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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토)

세계 'AT1' 시장 위축, 주요 은행들 발행 미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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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1 보유자들, 고수익 코코본드 투자했지만 위험 못 봐
세계 AT1 시장 위축...주요 아시아 은행들 발행 꺼려
중국, 인도 등 非 서방 국가의 AT1 시장은 타격 적어


파이낸셜뉴스

20일(현지시간) 스위스 취리히에서 경찰들이 크레디트스위스 본부 건물을 둘러싸고 있다.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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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UBS의 크레디트스위스(CS)의 합병 과정에서 160억스위스프랑(약 22조3633억원)의 기타기본자본(Additional Tier 1·AT1) 채권이 증발하면서 세계 AT1 시장이 크게 위축될 전망이다. 주요 발행 기업들은 일단 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발행을 미루거나 투자자들의 수요를 지켜볼 계획이다.

■'코코본드' 위험성 과소평가
AT1은 우발전환사채(코코본드) 중 하나다. 유럽을 비롯한 세계 금융당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실한 금융사의 손실을 세금으로 메우지 않고, 투자자 및 채권자가 최대한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금융사의 자본 확대를 요구했다.

그러나 금융사 주주 입장에서는 신주가 늘어날수록 지분율이 줄어들고 주가 하락 역시 걱정해야 한다. 이에 금융권에서는 형식상 채권이지만 은행의 재정이 특정 조건 이상으로 나빠지면 소유자의 동의 없이 주식으로 바꾸거나 상각할 수 있는 증권을 도입했다. 코코본드 소유자는 해당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더 많은 이자를 받는다.

코코본드를 발행한 금융사는 실제 주식을 늘리지 않았지만 회계상 해당 채권을 자본으로 분류할 수 있다. 코코본드는 크게 신종자본증권과 후순위채로 나뉘며 신종자본증권은 금융사의 기본자본(Tier 1)으로, 후순위채는 보완자본(Tier 2)으로 분류된다.

그 결과 기업이 위기에 처하면 주주가 가장 먼저 손실을 책임지고 그 다음 신종자본증권 보유자가 손실을 이어 받으며 이후 후순위채 보유자 순서로 넘어간다. 이번 사태에서 사라진 AT1은 신종자본증권이었다.

2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스위스의 스위스연방은행(UBS)이 CS 인수 협상 과정에서 재정 부담을 덜기 위해 스위스 금융감독청(FINMA)에 CS의 AT1 상각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CS의 AT1 채권자들은 UBS가 CS 주주들에게 주식 대금으로 30억스위스프랑(약 4조1965억원)을 줬지만 자신들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며 분개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도 주주와 채권자의 책임 순서가 뒤바뀌었다고 지적했다.

스위스 법무법인 어드베스트라의 라시드 바하르 파트너는 AT1 계약서에 상각 조항이 있지만 해당 조항을 발동하려면 FINMA의 승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건 단순히 계약법의 문제가 아니라 FINMA의 권한에 대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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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AT1 발행 금액 변화>
-2022년: 전체 685억유로, 유럽 196억유로, 그 외 489억유로
-2023년: 전체 147억유로, 유럽 138억유로, 그 외 9억유로
*자료: 월스트리트저널, 딜로직
■세계 AT1 시장 위축 전망
지난해 AT1 채권 발행 규모는 685억유로(약 95조6212억원)이며 그 중 유럽에서 발행한 규모는 196억유로다. 올해는 유럽에서 138억유로(약 19조2638억원), 그 외 지역에서 9억유로 AT1 채권을 발행하여 총 147억유로(약 20조5263억원)의 AT1가 시장에 나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2일 보도에서 주요 AT1 발행처였던 일본과 싱가포르, 홍콩의 은행들이 이번 사태 이후 AT1 발행을 꺼린다고 전했다. FT는 채권 중개인들을 인용해 홍콩의 경우 신규 AT1 일정이 비었으며 올해 상반기 안에는 신규 발행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AT1 시장 큰손들인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MUFG)과 스미토모미쓰이파이낸셜그룹(SMFG)은 오는 4월에 AT1 발행을 예전부터 계획한 상태였지만 현재 투자자들의 수요를 관찰 중으로 알려졌다.

관계자는 해당 은행들이 발행을 강행하더라도 조건을 조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싱가포르 최대 은행인 싱가포르개발은행(DBS)의 관계자는 현재 DBS의 신규 AT1 발행 일정이 없다고 설명했다.

미국 채권운용사 PGIM채권의 그렉 피터스 공동 최고투자책임자(CFO)는 "CS 사태는 AT1 시장의 성격 전체를 바꾸어버렸다"면서 "채권 발행 능력이 앞으로 0에 가깝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금융그룹 노무라의 니콜라스 얍 아시아 채권 분석 대표는 "아시아 은행들은 지금 시점에서 현재 금리로 AT1를 발행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시장이 안정되면 기초적으로 튼튼한 금융사의 경우 AT1 발행을 재개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앞서 골드만삭스는 이번 사태 이후 "장기적으로 AT1 채권에 대한 수요가 영구적으로 훼손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스위스 외 다른 국가의 금융 당국들은 이번 사태가 AT1 시장을 넘어 다른 채권으로 번질까 걱정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을 비롯한 유로존(유로 사용 20개국)의 금융 당국들은 20일 공동 성명을 내고 문제가 있는 은행의 손실 부담 순서를 확립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보통주를 AT1보다 먼저 상각 처리하겠다"고 강조했다. 영국 중앙은행 역시 관할 지역에서 주주가 먼저 손실을 책임진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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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20일 한 시민이 크레디트스위스(CS) 지점 앞에 서 있다.로이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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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등 非 서방 영향 적어
CS의 AT1 상각 소식이 알려진 다음날인 20일, 주요 채권시장에서는 대형 다국적 은행들의 AT1 시세가 폭락했으나 중국 은행들의 AT1 채권 가격은 0.2~0.5%p 하락에 그쳤다.

이에 시장 전문가들은 중국 AT1의 경우 보유자의 대부분이 중국 본토 투자자라며 국제적인 파동에 덜 민감하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중국은 지난 17일 상업은행의 지급준비율을 0.25%p 낮추는 등 금리 인상으로 돈줄을 죄는 서방과 달리 계속해서 시장에 자금을 공급하고 있다.

중국 우한과기대 금융증권연구소의 둥덩신 소장은 21일 중국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를 통해 "중국 은행들은 안정적으로 영업중이며 최근 서방에서 발생한 위기에 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중국 당국이 은행들을 매우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도의 AT1 시세 역시 CS 사태 이후 거의 요동치지 않았다. 인도에서는 지난 2020년 3월에 시중 은행인 예스뱅크가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해당 은행의 AT1 채권이 상각된 사례가 있다. 미 씨티그룹과 제프리스 투자은행은 21일 보고서에서 인도의 AT1 채권은 주로 국영 은행, 대형 은행들이 발행하며 인도 내에서 은행주들에 대한 불안이 심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사태가 인도 AT1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AT1 채권 시세는 23일 기준 소폭 하락했지만 유럽 은행들 보다는 영향이 적었다.

전문가들은 국내 발행 AT1 채권 유통량이 해외 발행 AT1보다 적어 시세 변동이 느릴 수 있으며 한국 AT1 채권의 상각 조건이 스위스보다 까다롭다고 지적했다. 한국 금융기관의 AT1 채권이 상각되려면 일반적으로 발행사가 '부실금융기관'에 지정되어야 한다. 한국 금융 당국은 부실금융기관 지정 이전에 해당 기업의 재정 정상화에 개입하는 만큼 실제 지정 확률은 매우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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