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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한국도 연금개혁 시급한데···프랑스처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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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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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추진한 연금개혁 법안이 지난 20일(현지 시간) 우여곡절 끝에 통과되면서 국내에서도 연금개혁을 어떤 과정을 거쳐 추진할 것인지 이목이 쏠린다.

프랑스 연금개혁 법안은 현 62세인 정년(연금 수령 연령)을 2030년까지 64세로 단계적으로 연장하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시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고, 대통령이 의회(하원)를 건너뛰는 초강수를 뒀다. 연금 재정 수지가 악화해 올해 적자로 돌아서면 정부 지출이 많이 늘어날 것이기에 이를 막는다는 것이 명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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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연금개혁의 목표는 국민연금의 재정 소진에 대비,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다만 프랑스와는 다른 사회적 배경 속에서 연금개혁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8월 국회 입법조사처의 ‘연금개혁 논의 검토와 방향성’ 자료를 보면, 프랑스의 연금 보험료율은 27.8%(2020년 기준)에 달하고, 소득대체율은 60%(중위소득 기준)로 주요 국가들 중 높은 편이다. 프랑스는 1930년 공적연금제도가 도입돼 여러 차례 개혁을 거쳤다. 한국과 달리 ‘당해 걷은 보험료와 세금으로 연금을 지급’하는 부과방식 연금제도를 운용한다.

한국은 1988년 국민연금 제도가 도입됐고, 보험료율은 9%로 1998년 이후 20여년간 유지하고 있다. 현재는 보험료를 받아 적립금을 쌓아놓고 연금을 지급하는 ‘적립방식’인데, 기금이 고갈돼 부과방식으로 바뀌면 보험료율이나 정부 지출액이 프랑스 이상으로 훌쩍 뛸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저출생·고령화 속도가 빨라 인구 구조상 재정 불안이 심각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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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프랑스 정부는 정부대로 재정수지 악화를 막기 위한 조치로, 시민들은 이미 충분한 보험료를 내고 있음에도 재정 부담을 시민들에 전가하는 데 저항하는 것으로 양측이 근거를 가지고 대립하고 있다”며 “우리가 봐야 할 지점은 연금개혁을 사회적 핵심 의제로 논의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오 정책위원장은 “프랑스와 한국의 연금제도의 상황은 달라 정부안과 시민들의 반응을 직접 비교하기 어렵다. 오히려 한국은 재정 불안이 더 심각한데도 정부가 뒷짐 지고 있는 형국”이라고 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한국에서 연금개혁은 청년·미래세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사회 전체적인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서 당장의 정치적 유불리를 따질 게 아니라 리더십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국내에서 연금개혁 논의 불씨가 사그라드는 것이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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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소득대체율·보험료율 추이. 연합뉴스 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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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문가들이나 가입자단체들은 연금개혁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 재정수지 균형을 위해 보험료율을 올려야 한다는 데도 대체로 동의한다. 다만 재정 안정을 위해 현 소득대체율(현재 42.5%, 2028년 40%)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과 노후소득 보장 강화를 위해 더 올려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지난해 8월 한국리서치의 조사에서 응답자의 87%가 개혁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다만 일반 시민들은 보험료 인상보다는 수급 개시연령 상향 등의 조처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하원 통과가 불확실해 보이자 표결을 생략하고 총리 책임 아래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헌법 조항을 발동했다. 한국에서도 연금개혁은 국민연금법 개정 사항인데 프랑스와 달리 정부가 이를 단독으로 밀어붙일 수 없다. 국회에서 개정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

한국에서는 두 차례 국민연금법 개정을 통해 연금개혁이 이뤄졌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소득대체율을 70%에서 60%로 내리고 수급개시 연령을 단계적으로 60세에서 65세(2033년)로 올렸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당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보험료율을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내리는 개혁안을 추진했으나,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대신 보험료율은 유지하고 소득대체율을 60%에서 40%(2028년)로 단계적으로 하향하는 개혁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이때 국민연금을 손보는 대신 기초노령연금(기초연금 전신) 제도가 도입됐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엔 공무원연금을 ‘더 내고 덜 받는’ 식으로 개혁하는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정부와 국회가 개혁 법안에 합의해야 연금개혁은 가시권에 들어온다. 이에 앞서 정부나 국회는 공청회, 토론회 등 소통을 통해 개혁안에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연금개혁을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고, 현재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도 연금개혁에 동의한다. 이에 국회에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설치됐고, 연금개혁을 위한 절차적 과정은 수월해질 것이란 평가도 나왔다.

국회 연금특위 산하 민간자문위원회가 국민연금 모수개혁(보험료율, 소득대체율 조정)안을 두고 논의할 때만 해도 개혁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그러나 지난달 연금특위가 모수개혁은 정부 몫으로 돌리고 구조개혁을 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논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민간자문위의 활동 경과를 담은 최종보고서를 이달 말까지 연금특위에 보고하기로 했지만, 당장은 이 보고 일정조차도 잡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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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이 22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사회적 대화 기구로 전환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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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여개 노조 및 시민단체로 이뤄진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22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 연금특위에서 연금논의가 원점으로 돌아간 것은 예견된 실패”라며 “정치권과 전문가가 주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노사, 청년, 노인, 여성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참여해 노후소득보장을 강화하고, 연금제도의 경제사회적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나가자”고 주장했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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