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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완성차 1위 도요타도 “변해야 산다”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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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세계는 지금 ㅣ 일본 나고야


한겨레

2023년 1월13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모터쇼에서 도요타 사장 도요다 아키오가 말하고 있다.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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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법정 공휴일에 쉬지 않는 일본 기업이 있다. 중소기업이나 특수한 업종의 기업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내로라하는 대기업이다. 바로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인 도요타다.

도요타는 일본의 법정 공휴일과 관계없는 자체적인 근무·휴무 달력이 있다. 이른바 ‘도요타 캘린더’다. 도요타 캘린더에 따라 도요타그룹 계열사는 물론 수많은 협력사가 근무일을 같이한다. 심지어 도요타가 속한 아이치현의 중심 도시인 나고야의 시내 술집까지도 도요타 캘린더에 맞춰 휴무일을 정한다.

도요타 본사가 있는 아이치현은 일본 전국시대 무장(武將)들의 출신지다. 우리에게도 귀에 익은 이름인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세 사람도 아이치현을 본거지로 전국적인 인물로 성장했다. 오다 노부나가는 일본 중부 지역과 일왕이 거주한 교토를 장악하며 천하통일의 기반을 쌓았다. 그의 가신이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사카 지역의 상공업을 번성시키며 일본 통일뿐 아니라 세계 제패의 야욕까지 꿈꿨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대척점에 있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당시에는 중심에서 벗어나 있던 지역인 에도(지금의 도쿄)에서 권토중래를 꿈꾸며 결국 전국시대를 통일한 주인공이 됐다. 이 외에 규슈와 가나자와 지역의 광활한 영지를 손에 넣은 가토 기요마사, 마에다 도시이에 또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아이치현 출신의 유명 인물들이다.

일본 47개 광역지자체 중 하나에 불과한 아이치현이지만 이렇듯 일본 전역을 장악하며 세력을 떨친 전국시대 영웅들의 출신지라는 사실에 이 지역 주민들의 역사적 자부심이 클 수밖에 없다. 무장들의 중심지였으므로 이 지역은 칼과 도자기의 유명 산지이기도 하다. 쇼군이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610년 나고야성 축성을 지시했다. 인근 지역의 상공업자와 주민 등 6만 명을 집단 이주시키며 자신의 출신 지역 기반도 공고히 했다. 당시로서는 전대미문의 대규모 신도시 계획으로 탄생한 나고야성 주변의 상공업자들이 현 일본 제조업의 정신과 역사의 원류가 됐다.

일본 3대 영웅의 고향

도쿠가와 막부의 평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사무라이들의 무사도 정신은 기술과 접목돼 ‘모노즈쿠리’(ものづくり·물건 만들기라는 일본어로 장인 정신을 의미)라는 일본 특유의 제조업 정신으로 계승됐다. 모노즈쿠리의 본고장인 나고야 기업들의 보수성과 배타성은 이런 역사에 닿아 있고, 일본 안에서도 거래 조건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이를 대표하는 기업인 만큼 도요타는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게 아니고 ‘두드리다가 돌다리가 무너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까다로운 기업문화로 유명하다.

세계 자동차 판매 1위의 기업답게 도요타의 여러 경영이념은 경영학 교재에 단골로 소개된다. 그만큼 도요타의 경영이념은 자동차산업뿐 아니라 제조업 전체, 기업의 생산관리 전반에 걸쳐 대단한 영향력을 미쳤다. 도요타가 일본에서 기업 표준을 만들어왔지만 일본인의 정신문화가 집결된 것이 도요타 경영이념이라고도 볼 수 있다.

도요타 표준으로 유명한 것 중 하나가 ‘도요타 생산방식’(TPS·Toyota Production System)이다. 부품·재고·시간·인력 등 비용이 발생하는 낭비 요소를 모두 철저히 없애자는 것이 핵심인데, 이 방식이 산업과 물류 업계에 유명한 ‘적기생산방식’(Just in Time·적재적소에 적기 공급) 이론으로 통용되고 있다.

도요타 생산방식에서 강조하는 효율성은 결국 중소 협력업체들의 납품가 후려치기라는 비판도 있다. 또한 적기 공급만 따지다보니 반도체 부족 사태와 같이 글로벌 공급망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생산 중단으로 이어지는 결점도 있다. 그래서 요즘은 ‘Just in Case’(비상 상황에 대비한 공급망 확보)로 바꿔야 한다는 반성도 나온다.

한겨레

4월부터 도요타 사장에 취임하는 53살의 사토 고지.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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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는 일본 산업을 선도하는 기업답게 맏형의 역할도 자임한다. 도요타 자동차에 부품을 공급하는 1차 부품기업에는 덴소, 아이신 등 매출액 1조엔을 넘는 기업이 수두룩하다. 2·3차 부품기업과 협력사까지 더하면 6만 개사가 넘고 종업원 수는 140만 명에 이를 정도로 도요타는 일본 경제와 고용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친다. 도요타는 협력사에 까다로운 납품 관리를 요구하지만, 이들이 어려울 때는 적극적인 지원을 마다하지 않는다. 원부자재 가격이 올라 협력사들의 경영이 어려워지자 2022년에는 협력사당 1천만엔씩 현금을 지원했다.

