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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伊 '파시즘 후예' 멜로니 정부에 맞설 '좌파' 대표 슐라인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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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출판&연구집단 신현재 기획위원]
한국도 요즘 정치 상황이 참혹하지만, 지구 반대편 유럽 대륙의 반도 국가도 사정이 만만치 않다. 이탈리아 이야기다.

작년(2022년)은 이 나라에서 파시스트 베니토 무솔리니가 '로마 진군'이라는 쿠데타로 집권한 지 100년이 되는 해였다. 그런데 하필 이런 해에 파시즘의 맥을 잇는 정당 '이탈리아 형제당'의 조르자 멜로니가 총선 승리로 총리가 됐다.

현 이탈리아 공화국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파시스트 정권에 맞서 벌어진 1년간의 내전 끝에 수립된 나라다. 이때 반파시즘 저항군에 참여한 정당들, 기독교민주당, 자유당, 행동당, 사회당, 공산당 등이 새 나라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이루었고, 그 정신은 지금도 이어지는 헌법 제1조 1항("이탈리아는 노동에 토대를 둔 민주공화국이다")에 새겨졌다. 더구나 이탈리아에서는 1990년 초까지도 유럽 최대 급진좌파정당인 공산당이 제1야당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 옛 이야기다. 멜로니 총리가 야당 시절에 퍼부었던 험악한 말들(유럽연합 공격, 푸틴 찬양, 반페미니즘, 이주민이나 성소수자 혐오 선동)을 집권 뒤에 적극적으로 행동에 옮기지는 않는다며 많은 이들이 안도한다. 하지만 "걱정했던 것보다 더 퇴보하지는 않았다"며 기뻐하는 이런 상황 자체가 퇴보의 증거다. 이 점 역시 우리와 판박이다.

야당 쪽 사정 역시 최근까지 우리와 비슷한 데가 있었다. '민주당'이라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이름을 한 정당이 2년 전까지 집권당이었고 현재는 제1야당이다. 사회민주주의 세력으로 거듭난 공산당과, 공산당의 오랜 숙적이었던 기독교민주당 안의 비교적 개혁적인 흐름이 두 뿌리가 돼 2007년에 결성한 정당이지만, 이 당의 간헐적 집권은 늘 대중의 깊은 실망과 분노 그리고 이에 따른 극우파의 약진으로 이어졌다. 멜로니 정부는 그 최신판일 뿐이다.

그런데 한 달 전, 이런 이탈리아 민주당에 전에 없던 격변이 벌어졌다. 2월 26일 당대표 선거 2차 투표에서 당선 유력 후보였던 스테파노 보나치니를 누르고 1985년생인 여성 엘리 슐라인이 승리한 것이다. 슐라인은 유대계이고 커밍아웃한 양성애자인 데다 정치적 입장이 역대 민주당 대표 중 가장 좌파적이다. 언론은 민주당 새 대표에게 '이탈리아의 알렉산드리아-오카시오 코르테스'라는 별명을 붙였다.

민주당 대표 경선의 이변

슐라인과 보나치니의 이력을 보면, 민주당 대표 경선 구도에 관한 이런 세평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슐라인이 밀레니얼 세대여서 그렇지 보나치니도 1967년 생이니 한국 정치 기준으로는 젊은 축에 속한다. 보나치니는 전형적인 노동계급 가정 출신이고 10대 시절부터 공산당 당원이었다. 젊어서는 핵무장 반대 평화운동에 앞장섰고, 2014년부터 에밀리아-로마냐 주지사로 일하면서는 노동조합과 협력하며 지역 경제 발전 면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반면에 슐라인은 정치학 교수인 유대계 미국인 아버지와, 사회당 계열의 정치명문가 출신이며 역시 교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영향으로 미국, 이탈리아, 스위스, 세 나라 국적을 동시에 갖고 있으며,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준 것도 이탈리아가 아니라 미국이었다. 슐라인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선거운동에 참여하며 정치에 뜻을 품었다.

전 공산당 청년 지도자와 오바마 선거운동원. 누가 봐도 전자가 좌파이고, 후자가 우파일 것만 같다. 그러나 이탈리아인들은 정반대로 봤다. 이유가 무엇일까? 지난 10여 년간 슐라인이 걸어온 정치 이력 때문이다.

2013년 이탈리아에는 민주당의 엔리코 레타가 이끄는 대연정이 출범했다. 언론 재벌 출신의 부패 정치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우파 진영이 민주당과 함께 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베를루스코니 재집권만은 막는다는 게 애당초 공산당 후신과 기독교민주당 후신이 하나의 정당, 민주당으로 모이며 내세운 대의였다. 그래 놓고는 베를루스코니 세력과 함께 집권한 것이다.

