수 장사꾼과 정치 거간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음은 자신을 목사라 칭하는 전광훈이 묻고 집권당 수석최고위원 김재원이 답한 것이다. “김기현 장로를 밀었는데, 세상에 헌법에 5·18정신을 넣겠다(고 한다). 그렇다고 전라도 표가 나올 줄 아느냐. 전라도는 영원히 10프로(이다).” “그건 불가능하다. 저도 반대다.” “(그렇다면) 전라도에 립서비스하려고 한 것이냐.” “표 얻으려면 조상 묘도 파는 게 정치인 아니냐.” “내가 (국회의원) 200석을 만들어주면 당이 뭐 해줄 거냐.” “최고위에 가서 보고하고 목사님이 원하는 걸 관철시키겠다.”

경향신문

김택근 시인·작가


시간이 지났지만 악취가 가시지 않는다. 분노가 솟구치고 서글픔이 밀려든다. 인간에 대한 아주 작은 예의라도 있다면 저런 말을 뱉을 수 있을 것인가. 종교도 정치도 결국 사람을 사람으로 섬기자는 것일진대 저들은 무엇 때문에 목사가 되고 정치인이 되었는가. 5·18민주화운동과 전라도는 저들에게 무엇인가. 하늘도 노할 얘기를 들으면서도 그 앞에서 박수를 치는 사람들은 또 누구인가.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민주화투쟁을 조롱하고, 어렵사리 이뤄낸 사회적 합의를 짓이겼다.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는다”고 했던 목사와 신도들의 표를 예매하겠다는 ‘정치 거간꾼’은 그렇게 눈을 껌벅이며 웃음을 날렸다. 은밀한 거래가 들통났음에도 두 사람은 무탈하다. 교계(개신교)와 정치권은 흡사 이웃집 낯익은 개를 본 것처럼 조용하다. 작은 일에 나만 분개하는지 몇 번을 자문해봤다. 곱씹을수록 엄청난 일이었고, 그래서 절망한다. 아, 많은 교회들은 저렇게 권력과 어울리며 찬송가를 부르고 있구나. 정치권에는 표를 얻는다면 조상 묘도 파는 자들이 우글거리고 있구나.

허세를 부리며 권력과 야합하는 무리를 한국교회는 지켜보고만 있다. 아마 자신들도 이미 권력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성서를 벗어나 세상과 타협하는 목사들, 그들을 따라 교회 밖에서 고함치는 신도들. 목사들이 신도 숫자를 헤아리며 권력과 흥정하며 거래하고 있다. 예수를 포장하여 제멋대로 팔아먹는 자, 예수의 탈을 쓰고 거짓말로 선동하는 자는 예수 장사꾼이다.

이대로 가면 신도들이 자신의 성향에 맞는 목사와 예배당을 찾아 이리저리 몰려다닐 것이다. 보수하나님, 진보하나님을 모셔놓고 구호를 외칠 것이다. 목사의 설교는 극히 세속적이라서 가슴에 닿기 전에 머리에서 부서질 것이다. “시원하고만. 하고 싶은 말을 목사가 대신해주네.”

‘으뜸 가르침’이기에 종교가 오염되면 세상일에 분노할 수가 없다. 의분(義憤)이 사라진 자리에는 체념이 자라난다. 예수는 성전에서 이것저것을 사고파는 장사꾼들을 쫓아냈다. 환전상들의 책상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뒤엎었다. 사랑의 예수일진대 단순히 장사꾼만을 겨냥해서 ‘성전 시위’를 벌였을 리가 없다. 그 뒤에 있는 불의한 큰손들을 향한 호통이었다. 예수가 꾸짖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마가복음 11: 17)

한국교회도 권력, 돈, 집단이기라는 귀신을 모셔놓고 아멘을 외치고 있다. 그러니 가난한 사람들이 들어설 공간이 없다. 김재원, 전광훈 같은 사람들의 망언에 함께 분노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들을 비호하는 배후가 막강하기 때문이다.

권력에 저항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예수는 잘못된 권력을 비판하다가 정치범으로 몰렸다. 정치를 꾸짖으니 왕이 미워했고, 사제와 로마의 앞잡이들이 증오했다. 그러므로 ‘십자가 처형’을 당했고 다시 부활했다. 십자가는 의로운 저항과 희생의 상징이다. 하지만 요즘 교회는 십자가보다 부활을 강조한다. ‘이적의 예수’만을 부각시킨다. 저항은 두렵고 희생은 힘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를 섬기고 있다. 부활절이 돌아오고 있다. 오늘 잘 살아있음이 내일의 부활이다. 한국교회는 권력을 상대로 한 암표장사를 걷어치우고 부활하라. 죽어서 부활하지 말고 살아 있을 때 부활하라.

“부활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 못지않게, 아니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교회가 현세에서 ‘부활을 사는’ 것이다. 돈·권력이 아니라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 가난한 사람이 세상의 핵심이며 교회에서 존중된다는 것, 결국 인류 역사는 선이 악을 이긴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교회가 현실에서 실천하고 보여주어야 한다.”(김근수 <슬픈 예수>)

김택근 시인·작가

▶ 채용부터 성차별, 27년째 OECD 꼴찌 이유 있었다
▶ 뉴스 남들보다 깊게 보려면? 점선면을 구독하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