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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오늘부터 내 꿈은 너야, 연진아”… ‘더 글로리’가 직장인 로망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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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넷플릭스 2주 연속 세계 1위

명장면 패러디 열풍 들여다보니

조선일보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박연진이 충동적으로 써낸 사직서.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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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사표를 낸다면 연진이처럼.’

학교 폭력 복수극을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뜻밖의 장면이 ‘직장인들의 로망’으로 떠올랐다. 학폭 가해자인 기상캐스터 박연진(임지연)이 분을 못 이기고 충동적으로 사직서를 던지는 대목이다. 연진의 과거 학교 폭력과 살인 의혹이 불거지자, 방송국 국장이 “당신 대체 뭐 하는 사람이냐”고 윽박지른다. 연진은 “하루하루가 정말 너무 고달프네”라고 응수하더니, 책상 위에 있던 A4 용지를 뒤집어 ‘사직서 박연진’이라고 휘갈겨 쓰고는 국장 가슴에 던져 버린다.

직장인들은 “오늘부터 내 꿈은 너야, 연진아” “나도 저렇게 시원하게 사직서 내보고 싶다”며 환호하고 있다. 소셜미디어엔 ‘박연진’ 대신 본인 이름을 넣은 사진 패러디물이 속속 올라온다. 30대 회사원 박상수씨는 “학폭과 복수를 다루는 심각한 드라마인데도 이 장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며 “극 중 내용과 상관없이 사표를 저렇게도 낼 수 있다니 기발하고 통쾌했다”고 말했다. 배우 임지연도 언론 인터뷰에서 “직장 다니는 친구들이 그 장면을 제일 좋아하더라”며 “속 시원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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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더 글로리' 마지막회에서 박연진 남편 하도영이 교도소에 수감된 연진을 면회하는 장면.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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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글로리’는 지난 10일 파트 2가 공개되자마자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지난 한 주 동안 전 세계 시청자들이 누적 1억2359만시간 시청해 2주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했다. 화제의 장면들은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으로 빠르게 퍼졌다. 특정 직업군이 열광하는 대사도 있다. 마지막회에서 박연진 남편 하도영(정성일)이 교도소에 수감된 연진을 면회하면서 “살면서 절대 아끼면 안 되는 돈이 변호사 비용이야”라고 말하는 장면. 변호사들은 “대한변호사협회 PPL(간접광고)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 “반드시 저장해야 할 명대사”라며 캡처 사진을 퍼나르고 있다. “살면서 절대 아끼면 안 되는 돈이 세무사 비용이야” 같은 타 직종 응용 버전도 나왔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예전엔 특정 사이트에서 10~20대가 주로 패러디를 즐겼다면 이제는 세대·직업을 초월해 하나의 놀이 문화로 일상화됐다”며 “원작과 상관없이 재해석하고 의미를 새로 부여하면서 소비자들이 파생 콘텐츠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했다.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는 “학폭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김은숙 작가 특유의 발랄하고 허를 찌르는 대사들이 살아 있어 뜻밖의 장면에서 쾌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또 이제는 소비자들이 그런 장면만 쏙쏙 뽑아 숏폼 콘텐츠로 재생산하며 놀이로 즐기는 시대”라며 “다만 드라마는 전후 맥락과 배경이 있는데 짧은 영상이 주는 재미만 즐기다 보면 본래 의미가 와전될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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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방송된 ‘SNL 코리아 시즌3’에서 ‘더 글로리’를 패러디한 ‘더 칼로리’의 한 장면. /쿠팡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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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글로리'를 패러디한 '더 칼로리'에서 고데기로 쥐포를 지지는 장면. 학교 폭력을 희화화했다는 이유로 논란이 됐다. /쿠팡플레이


지난달 쿠팡플레이 ‘SNL 코리아 시즌3′에선 ‘더 글로리’를 패러디한 ‘더 칼로리’ 코너가 논란이 됐다. ‘더 글로리’에는 학폭 가해자 박연진이 고데기 온도를 확인한다면서 문동은의 몸을 고데기로 지져 화상을 입히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을 패러디해 주현영이 고데기로 쥐포를 지지고, 타들어 가는 쥐포를 보면서 이수지가 “지금 먹어야 되는데”라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괴로워한다. 방송 직후부터 “학교 폭력을 희화화해도 되느냐”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고데기 장면은 지난 2006년 충북 청주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당시 피해 학생은 한 달 가까이 3명의 친구에게 고데기와 옷핀 등으로 폭행을 당해 팔·다리·허벅지·가슴 부위에 상처를 입었다. 한 50대 시청자는 “드라마에서 이 폭행 장면은 너무 끔찍하고 잔혹해서 보기가 힘들었는데, 실제 피해자까지 있는 사건을 개그 소재로 삼는 건 2차 가해나 마찬가지”라며 “선을 넘은 패러디”라고 비판했다. 이 패러디물에서 살이 쪘다는 이유로 학교 폭력을 당하고, 살찌는 음식을 먹이며 복수에 성공한다는 내용도 논란이 됐다. 김헌식 평론가는 “풍자를 통한 코미디는 힘 있고 권력 있는 ‘강자’들이 대상이 돼야 하는데, 학폭 피해자를 희화화한 개그는 패러디라 할 수 없다”며 “패러디도 적절하게 지켜야 할 선이 있고, 풍자가 아니라 약자 조롱이 되면 문제”라고 지적했다.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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