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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view] 야당 양곡법처리 강행…여의도엔 정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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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야(巨野)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直回附)한 데 이어, 23일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했다. 야당 단독으로 직회부를 의결한 간호법·방송법 개정안 등도 향후 본회의 통과가 유력하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양곡관리법 거부권(재의 요구권) 행사를 시사했었다. 야당 강행 처리-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이어지는 ‘정치 실종’의 악순환이 본격화할 공산이 커졌다.

이날 본회의에서 양곡관리법은 재석의원 266명 중 169명 찬성, 90명 반대, 7명 기권으로 가결됐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생산량이 3~5% 범위에서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기준 이상 초과 생산될 경우나 ▶쌀 가격이 전년 대비 5~8% 범위에서 농림부령으로 정하는 기준 이상 하락할 경우 정부의 쌀 매입을 의무화하는 내용이 골자다. 민주당이 김진표 국회의장의 중재안을 받아들여 쌀 초과생산량이 3% 이상이거나 쌀값 하락률이 5% 이상일 경우 정부가 의무매입하도록 했던 원안보다 정부 재량권을 넓혔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 국회법을 근거로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던 양곡관리법을 본회의에 직회부했다. 법사위원장이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이어서 심사가 지체될 것으로 보고 이른바 ‘법사위 패싱’을 한 것이다. 그간 정부·여당은 “의무매입 강제는 시장 기능을 저해하고 정부 재정부담을 가중시킨다”며 양곡법 개정안에 반대했다. 이날도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매년 1조원 넘는 돈이 양곡 매입에 들어가고 5년 후에는 10분의 1 가격으로 내다버리다시피 하는 법”이라고 비판했다.

양곡관리법 통과로 ‘상임위 단독의결→본회의 직회부→본회의 통과’가 169석 거야의 새로운 입법 공식이 됐다. 지난달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민주당 주도로 직회부가 결정된 간호법·의료법 개정안 등 6개 법안도 이날 표결로 본회의 부의가 결정됐다. 지난 21일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야당 단독으로 본회의 직회부를 의결한 방송법 개정안도 곧 본회의로 넘어온다. 민주당은 지난달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의결한 ‘노란봉투법’(노조법 개정안)도 법사위를 건너뛰고 조만간 본회의에 직회부하겠다는 방침이다.



거야의 새 입법 공식…상임위 단독의결→본회의 직행→ 통과



중앙일보

23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양곡관리법 일부개정 법률안(대안)에 대한 수정안’이 찬성 169, 반대 90, 기권 7로 통과됐다. 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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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회부 조항은 2012년 국회선진화법 개정 당시 ‘법사위의 상왕(上王) 노릇을 제한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법사위가 120일 이내에도 심사를 마치지 않을 경우 상임위 재적 위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국회의장에게 법안의 본회의 직회부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실제 직회부가 활용된 사례는 2017년 세무사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변호사가 세무사 자격을 자동으로 취득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의 법안을 1년 넘게 법사위가 방치하자 기획재정위는 여야 합의로 해당 법안을 본회의에 직회부해 통과시켰다.

민주당이 2020년 21대 총선에서 180석에 가까운 의석수를 차지하면서 직회부 조항은 거야 입법 독주의 무기가 됐다. 현재 민주당, 정의당 등 야당이 5분의 3 이상 차지하는 국회 상임위는 9개에 이른다. 특히 2021년 원 구성 협상 당시 민주당은 여당에 법사위원장직을 내주면서 직회부 요건인 법사위 계류 기간을 기존 120일에서 60일로 단축시켰다. 법사위 무력화를 위한 노림수였다.

김기현 대표는 본회의장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자기들이 다수 여당일 때는 통과시키지 않았던 법안을 ‘아니면 말고’ 식으로 지금 통과시키는 건 입법 폭력”이라고 비판했다. 강민국 수석대변인은 “민생이라는 이름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했지만 결국 각계각층의 우려를 무시한 ‘이재명 대표 하명법’”이라며 “대한민국 농업의 미래를 위해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윤 대통령은 이미 지난 1월 농식품부 신년 업무보고 자리에서 “무조건 정부가 매입해 주는 양곡관리법은 농민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도 지난달 “한 정당이 여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법안에 대해서는 (거부권 행사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날 대통령실은 거부권에 대해 “각계의 우려를 포함한 의견을 경청하고 충분히 숙고할 예정”이라고만 했다.

오영환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정부·여당은 벌써 거부권 행사를 운운하며 겁박하고 있다”며 “농민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쌀값정상화법(양곡관리법)을 즉각 수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선 향후 야당의 직회부에 여당이 대통령 거부권으로 맞서는 무한 대치 국면이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특히 여권에선 잇따른 ‘법사위 패싱’을 막기 위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는 방안까지 거론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여당과 야당이 서로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면서 협치가 사라진 게 사태의 본질”이라고 지적한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민주당은 입법 독주를 하고 있고, 정부는 여소야대 국면에서 야당 협조를 위해 손을 내밀려는 의지가 전혀 없다”며 “국민이 원하는 성과를 내지 못할 테니 여야 둘 다 전혀 유리한 상황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김형준(정치학) 명지대 교수도 “여야가 상대에게 피해를 입히기 위한 정치만 하고 있다. 제도적 자제와 상호 존중이라는 민주적 규범이 사라져 의회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성지원·김정재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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