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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K반도체 최악 면했지만…美 ‘중국 옥죄기’ 드라이브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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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미국 상무부는 21일(현지시간) 미 반도체 지원법에서 규정한 투자 보조금을 받으면 이후 10년간 중국에서 첨단 반도체 생산능력을 5% 이상 확장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의 ‘가드레일’(안전장치) 세부 규정을 발표했다. 사진은 지난 10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미국ㆍ인도 통상 대화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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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은 면했지만, 갈 길이 너무나 멀다”

미국 상무부가 21일(현지시간) 발표한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상 ‘가드레일’(안전장치) 세부 규정을 놓고 국내 업계가 보이는 반응은 대략 이렇게 요약된다. 이번 가드레일 세부 규정의 핵심은 첨단 반도체 공장도 5% 이내의 범위에서는 생산능력을 확장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전 세대 범용(legacy) 반도체의 생산능력 확장 제한은 10%까지다.

미 반도체법은 보조금을 수령한 기업에 대해 10년간 중국 등 우려 국가에서 반도체 생산능력의 ‘실질적 확장’(material expansion)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보조금 전액을 반환하게 했는데, 이번 세부 규정은 이 조건을 다소 완화한 것이다. 중국에 반도체 공장이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한숨은 돌렸다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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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 반도체 보조금 규정에 대한 K반도체 업계의 우려는 여전히 크다. 미 상무부가 지난달 28일 공개한 ‘반도체 생산지원금 신청 안내’에 따른 초과이익 공유제(수익이 전망치 초과시 미 정부와 이익 공유) 등 규제 조치는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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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기본적으로 미국의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통제 드라이브는 계속해서 강화될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미국의 보조금을 받는 반도체 기업의 중국 내 사업이 전면 금지되는 것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중국에서 반도체 사업을 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미 상무부가 이번 가드레일 세부 규정을 밝히면서 실질적으로 중국에 대한 압박 의지를 거듭 천명한 것도 중국 내 공장의 양적ㆍ질적 확장에 제약이 불가피할 거란 관측을 뒷받침한다.

가드레일 세부 규정도 포장이 그럴싸할 뿐 알맹이는 크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도체 등 설비투자 기업의 세액공제 비율을 확대하는 내용의 이른바 ‘K칩스법’ 제정을 주도한 양향자 무소속 국회의원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미국이 반도체 첨단 장비 생산능력의 5% 확대를 허용한다는 것을 홍보하고 있지만 실상은 반도체 생산량을 늘리지 말라는 얘기”라며 “생산량의 획기적 허용이 없다면 이번 조치는 속 빈 강정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미 정부는 지난해 10월 발표한 ‘대중(對中)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를 더욱 강화하는 추가 조치를 4월쯤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적인 관심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적용된 ‘수출통제 1년 유예 조치’의 연장 여부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일정 기간 중국 공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선 수출통제 유예 조치의 연장이 필수라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의 앨런 에스테베스 차관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삼성과 SK하이닉스에 제공한 반도체 수출통제 1년 유예가 끝나면 어떻게 되느냐’는 물음에 ”기업들이 생산할 수 있는 반도체 수준에 한도를 둘 가능성이 크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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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 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 주요 내용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미국 상무부]


4월 26일로 예정된 윤석열 대통령의 미 국빈 방문을 앞두고 한ㆍ미 양측이 반도체 보조금 및 대중 수출통제와 관련해 물밑 조율을 어떻게 할지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21일 나온 미 상무부의 세부 규정도 “동맹국 공장까지 과하게 규제하면 오히려 중국 반도체 기업들만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는 한국 정부의 주장이 일정 부분 받아들여진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8일부터 사흘간 미국을 방문해 상무부 등 정부와 의회의 고위급 인사를 접촉했다고 한다. 한 여권 인사는 “4월 한ㆍ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 국익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관련 협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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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중앙SUNDAY와 인터뷰한 양향자 무소속 의원. 최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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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기적으로 볼 때 K반도체의 중국 내 공장 운영에 한계가 불가피하고 미국의 까다로운 보조금 규정에 근본적 변화가 없다면 반도체 설비 시설의 국내 투자를 키우는 방식으로 활로를 모색할 때라는 얘기도 나온다. 양향자 의원은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생산기지 운영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눈을 국내로 돌려볼 필요가 있다”며 “경기도 용인에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삼성의 계획이 최근 시의적절한 때 나왔다”고 말했다.

중국은 미 상무부의 가드레일 세부 규정과 관련해 “결연히 반대한다”고 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2일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 측의 소위 가드레일이란 철두철미한 과학기술 봉쇄와 보호주의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어 “(미국은) 일부 국가를 협박해 인위적으로 산업망 디커플링(탈동조화)을 하게 하고, 시장경제 규율과 공평한 경쟁의 원칙을 엄중하게 위반하고, 세계 경제의 회복과 발전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다”며 “우리는 이에 대해 결연히 반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상적인 국제 경제ㆍ무역 협력을 납치하는 것은 결국 자승자박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일본 교도통신은 22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오는 5월 19∼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을 방문할 때 일본 내 미 기업의 반도체 공장을 찾는 방안을 양국 정부가 조율 중이라고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방일 기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함께 히로시마현 히가시히로시마시의 마이크론 메모리 재팬 공장을 찾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마이크론 메모리 재팬은 미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의 자회사로 지난해 11월부터 최첨단 D램을 양산하고 있다.

김형구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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