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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기고] 의사과학자 양성, 연구 중심 의대 선정해 집중 투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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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과학자 양성이 화두다. 의료계, 과학계, 산업계를 넘어 정치권에서도 관심이 증폭되는 모양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카이스트의 과학기술의전원 설립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라고 지시하며 사안의 핵심이 카이스트 의전원 신설 문제로 옮겨진 형국이다. 70년대 우수한 인재들이 공대로 지원하여 오늘의 ICT 산업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발전에 기여하였는데, 최근 성적 우수자들이 몰리고 있는 의대에서는 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 못 하고 코로나 백신도 개발 못 하였냐는 질타도 많이 받는다. 의료계에 종사하는 사람의 하나로서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

문제는 ‘어떻게’이다. 카이스트의 의전원 구상은 기존 의과대학은 환자 진료에 전념하는 의사, 소위 ‘치료 의사’ 양성에는 성공하였으나 ‘연구하는 의사’는 지금부터 새로 판을 짜서 만들기 시작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평생 의과대학에서 후학 양성과 진료, 연구에 매진해 온 의대 교수의 한 사람으로 자괴감을 느끼는 것은 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동안 의과대학에서 연구 의사 양성에 충분한 정책 집행과 투자를 못 하였던 진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이제 제대로 돌아보아야 할 때라고 본다.

의사과학자 양성은 재정 투입이 필요한 일이다. 임상 의사로서 성공할 수 있는 길을 놔두고 학문에 대한 호기심과 연구에 대한 열정으로 시작하였더라도 이들이 안정적으로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생계 지원은 필요하다. 몇몇 의과대학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발전 기금 및 대학 병원 연구비 등의 재원을 활용하여 자체적인 ‘의사과학자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정부가 관심을 갖고 의사과학자 양성 프로그램, 그것도 시범 사업을 가동한 것은 불과 3년 전이다. 아직 사업의 성공·실패를 논할 단계가 아니며, 어쩌면 지금이 성패를 좌우할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의사과학자 양성은 진정한 국가의 백년대계이다. 이를 위해서는 의과대학 간 경쟁을 유도하고 우수한 성과를 내는 곳을 ‘연구 중심 의대’로 지정하여 한정된 정부 재원을 집중 투입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성숙한 의사 결정 과정이다. 선정된 ‘연구 중심 의대’에서는 일부 ‘의학전문대학원’ 체제를 재도입하여 미국식 MD-PhD 과정을 운영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아울러 학부 과정, 석·박사 학위 과정 및 박사 후 과정으로 이어지는 전 주기적 지원 프로그램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양성’보다 중요한 일은 양성된 의사과학자가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여건 마련, 즉 ‘이탈 방지’ 시스템이다. 장기간 어려운 과정을 거쳐 독립적인 연구자로 성장한 자원들이 과중한 환자 진료 부담과 연구비 수혜의 어려움 때문에 임상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런 ‘이탈 방지’ 시스템은 미래의 의사과학자가 되려는 젊은 학생들에게 롤모델을 제시한다는 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카이스트를 비롯한 과학기술특성화대학의 의대 신설에 의료계가 반대하거나 발목을 잡는 듯한 보도는 유감이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공지된 바도 없지만 정부가 의지를 갖고 추진하고 책임을 지면 될 일을 마치 카이스트와 의료계의 대결로 몰아가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의학 연구와 산업화를 통해 노벨생리의학상도 배출하고 바이오헬스 산업을 발전시키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 모든 것을 새로이 시작하는 것도 의미 있겠지만, 어려운 여건 속에서 꾸준히 잠재력을 길러온 전국 40개 의과대학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것 또한 정부의 역할이다. 노벨상 수상자가 안 나오고 백신 개발을 못 하였다고 근대 의학 도입 130년의 역사와 노하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계 최고 수준의 임상의학 역량을 연구 성과로 도출하여 인류 건강에 기여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성숙된 자세로 지혜를 모아 미래를 준비할 때다.

[신찬수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이사장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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