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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사설] 수사권 남용은 해야 할 수사의 정당성까지 흔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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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정부 여당의 노골적 개입 탓에 KT 대표 인사가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연임이 결정됐던 구현모 KT 대표(왼쪽)가 연임을 포기한데 이어, 새로 뽑힌 윤경림 후보마저 사퇴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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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과 여당에서 퇴진 압박을 받아온 KT의 CEO 후보자가 주주총회를 일주일여 앞두고 또 사퇴 의사를 밝혔다. 한 달 전 이사회에서 연임이 결정된 구현모 현 KT 대표가 사퇴한 데 이어 다시 파행이 빚어진 것이다. 어제 사퇴한 후보자는 “내가 더 버티면 KT가 망가질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부 지분이 하나도 없는 KT의 인사에 정부가 개입할 권리가 없다. KT는 이번 CEO 인선을 공모 형태로 진행하고, 4배수 후보자를 선정하는 등 절차적 하자도 없었다. 국제 의결권 자문기구들도 모두 이 후보자에게 찬성 입장을 밝혔다. 주주총회를 했으면 그대로 통과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람이 사퇴한 것은 검찰 수사 압박을 견디지 못한 것이란 추측이 많다. 한 시민단체가 이 후보자에 대해 사외이사 향응 제공 등의 의혹을 제기하며 고발하자 검찰이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의혹이 맞는지는 앞으로 밝혀질 일이나 사실 여부를 떠나 후보자 본인에겐 큰 압박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KT 같은 민영화된 공기업이나 금융 지주회사의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일부 CEO가 ‘셀프 연임’을 하면서 주인 행세를 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 제도는 개선돼야 한다. 하지만 KT 사례처럼 정부가 검찰을 내세워 압박하는 것은 좋지 않은 선례를 또 하나 남기는 것이다. 검찰 수사권은 다른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이 돼선 안 된다. 수사권이 남용되면 검찰이 해야 할 진짜 불법 수사의 정당성까지 퇴색될 수 있다. 위험한 일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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