슐라인은 이때 민주당 집행부에 격렬히 반발했다. 단지 말만으로 공격한 게 아니라 2011년에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점거(오큐파이, occupy) 운동을 연상시키는 '오큐파이 민주당'을 조직해 당 내 시위에 나섰다. 또한 젊은 좌파 입장에서 대표 선거에 도전한 주세페 치바티 편에 섰다.

그래도 이때는 당내 투쟁 수준에 그쳤지만, 2년 뒤에는 달랐다. 2013년 대표 선거로 선출된 마테오 렌치 대표는 치바티와 함께 민주당 안에서 가장 촉망받는 X 세대 리더였다. 그러나 정치적 입장은 치바티와 정반대였다. 이미 2008년 금융위기를 겪고 난 2010년대 중반에 렌치는 철 지난 토니 블레어식 '제3의 길' 노선을 들고 나왔다. 하기는 옆 나라 프랑스에서 에마뉘엘 마크롱이 이런 노선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게 몇 년 뒤(2017년)이니 별나게 복고적인 행태라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른다.

아무튼 이 당시 민주당 소속 유럽의원이던 슐라인은 렌치 대표의 노선에 반발하며 치바티 등과 탈당을 결행했다. 이들은 '가능성'이라는 독자 조직을 꾸린 뒤에, 민주당에 합류하지 않고 좌파정당의 맥을 잇던 소수 정당들과 함께 정당연합('자유와 평등')을 결성하여 활동했다. 민주당 이름으로 당선된 공직자가 민주당을 왼쪽에서 공격하는 입장이 됐으니, 한국식 어법으로는 '배신자'라 불릴만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렌치가 이끄는 민주당에 반발하던 상당수 좌파 성향 유권자들은 꼭 그렇게만 바라보지 않았다. 2020년 슐라인은 이탈리아 좌파의 뿌리 깊은 거점이자 자기 고향인 에밀리아-로마냐 지방선거에 뛰어들었다. 우선 소수 좌파정당들을 모아 '용기 있는 생태-진보파'라는 정당연합을 결성했고, 다시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맺었다. 이 선거에서 슐라인은 에밀리아-로마냐 역사상 최다 득표로 주의원에 당선됐다. 공교롭게도 이때 주지사로 재선된 민주당 후보가 보나치니였다.

그러고 나서 2년 뒤, 멜로니 정권을 낳은 작년 9월 총선에서 슐라인은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이때도 당적은 민주당이 아니었다.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맺기는 했지만 엄연히 독자 정당인 '녹색 이탈리아' 소속이었다. 그러니까 이번 민주당 대표 경선이 벌어지기 불과 몇 달 전까지도 슐라인은 민주당원이 아니었던 것이다.

2차 투표에서 폭발한 대중의 반란

사실 민주당은 몇 년 전부터 좌파정당 성격을 강화하려고 노력하기는 했다. 한때 당의 총아였던 렌치는 2014년에 총리가 된 뒤에 노동 개혁을 한다며 노동조합과 갈등만 빚다 권좌에서 물러났다. 그러고는 2019년에 탈당해 중도우파 색깔의 신당 '생동하는 이탈리아'를 결성했다. 렌치가 남긴 이런 상처에 대한 반발로 이후 민주당은 조금씩 왼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이 혼란기에 당대표가 된 니콜라 진가레티는 강박적으로 '사회민주주의'를 강조했다. 대표 선거에서 긴축 반대와 기후위기 대응을 주창했고, 이탈리아에서 가장 뜨거운 좌우 격돌 쟁점 중 하나인 동성 혼인 인정에 대해 '찬성'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표에 선출되자 진가레티는 자신의 당선이 누구보다 '그레타 툰베리' 덕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창당 때부터 신자유주의 정치의 왼쪽 날개 역할에 만족해온 민주당 거물들과 기존 조직은 이 정도 변화조차 못마땅해 했다. 2021년에 민주당은 함께 중도좌파 연립내각을 구성하고 있던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과 마찰을 빚었는데, 진가레티 대표는 어떻게든 이 연정을 지키려 했다. 하지만 당의 큰손들은 전 유럽은행 총재 마리오 드라기가 이끄는 테크노크라트(technocrat, 기술관료) 대연정을 더 선호했다. 결국 드라기 정부가 들어섰고, 진가레티는 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올해 2월의 대표(정확한 명칭은 '사무총장' 혹은 '서기장') 선거는 이런 분위기의 연장선이 되리라는 것이 대다수의 예측이었다. 실제로 당원만 참여하는 1차 투표에서는 당 주류의 지지를 받은 보나치니가 8만 표 가까이(약 53%) 득표하며 무난히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1차 투표에서 이미 뭔가 심상치 않은 조짐이 엿보였다. 민주당 대표 선거에 도전하려고 부랴부랴 옛 정당에 복당한 슐라인이 5만 표가 넘는(약 35%) 지지를 얻어 2위로 떠오르며 보나치니와 함께 2차 투표에 진출한 것이다. 기성 질서를 뒷받침하던 중도정당에서 선명한 좌파정당으로 민주당을 탈바꿈시키길 바라는 흐름이 진가레티 시절보다 오히려 더 강해졌음을 보여주는 첫 번째 신호였다.

