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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헌재 “수사권, 검찰에 독점 부여된 권한 아냐” 한동훈 전제논리부터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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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검찰 수사권 축소법에 대한 권한쟁의 심판 사건 선고를 앞둔 23일 오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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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권 축소법’(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권한쟁의 심판 사건에서 헌법재판소가 23일 내린 결정의 가장 큰 의미는 수사권이 검찰에만 독점적·배타적으로 부여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한 데 있다. 다수의 헌법재판관은 검사의 수사권이 헌법상 보장되는 권한이 아니라고 봤다. 이 법을 비판해온 검찰의 전제 논리부터 깬 것이다.

이번 권한쟁의 심판 사건의 핵심 쟁점은 수사권·기소권을 분리하기 위해 검사의 직접 수사 범위를 6대 범죄에서 2대 범죄로 줄인 개정 법이 검사의 수사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였다. 국회는 법률을 만들고 바꿀 수 있는 광범위한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검찰 측이 국회 입법에 맞서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하려면 일단 법률의 상위규범인 헌법이 검사의 수사권을 보장한다는 게 인정돼야 한다. 이어 그런 헌법상 권한이 국회 입법으로 부당하고 과도하게 침해됐다는 점까지 인정돼야 인용 결정을 받을 수 있다.

한 장관과 검찰 측은 헌법 제12조3항의 ‘영장신청권’을 근거로 검사의 수사권이 헌법상 권한이라고 주장했다. 헌법이 검사의 권한을 직접 명시하지는 않지만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는 이 조항에 따라 검사의 수사권이 도출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정의견을 낸 유남석·이석태·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수사권은 검사의 헌법상 권한이 아니다”라며 “수사권과 소추권이 행정부 중 어느 ‘특정 국가기관’에 전속적으로 부여된 것으로 해석할 헌법상 근거는 없다”고 밝혔다.

헌재는 행정부 내에서 수사권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조정·배분할 것인지는 ‘입법사항’이고, 헌법이 수사권을 행정부 내의 특정 국가기관에 독점적·배타적으로 부여한 것이 아님은 이미 헌재가 여러차례 결정한 바 있다고 했다. 법무부·검찰 소속 검사뿐 아니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나 경찰, 해양경찰, 군검사, 군사경찰, 특별검사 등 행정부 내에 다양한 검사들이 존재하며 이들에게 수사권이 부여된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헌재는 헌법의 영장신청권 조항에 대해 ‘수사과정에서 남용될 수 있는 강제수사를 법률전문가인 검사가 합리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규정이지 검사에게 수사권을 부여하는 규정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한걸음 더 나아가 “직접 수사권을 행사하는 수사기관이 자신의 수사대상에 대한 영장신청 여부를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는 것은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고 했다. 영장신청권을 가진 검사가 직접 수사권을 행사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인 점이 있다는 취지이다. 또 개정법이 검사의 영장신청권은 아무런 제한을 하지 않아 검사의 헌법상 권한이 침해될 가능성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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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관들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검찰 수사권 축소법 권한쟁의심판 사건 선고를 위해 대심판정으로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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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진행된 법 개정 절차는 ‘위법했다’고 판단했다. 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 재판관은 헌법이 다수에 의한 의사결정 이전에 합리적인 토론과 상호 설득의 과정을 거칠 것을 요구하는데 검찰 수사권 축소법의 개정 과정에서는 이같은 ‘다수결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봤다.

지난해 4월 법사위에서 양향자 의원이 개정안에 반대의견을 표명하자 민형배 민주당 의원이 갑자기 탈당한 뒤 민주당 의원들과 안건조정위원회 구성을 요구하고, 법사위 위원장이자 같은 민주당 소속인 박광온 의원이 민 의원 조정위원 선임, 조정위 진행, 개정안 가결을 일사천리로 처리한 게 문제로 지적됐다.

4명의 재판관은 이같은 행위가 조정위를 여야 동수로 구성하고, 국회 내 다수세력의 일방적 입법 시도를 저지할 수 있도록 의결정족수를 규정한 국회법 조항을 위반했다고 했다. 나아가 “가부동수인 때에는 부결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는 헌법 제49조도 어겼다고 했다.

재판관들은 “헌법 제49조는 국회 내 의결 절차에서 회의 주재자의 중립적 지위를 엄격하게 요구한다”며 “법률안의 내용에 대해 국회의원들 사이에 법정 절차 밖에서의 정치적 합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합의의 내용은 공개되고 국회법 절차를 따르는 위원회 회의에서 충분히 논의되고 토론될 수 있어야 했다”고 했다.

이들 재판관들은 이같은 위법한 절차로 국민의힘 의원들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것은 중대한 사안이라면서 개정법에 대한 무효를 선언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법사위 절차에 위법이 있었다는 점에서는 이들과 의견이 일치한 이미선 재판관이 무효 선언에는 반대하면서 결국 검찰 수사권 축소법은 유효하다고 결론지어졌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명한 이 재판관이 캐스팅보터 역할을 한 셈이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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