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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한일관계 정면 돌파, '여론전' 승부수 던진 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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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분간 한일 협력 필요성 강조

"양국관계 이제는 과거 넘어서야"

"걸림돌 제거하면 日도 호응할 것"

"배타적 민족주의, 반일을 외치면서 정치적 이득 취하려는 세력 엄연히 존재" 정면 비판도

여론 향한 일방적인 메시지라는 지적도

노컷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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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한일정상회담 이후에도 부정적인 여론이 계속되자,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국무회의에서 한일관계 개선의 필요성에 대한 배경을 직접 설명하고 '정면돌파'에 나섰다. 윤 대통령은 우리나라와 일본은 서로가 윈-윈 관계여야 한다며 이제는 과거를 넘어서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이제는 일본을 당당하게 대하자며 현명한 국민을 믿는다고 직접 호소했다.

23분간 이어진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은 글자 수로는 공백을 제외하고 5700여 자에 달했다. 앞서 일본과의 협력 의지를 공식적으로 밝힌 3·1절 기념사가 5분(1300여 자) 분량에 그친 것과 비교해 보면 사실상 '대국민 담화'로 읽힌다. 중요한 사안인만큼 국민들에게 상세하게 설명하자는 윤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됐다고 한다. 한일 정상회담을 보는 부정적 시각에 대한 해명을 넘어서 한일관계에 대한 윤 대통령의 철학과 구상을 종합적으로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한일 간의 풀리지 않는 숙제였던 과거사 문제로 반일 감정이 확산될 수 있는 국내 상황에서 한일관계 정상화를 추진한 것은 여론이 악화할 것을 알면서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국가지도자의 '결단'이었음을 국민들에게 직접 알리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생중계된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지난해 5월 대통령 취임 이후, 한일관계의 정상화 방안을 고민해 왔다"며 "출구가 없는 미로 속에 갇힌 기분이었다"고 심경을 털어놨다.

전임 문재인 정부에 대해선 "수렁에 빠진 한일 관계를 그대로 방치해 그 여파로 양국 국민과 재일 동포들이 피해를 당하고, 양국 경제와 안보는 깊은 반목에 빠지고 말았다"고 정면 공격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저 역시 눈앞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편한 길을 선택해 역대 최악의 한일 관계를 방치하는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2차 세계대전 승리를 위해 미국에 자세를 낮췄던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의 발언과 중일 국교정상화를 위해 전쟁배상 요구를 포기했던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의 발언까지 인용하며 한일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만약 우리가 현재와 과거를 서로 경쟁시킨다면, 반드시 미래를 놓치게 될 것이다"

이날 발언은 윤 대통령이 직접 선택한 처칠 총리의 발언으로 시작됐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처칠처럼 국민만 보고 정치할 생각"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윤 대통령은 "자유에 대한 강한 열망과 불굴의 리더십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이 한 말"이라고 소개한 뒤 "과거는 직시하고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과거에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일 관계도 이제 과거를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국관계 이제는 과거 넘어서야"··미래 위한 결단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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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개회선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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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전쟁범죄로 피해를 본 중국이 배상 요구를 포기했던 일을 언급하면서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의 발언도 인용했다. 윤 대통령은 "저우언라이 총리는 1972년 일본과 발표한 국교 정상화 베이징(北京) 공동성명에서 중일 양국 인민 우호를 위해 일본에 전쟁 배상 요구를 포기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전쟁 책임은 일부 군국주의 세력에게 있으며 이들과 일반 국민을 구별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일반 일본 국민에게 부담을 지워서는 안 되며 더욱이 차세대에게 배상책임의 고통을 부과하고 싶지 않다'는 저우 총리의 발언을 언급하면서, "중국인 30만여 명이 희생된 1937년 난징(南京)대학살의 기억을 잊어서가 아닐 것"이라고 설명했다.

논란을 촉발한 '제3자 변제' 방식의 강제동원 해법을 추진한 근거로는 1965년 한일이 맺은 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을 들었다. 역대 정권이 특별법을 제정해 보상한 사례를 대상과 액수 등 구체적 숫자까지 들어 자세히 설명해 눈길을 끌었다.

특히 윤 대통령은 "양국 간 불행한 과거의 아픔을 딛고, 일본과 새로운 지향점을 도출하고자 한 노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며 박정희,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이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역사적 결단을 내렸던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두 대통령이 민족이나 반일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국가의 미래를 내다본 선견지명을 보였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1965년 국교 정상화 당시의 합의와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동시에 충족하는 절충안으로 제3자 변제안을 추진하게 됐다"며 "강제징용 피해자분과 유족들의 아픔이 치유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일본은 이미 수십 차례 과거사 문제에 대해 반성과 사과를 표한 바 있다"며 "일본 정부는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비롯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정부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면서 일각에서 재기하는 추가적인 사과 필요성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이번 방일을 '굴욕외교', '저자세외교'라고 주장한 야권의 비판에 대해선 "우리 사회에는 배타적 민족주의와 반일을 외치면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정면반박했다.

윤 대통령은 앞선 두 전직 대통령처럼 이번 한일 정상회담이 발전적 미래를 위한 결단이었음을 강조하며 한일 관계 개선으로 첨단 산업 분야에서 안정적 공급망이 구축되고, 미래 기술 공동 개발이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윤 대통령은 17일 한일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오는 기내에서 가진 참모들과의 회의에서 '대국민담화' 형식으로 어떻게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됐는지 직접 국민들에게 상세히 설명하자고 결정했다고 한다.

그 이후 며칠동안 원고를 함께 작성하며 국무회의 직전까지도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며 각별히 신경 쓴 것으로 전해졌다.

민감한 한일 관계의 특성상 '여론전'으로는 지지를 받기 힘든 상황에서 대통령이 직접 국민들에게 설명하며 이해를 구하며 '정면돌파'에 나선 것이다.

23분간 발언, 일방적인 메시지란 지적도…"제대로된 '대국민담화'였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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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대통령실에서 생중계로 진행되는 국무회의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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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여론이 급선회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당장에는 욕을 먹더라도 역사적으로 어쩔 수 없는 결단이라는 점을 설명한 것"이라고 했다.

여권 핵심 관계자도 "우리가 선제적으로 일본을 끌고 나가자는 의미"라며 "길게 보면 맞는 결정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당장은 달라지는 것이 없더라도 다음달 한미정상회담과 5월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서의 한미일 정상회담 등 한미일 삼각관계 속에서 우리나라가 세계사적 흐름에서 뒤떨어지지 않는구나라고 체감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식 '정면돌파'에 대해 여론을 향한 일방적 메시지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20여 분동안 일방적인 설명과 입장 표명으로 정작 소통 의지는 부족해보인다는 것이다. 더구나 한일관계라는 부분은 이성적 부분으로만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이 직접 몸을 낮춰 국민들에게 호소하고 이해를 구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아산정책연구원 최은미 연구위원은 "이 정도 중요한 사안은 국무회의 모두발언보다는 제대로 된 '대국민담화'의 형식을 취했으면 국민들 입장에서도 더 받아들일 수 있었을텐데 아쉬움이 든다"며 "시기도 방일 전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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