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3 (토)

이슈 만화와 웹툰

만화가 윤태호 “나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철저하게 글쓰고 그림 그리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3년 휴재끝 돌아온 미생 시즌2...최근 15권 출간

요르단·가나서 영업하는 중소기업의 고군분투

IT 플랫폼 신사업 확장하려는 대기업 내 기싸움

직접 취재한 중고차 부품상·철강 공장 등 그려

“업계 사람들 숨소리까지 녹음해 대사로”

시즌2, 결혼 주제도 담을 것...시즌3 구상도 끝나

“현실 풍경 묘사하는 게 내 임무...판단은 독자가”

매일경제

최근 미생 단행본 15권을 출간한 윤태호 작가가 서울 마포구 슈퍼코믹스스튜디오에서 매일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형기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대기업 종합상사를 떠난 ‘미생’ 장그래와 오상식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퇴사 후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이들은 ‘완생’으로 나아가고 있을까. 최근 서울 마포구 슈퍼코믹스스튜디오에서 만난 만화가 윤태호는 “이미 시즌2의 마지막 장면과 시즌3 기획까지 구상해뒀다”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인기 만화 미생의 ‘그 후’ 이야기가 폭풍 전개되고 있다. 미생은 앞서 2012~2013년 시즌1 연재, 2014년 배우 임시완(장그래)·이성민(오상식) 주연의 tvN 드라마 방영으로 인기를 끌었다. 바둑 용어 ‘미생’은 직장인의 애환을 담은 내용과 통찰이 공감을 사면서 ‘고군분투하는 사회인’을 지칭하는 말로도 쓰이게 됐다.

11년째 직장 만화를 연재 중인 윤태호 작가도 고군분투 중이다. 2015년 시즌2 연재를 시작했지만 팔 부상과 다른 작품 연재가 겹치며 2018~2021년 공백기를 가졌다. 지금은 다시 본궤도에 올라 매주 목요일 밤샘 작업, 주중엔 외부 취재를 하는 일상을 유지한다. 지난달 3년여 만에 단행본 15권도 냈다. 올해 18권까지 순차적으로 출간 예정이다.

시즌2는 안착·출장·결혼 등 3가지 소주제로 펼쳐지는 중이다. 창업 초기 기업의 애환, 거래처를 뚫기 위한 ‘계란으로 바위치기’식 해외 출장 등 윤 작가의 취재를 바탕으로 생생하게 그려졌다. 보기에 따라 처절하거나 흥미진진하고, 실용적이기까지 하다. 주로 중소·영세 기업을 상대하는 무역보험공사, 코트라 같은 공공기관 직원들, 인터넷 커뮤니티나 작품 댓글이 그의 주요 ‘조력자’다.

매일경제

미생 시즌2 161수 중. 윤태호 작가가 요르단 현지 취재중 만났던 중고차 부품 중개상 타르칸 씨를 모델로 그린 에피소드. ⓒ 윤태호/SUPERCOMIX STUDIO Corp.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극중 장그래가 만나는 요르단 현지 중고차 부품상 ‘타르칸 사장’ 이야기는 윤 작가가 2013년 요르단을 방문했을 때 취재한 내용이다. 직접 요르단 4차례, 가나는 1차례 방문했다. “당시 그분 회사 뒷마당에 못쓰는 차 부품 몇천 개가 널려있었는데 한국 업체에 사기당한 거였어요. 만화에서라도 사기꾼을 응징하려고 그 내용을 최근 연재분의 에피소드로 다뤘어요. 그 직후 마침 타르칸 씨가 업무차 한국에 와있다는 걸 알게 돼 저녁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어요. 10년 만에 만나는데, 기운 좋은 우연이 겹쳤죠.”

취재와 연재를 오가는 일상 속에 직접 ‘상사맨’에 빙의한 듯한 경험도 생긴다. 극중 장그래의 대기업 입사 동기 안영이·장백기 등이 추진하는 신사업 ‘철강 유통 플랫폼’과 사내 갈등에 관한 내용은 윤 작가가 대기업 체질개선에 관한 기사를 보고 아이디어를 낸 기획이다. 마침 국내에도 유사한 온라인 플랫폼이 출시돼있었고, 후속 취재가 비교적 수월하게 이뤄졌다.

“자꾸 만나서 친해져야 해요. 그분들이 부지불식간에 쓱 꺼내는 말을 듣고 대사로 만들어야 하거든요. 맥주 한 잔을 함께 마셔도 휴대폰 녹음기를 켜둬요. 그걸 저희 스태프가 토씨 하나 놓치지 않고 받아 치죠. 말 중간의 추임새, 숨소리, 제대로 끝맺음되지 않는 부분까지 챙겨요. 독자가 어감만 보고도 이 사람이 ‘철강맨’이란 걸 느낄 수 있게끔 톤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매일경제

최근 출간된 미생 15권


치밀한 취재 습관은 창작자가 가진 두려움의 승화다. 그는 “취재 과정에서 어떤 은어를 알게 돼도 쾌감보다는 ‘몰랐으면 어쩔 뻔 했나’라는 짜르르 한 느낌이 든다”고 표현했다. 또 “글과 비주얼(그림)을 둘 다 책임지는 사람은 어느 한쪽으로 책임을 미룰 수가 없다. 디테일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미리 글을 써놓고 그림을 그리는 윤 작가의 목표는 ‘그림 그리는 내가 글 썼던 나를 죽이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쓰자’는 것. 살벌하기까지 하지만, 그가 디테일에 고통 받으면서도 여전히 디테일을 추구하는 건 독자에겐 기쁨이다.

독자는 그에겐 ‘제3의 조력자’다. 미생은 연재분 댓글창에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하듯 털어놓고 가는 독자들이 유독 많다. “바둑 연수생이던 장그래가 성장하는 내용을 보고 누군가 ‘실패한 과거가 나를 일으켜 세운다’는 댓글을 달아주셨어요. 그게 이후 미생이란 작품의 톤앤매너를 잡아줬고, 제 개인에게도 힘이 됐습니다. 인생이란 게 지우개로 지울 이유도 없고 안 좋은 기억이더라도 다른 색채로 나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것 같거든요.”

시즌2는 창업과 안착, 출장과 성장을 거쳐 ‘결혼’도 주제로 삼는다. 요즘 사람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 결혼을 하더라도 부딪치게 되는 크고 작은 모든 문제가 소재다. 윤 작가 개인에겐 이미 장성한 대학생 아들과 고등학생 딸이 있지만 “아이를 갖지 않으려는 쪽의 이유도 이해가 간다. 어느 편을 들 수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어떤 주장을 하건, 작품 안에선 메시지 전달보다 풍경 묘사가 제게 더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한다. 작품이 나온 후에 독자들 판단에 따라야 한다”며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보게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싶다”고 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