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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과정 잘못됐는데 결과는 정당하다는 헌재… “앞뒤 안맞는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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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수완박法 유효 판단… 법조계 “납득 힘들어”

헌법재판소는 23일 ‘검수완박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에 대한 권한쟁의 심판에서, 국회 법사위 단계에서 당시 야당이던 국민의힘 의원들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이 침해됐다고 하면서도 검수완박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는 유효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한 법조인은 “국회가 입법 절차에서 헌법과 국회법을 위배했더라도 입법 결과는 무효로 할 수는 없다는 앞뒤 안 맞는 결정을 헌재가 내린 것”이라며 “국회의 적법 절차 위배에 대해 면죄부를 준 셈”이라고 말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국회 법사위와 본회의 표결 단계에서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는지, 법사위·본회의 단계 법안 선포를 무효로 볼 것인지와 ‘검수완박법’이 법무장관과 검사의 수사·소추권을 침해했는지 등 모두 6개다. 헌재는 이날 결정에서 법사위 단계 심의·표결권 침해만 재판관 5대4 의견으로 인용하면서 ‘위장 탈당’ ‘17분 안건조정위’ ‘8분 법사위 전체 회의’ 등이 헌법 49조(다수결 원칙), 국회법 57조의 2와 58조(위원회 심사 절차) 등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위장 탈당’ 한 건만 위헌·위법 인정

법사위 단계 ‘위장 탈당’과 관련, 중도·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 재판관은 “민형배 의원은 안건조정위 의결정족수를 충족할 의도로 민주당과 협의해 민주당을 탈당했다”면서 “법사위원장은 민주당 당론에 따라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도록 민 의원을 안건조정위원으로 선임해 실질적 토론을 원칙으로 하는 헌법상 다수결 원칙을 위반했다”고 했다. 진보 성향에 속하는 이미선 재판관도 “법사위원장은 토론 등의 절차를 모두 생략한 채 표결을 진행해 국회법 58조 1항을 위반했다”고 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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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유남석 헌재 소장과 이석태·김기영·문형배 재판관은 “탈당한 민 의원이 비교섭단체 몫으로 안건조정위에 들어간 것은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이들은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헌재는 그러나 법사위원장이 법안을 가결·선포한 것은 재판관 5대4 의견으로 유효라고 봤다. 유남석 헌재 소장과 이석태·김기영·문형배 재판관은 “법률안 심의·표결권이 침해되지 않았기 때문에 법사위원장의 가결 선포 행위도 무효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이미선 재판관은 심의·표결권 침해를 인정하면서도 법사위원장의 가결 선포는 유효하다는 입장에 섰다. 그는 “심의·표결권이 전면 차단돼 국회 기능을 형해화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고 했다. 반면 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 재판관은 “다수당의 당론에 입각한 일방적 입법 추진이 반복될 수 있어 무효로 해야 한다”고 했다.

◇나머지 쟁점은 모두 기각·각하

헌재는 또 재판관 5대4 의견으로 국회 본회의에서 심의·표결권 침해가 없었으며 국회의장의 가결 선포 행위도 유효했다는 결정을 내렸다. ‘회기 쪼개기’를 통한 무제한 토론 봉쇄를 두고 유남석 헌재소장과 이석태·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짧은 회기라도 위헌·위법으로 볼 수 없고 회기가 종료돼 무제한 토론이 종결됐으니 문제가 없다”고 했다. 반면 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 재판관은 “헌법상 다수결 원칙과 무제한 토론에 관한 국회법을 위반했다”고 했다.

헌재가 심의·표결권 침해를 인정하면서 가결 선포는 무효로 하지 않은 사례는 1997년 노동법 날치기 사건, 2011년 방위사업법 날치기 사건에서도 있었다. 하지만 이날 헌재에서 이미선 재판관 한 명이 법사위 단계 심의·표결권 침해를 인정하면서도 법안 통과는 유효라고 하면서 실효성 없는 결정이 나온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헌법학 교수는 “법안 통과를 무효로 하면 국회 169석을 가진 민주당의 반발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했다.

헌재는 또 한동훈 법무장관과 검사 6명이 검사의 헌법상 권한인 수사·소추권을 침해당했다며 낸 권한쟁의 청구는 재판관 5대4 의견으로 각하했다. 유남석 소장과 이석태·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수사·소추권을 직접 행사하지 않는 법무부장관은 청구인 자격이 없고, 수사·소추권을 국가기관 사이에서 조정·배분한 것이어서 검사들의 권한 침해 가능성이 없다”고 했다. 반면 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 재판관은 법무장관과 검사들의 청구인 자격을 인정했다. 이들은 “검수완박법이 검사들의 수사·소추권과 법무장관이 관장하는 검찰 사무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한다”면서 “검수완박 입법은 취소돼야 한다”고 했다.

한동훈 장관은 “헌재 결정을 존중하지만, 위헌·위법이라면서도 유효하다는 결론엔 공감하기 어렵다”며 “국민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헌법적 질문에 답을 듣지 못해 유감”이라고 했다.

[양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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