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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기자수첩] ‘술값 통제’로 민심 잡는다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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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배동주 기자




정부가 술값을 통제하고 있다. ‘소줏값 6000원’ 고착화를 막겠다며 기획재정부는 소주 제조사 수익 규모와 경쟁 상황을 살폈고, 국세청은 소주 제조사에 가격 인상 자제 전화까지 돌렸다. 공장 출고가가 100원 오르면 식당·주점의 소주 판매가는 1000원이 오른다는 ‘귀납’에서다.

소줏값에 이어 맥줏값도 통제하는 모양새다. 지난 9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물가에 연동하는 맥주 세금 체계를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2020년 맥주 주세를 종량세로, 또 물가연동제로 변경 시행한 지 3년 만이다.

물가에 연동해 오르는 맥주 주세는 가격을 올리는 직접적인 요인으로 꼽혀 왔다. 병값, 에너지 비용, 인건비 상승 정도가 올해 인상 요인인 소주와 달리 맥주에는 당장 오는 4월 ℓ당 세금 30.5원 인상이 예정됐다. 때문에 소주 제조사는 인상을 보류했지만, 맥주는 아니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소주와 맥주만큼은 반드시 가격 인상을 막겠다는 의지의 발로(發露)다. 소주·맥주가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차치하고, ‘서민의 술’로 불리는 이들 술값의 상승이 주는 민심의 이반이 두려운 탓이 작용했다. 정부 관계자 역시 “민심을 위함”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정부의 이 같은 민심 챙기기가 위험해 보인다. 술값 상승을 잠깐 억누르는 효과에 그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소주 주정의 원료인 타피오카 가격은 올해 7% 올랐고, 소주 병값도 20%가 올랐다. 오는 하반기 소줏값은 더 크게 뛸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맥주도 마찬가지다. 물가 연동 세금 인상을 미루면 언젠가 미룬 만큼의 세금을 올려야 할 수밖에 없다. 종가세를 적용받는 소주는 제품 가격이 오른 만큼 세금이 자동적으로 더해지는 구조인데, 소주와 맥주의 과세 형평성을 위해서라도 인상분을 소급해 적용해야 한다.

정부의 가격 통제는 1970년 이미 미국서 실패한 정책이다. 석유파동으로 물가 상승 위기를 맞은 미국은 제품 가격의 상한선을 정하는 등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한 바 있다. 정책 시행 초기 물가 상승률은 잡혔지만, 가격 통제가 풀리자 미국 소비자물가는 연 15%까지 뛰었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술값 통제가 이미 통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소줏값 6000원을 막겠다며 제조사를 압박했지만, 서울 시내 식당·주점에선 이미 소주 출고가 인상 없이 소줏값 인상이 이뤄지고 있다. 인건비와 임차료, 재료비 같은 비용이 술값으로 전가되고 있는 탓이다.

물가 상승 요인을 무시한 정부의 인위적 개입은 시장 충격으로 연결될 뿐이다. 이미 전기·가스 요금에서 충분히 경험하고 있다. 현재의 소줏값 6000원은 제조사의 출고가 인상보다 정부가 묶어뒀던 전기·가스료를 한 번에 인상하고 나서면서 커진 운영비 부담이 더 크게 작용했다.

정부가 제조사를 압박해 소주·맥주 출고 가격 인상을 막아도 운영비 등 물가가 계속해서 오르는 한 소주·맥주 판매가 역시 오를 수밖에 없는 셈이다. 억누른 가격이 한번에 오르면 민심은 더 크게 흔들릴 테다. 독과점 폐해가 없는 한 가격 결정은 시장에 맡기는 게 옳다.

배동주 기자(dontu@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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