도요타는 자회사인 다이하쓰·히노 자동차뿐만 아니라 근래 마쓰다·스즈키·이스즈 등 경쟁기업들의 지분까지 사들이며 협력을 늘리고 있다. 거기에다 업종이 다른 엔티티(NTT·통신), 전일본공수(ANA·항공), 동일본여객철도(JR동일본·교통), 야마토운수(물류), 세븐앤아이(유통) 등 거의 전 산업 분야의 대표 기업들과 ‘올재팬’(All Japan)이라는 명칭까지 만들어 국가적 산업협력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 정점에 도요타가 우뚝 서 일본 경제를 이끄는 것이다.

도요타 창업자 도요다 사키치가 100년 전 주창한 ‘도요타 강령’은 아직도 도요타 누리집의 기업 소개에 가장 먼저 나와 있을 만큼 핵심 경영철학이다. 이 도요타 강령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말이 파트너에 대한 이타 정신이다. 고객·사회·사원을 중요시하고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자는 의미다.

“주변을 보살피고 이익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정신은 일본의 전통적 상인 덕목인 ‘삼포요시’(三方良し)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삼포요시란 판매자와 구매자만 이득을 보는 것이 아닌 세상 주변 사람들도 이득이 되도록 한다는 뜻이다. 이렇듯 도요타는 주변과의 관계성을 중시하는 일본 정신문화를 앞세워 일본 전체를 이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0년 만의 거대한 변혁기

탄소중립 사회의 실현을 각 국가가 외치면서 글로벌 자동차업계는 누가 더 빠르게 전기차로 전환하느냐로 거센 경쟁을 하고 있다. 하지만 도요타가 중심이 된 일본 자동차업계는 ‘멀티 솔루션’을 내세운다. 전기차뿐 아니라 내연기관, 연료전지, 하이브리드 차량에도 탄소 절감의 솔루션이 있다는 것이다. 1997년 세계 최초 하이브리드 양산 차량인 프리우스를, 2014년 세계 최초 수소차 시판 차량인 미라이를 선보인 기업답게 도요타는 전기차에만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기술 옵션을 모두 적용하겠다고 자신했다.

신차를 모두 전기차로 생산하려면 배터리 생산량이 지금보다 40~80배로 확대돼야 하므로 급진적 전환은 기술적으로 힘들 것이라는 전제도 깔려 있다. 무엇보다 전기차로 전환을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상당 부분 사라지게 될, 3만 개에 이르는 내연기관 차량 부품을 생산하는 수많은 협력사의 고용과 생계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글로벌 경쟁이 격화하는 전기차 시장을 보며 도요타도 태세 전환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2023년 1월26일 도요타자동차는 4월1일부로 최고경영자 도요다 아키오 현 사장이 일선에서 한발 물러나 회장으로 취임하고, 새로운 사장으로 53살의 사토 고지 렉서스 사장이 취임한다고 발표했다.

66살인 도요다 아키오 사장은 리먼브러더스 사태의 여파로 회사가 4300억엔의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2009년 사장에 취임했다. 그는 취임 초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대규모 리콜 사태 등 각종 악재를 극복하고 도요타를 2020~2022년 3년 연속 세계 1위 판매 기업으로 이끌 만큼 공적을 인정받았다. 창업가 집안 출신이라는 프리미엄까지 더해 그의 발언 하나하나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의욕적인 경영 행보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이번 사장 퇴진이 갑작스럽다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도요다 아키오 사장은 전기차, 자율주행차, 커넥티드카로 대변되는 새로운 자동차산업을 이끌기에 자신이 너무 옛날 세대라는 점을 젊은 경영자 발탁 배경으로 직접 설명했다. 신임 사장인 사토 고지는 엔지니어 출신으로 렉서스의 전기차 모델 개발, 수소연료차 개발 등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도요타의 앞으로 경영전략을 내다볼 수 있다.

2022년 11월22~23일 이틀간 코트라(KOTRA)는 도요타 계열사들이 밀집해 있는 일본 아이치현 카리야시에서 한·일 미래차 전시상담회를 열었다. 전기차, 수소연료전지, 배터리, 자율주행, 전장 소프트웨어 등 한국의 중소기업 45개사가 미래차 관련 신제품을 전시해 도요타·덴소·아이신 등 도요타그룹의 주요 계열사 150개사와 상담했다. 현대자동차의 전기차 아이오닉5와 수소연료전지차 넥쏘도 일본 기업 관계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특히 조달 부서뿐 아니라 작업복 차림의 일본 기업 기술 부서 직원이 대거 참관했다. 이들은 한국 기업들의 전시품을 꼼꼼히 살펴보고 비즈니스 상담, 세미나까지 참석해 그들의 관심이 얼마나 큰지 보여줬다.

도요타 누리집에 나와 있듯, 일본 자동차업계 사람들은 지금이 100년에 한 번 있을 큰 변혁기라는 말을 자주 쓴다. 장하준 교수의 경제학 저서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나오는, 100년 전 후진국의 한 섬유 제조 기업이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동차산업에 뛰어들어 성공한 예시의 기업이 도요타다. 도요타의 100년 뒤 모습은 어떨지 궁금하다.

남우석 KOTRA 일본 나고야무역관장 ericnam@kotr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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