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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마크롱 "후퇴는 없다"…남은 4년 힘 잃더라도, 연금개혁 배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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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 공항·철도 점거…경찰 최루탄 대응

중앙일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정년 2년 연장' 등 내용을 담은 연금 개혁안을 연말까지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정부의 일방적인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프랑스 노동조합 연대가 22일 니스 기차역에서 마크롱 대통령을 형상화한 인형을 철로에 설치해 고속열차 운행을 막고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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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2년 연장' 연금 개혁안에 정치 생명을 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야권과 노동계의 거센 반발에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국민 70%의 반대로 남은 임기 4년 동안 국정 동력을 잃을 위기에 처한 마크롱 대통령이지만, 지난 30여년간 성사되지 못한 연금 개혁을 이뤄내기 위해 배수진을 친 모습이다.

프랑스24 등에 따르면 프랑스의 강경 좌파 노동조합 노동총연맹(CGT)과 온건 성향의 민주노동총연맹(CFDT) 등 주요 8개 노조 단체는 23일(현지시간) "마크롱 대통령이 국민을 무시했다"며 올해 들어 9번째 대대적인 총파업에 돌입한다. 필리프 마르티네즈 CGT 사무총장은 이날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마크롱의 대담은 '기괴'하며, 이는 거리로 나온 수백만 시위대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판했다. 그가 언급한 마크롱의 대담은 전날 오후 프랑스 전역에 생중계된 대국민 담화를 가리킨다. 마크롱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지지율 하락을 감수해서라도 연말까지 연금 개혁안을 시행하겠다고 예고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난 인기가 없는 쪽에 설 준비가 돼 있다"며 "단기적인 여론조사 결과와 국가의 일반적 이익 사이에서 후자를 택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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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2일 생중계된 대국민 담화에서 연금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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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좌파 사회당의 올리비에 포르 대표는 "마크롱이 불난 곳에 기름을 더 부었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사회당 소속 의원도 "대통령이 지금 이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완전히 부정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극우 성향의 마린 르펜 국민연합 대표도 "이번 담화에서 대통령이 노동자들을 경멸하는 태도를 보였다. 시위에 나선 일반 시민을 모욕했다"고 주장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추진하는 연금 개혁안은 의회 입법 절차를 마무리하고 한국의 헌법재판소 격인 헌법위원회의 심의와 대통령 서명만을 남겨둔 상태다.

당초 상·하원 표결 절차를 밟을 예정이었던 연금 개혁안은 하원 표결을 앞둔 지난 16일 마크롱 대통령이 의회 표결 없이 입법안을 추진할 수 있게 하는 헌법 조항(49조 3항)을 발동하면서 야권과 노조 단체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정부의 단독 입법에 야당은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 불신임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9표 차로 부결되면서 마크롱 정부는 아슬아슬하게 살아남게 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조기 총선과 국민투표, 보른 총리 교체와 내각 개편 등 야당이 요구하는 어떠한 후퇴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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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프랑스 시민이 22일 대치 중인 경찰을 향해 조명탄을 던지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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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는 정부의 입법 강행 이후 23일 처음 열리는 총파업에 역대 최대 인원이 모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현지 치안 당국은 수도 파리 5000명을 포함해 프랑스 곳곳에 1만2000명의 경찰을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평화 시위는 인정하지만, 폭력 사태는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부터 시위대는 철도와 공항 등 프랑스 곳곳의 교통편을 점거, 마비시켰다. 파리에선 시위대 수백 명이 샤를드골 공항 터미널 접근을 차단했고, 열차 선로에 앉아 경찰과 대치를 이어가며 수도권 일부 열차 운행이 최소 30분 이상 지연됐다. 이에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과 물대포로 진압에 나섰다고 현지 매체가 전했다.

바스티유 광장에 집결한 시위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7시까지 도심을 가로지르며 연금 개혁 저지 행진을 이어간다. 환경미화원의 파업으로 파리 거리 곳곳에는 약 7000톤의 쓰레기가 수거되지 않고 방치돼있는 상황이다. 연금 개혁 반대 시위가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내주 예정돼 있던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프랑스 국빈방문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프랑스의 연금 개혁안은 현행 62세인 정년을 2030년까지 64세로 2년 연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연금을 100% 받을 수 있는 사회보장 기여 기간도 42년에서 2027년엔 43년으로 1년 늘린다. 대신 최소 연금 수령액을 최저임금의 75% 선(월 1015유로·약 135만원)에서 85%인 월 1200유로(약 160만원)로 올릴 계획이다.

프랑스 정부가 국민 다수의 반대에도 연금 개혁을 강행하려는 건 이대로 가다간 저출산 고령화로 연금 적자가 눈덩이처럼 크게 불어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내가 (2017년 5월 첫 번째 임기) 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연금 수급자가 1000만 명이었으나, (6년이 지난) 지금은 1700만 명이 됐다. 2030년엔 2000만 명에 육박한다"며 "더 오래 기다릴수록 (적자는) 더 악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 연금자문위원회(COR)에 따르면 프랑스 연금 재정은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올해 18억 유로(약 2조5000억 원) 적자로 돌아서고, 2030년 135억 유로(약 19조 원) 적자, 2050년 439억 유로(약 61조 원) 적자가 예상된다.

김서원 기자 kim.seo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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