2차 투표는 1차 투표와 유권자가 달랐다. 2차 투표에는 당원뿐만 아니라 민주당을 지지하는 비당원도 참여할 수 있다. 유럽 정당들 가운데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든 미국식 시민 참여 선거 방식이다. 2월 26일에 실시된 이 2차 투표에서 슐라인 후보는 58만 표(약 54%)를 얻으며 보나치니 후보(50만 표, 약 46%)를 제치고 민주당 대표에 당선됐다(낙선한 보나치니는 슐라인의 제안에 따라 당의장 직을 수락했다).

슐라인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슐라인의 민주당 입당과 대표 선거 출마를 지켜보며 당 밖의 좌파 성향 유권자들이 대거 2차 투표에 참여한 덕분이었다. 슐라인이 내건 공약은 이런 지지층이 좌파정당에게 듣기 원하던 바로 그 내용이었다. 슐라인 후보는 플랫폼 자본주의 시대의 불안정 노동 문제 해결과 기후 위기 대응을 거듭 강조했다. 이탈리아에 아직까지 제대로 도입되지 않은 최저임금제도의 실시를 약속했고, 동성 결혼 합법화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지지를 천명했다.

대표 당선 후 첫 번째 연설에서도 슐라인은 "온갖 불평등과 불안정 고용에 맞서며 기후 비상사태에 긴급하고 진지하게 대처하는 데 집중하는 선명한 노선"을 약속했다. 마치 그간 민주당에 두껍게 쌓인 '브라만 좌파' 이미지를 털어버리려고 작정이라도 한 듯이 신임 대표의 첫 행보는 온통 노동과 기후 문제에 집중되었다.

이탈리아, 포스트 파시즘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슐라인이 이끌 민주당의 미래는 예단하기 힘들다. 최악의 경우는 진가레티의 실패를 반복하는 것이다. 혹은 프랑스 사회당과 브누아 아몽의 이탈리아판이 될 수도 있다.

아몽은 사회당 안에서 일관되고 진지한 좌파 리더였다. 그러나 2016년에 아몽이 사회당 대통령 후보가 되는 당 내 이변이 일어났을 때에 사회당은 자당 출신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실정과 젊은 야심가 마크롱이 이끈 탈당 사태로 이미 재기불능이었다. 이후 프랑스 좌파를 재건하는 역할을 맡은 것은 아몽의 사회당이 아니라 사회당 밖에서 고군분투해온 장-뤽 멜랑숑의 정치운동이었다.

그럼에도 일단 민주당의 과거와 '단절'된 슐라인 집행부의 등장은 큰 진전이다. 주제페 콘테 전임 총리가 이끌면서 좌파 색깔이 짙어진 오성운동, 민주당 바깥의 녹색-좌파 그룹들과 슐라인의 민주당이 때로 경쟁하고 때로 연대하는 가운데에 이탈리아 좌파는 모처럼 부활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각각 우파와 좌파를 대표하는 두 여성 정치가, 멜로니와 슐라인의 대립 구도가 등장한 것도 포스트 파시스트 세력의 일방적 독주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작년 총선에서 멜로니의 이탈리아 형제당이 제1당으로 약진하자 세계 언론은 새삼 이탈리아 정치에 관한 심층 분석 기사를 쏟아냈다. 이때 이 기사들이 하나같이 지적한 것은, 멜로니의 정당에 표를 던진 이들 중 상당수가 과거에 선거 때마다 공산당에 표를 주던 노동자 밀집지역 주민들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이들은 "오늘날 노동자 정당은 멜로니의 정당"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지난 한 세대의 역사가 만들어 놓은 이 현실을 바꿔내야 한다는 지난한 과제가 지금 신임 슐라인 대표의 민주당 앞에 놓여 있다.

프레시안

▲ 엘리 슐라인. 출처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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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출판&연구집단 신현재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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