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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선 조치 후 일 호응’만 반복…“국민 믿는다” 23분 일방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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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국무회의 생중계

경향신문

‘최장’ 모두발언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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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문장 중 91개가 ‘한·일관계’
DJ·처칠 등 인용구로 ‘열변’
반대 여론에 구체적 설명 없고
정부 조치 정당성 전달에 집중

윤석열 대통령의 21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은 한·일 정상회담 후폭풍이 수그러들지 않자 대국민 담화급 발언으로 정면 돌파를 선언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례적으로 긴 발언을 통해 그간의 고심과 결단의 필요성, 정부 조치 정당성 등을 전하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내용 면에서 강제동원(징용) 피해자들의 정부안 반대에 구체적 설명을 하기보다 비판 여론을 ‘정치적 의도’에 따른 것으로 바라보는 한계를 드러냈다. 형식 면에서는 공론화와 여론 수렴 과정을 생략한 ‘사후 소통’이라는 문제를 남겼다. 일방통행식 국정에 대한 비판은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105문장으로 구성된 모두발언 중 대부분인 91문장을 한·일관계에 할애하며 직접 여론전에 나섰다. 3·1절 기념사에서 한·일관계에 단 네 문장을 할애했던 것과 대비된다.

윤 대통령은 발언 곳곳에서 그간 고심을 토로했다. 그는 “작년 5월 대통령 취임 이후 한·일관계 정상화 방안을 고민해 왔다”면서 “마치 출구가 없는 미로 속에 갇힌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지만 손을 놓고 마냥 지켜볼 수는 없었다”며 “날로 치열해지는 미·중 전략경쟁, 북한 핵 위협의 고도화 등 복합위기 속에서 한·일 협력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해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 저우언라이 전 중국 총리 등 이례적으로 많은 인용구가 등장했다. 윤 대통령은 1965년 박 전 대통령 재임기에 이뤄진 한·일 국교 정상화 조치를 두고는 “당시 굴욕적인 외교라는 극렬한 반대 여론이 들끓었지만 박 대통령은 일본이라면 무조건 겁부터 집어먹는 것이 바로 굴욕적인 자세라고 지적했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 재임기인 1998년 도출된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들어 “(김 전 대통령은) 50년도 안 되는 불행한 역사 때문에 1500년에 걸친 교류와 협력의 역사 전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다”고도 했다.

내용 면에선 기존 정부 입장이 재확인됐다. 일본의 사죄와 배상 없이 ‘한국의 독자적 해결’에 방점을 둔 강제동원 셀프 배상안은 불가피한 “절충안”으로 봤다. 일본의 추가 사과 여부는 “이미 수십 차례에 걸쳐 과거사 문제에 반성과 사과를 표했다”며 ‘이미 충분하다’는 취지로 말했다. 윤 대통령은 “강제징용 피해자분들과 유족들의 아픔이 치유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지만 정부안에 반발하는 피해 당사자들의 입장을 거론하며 설득하진 않았다. 대신 일본 사과를 요구하는 비판 여론을 “배타적 민족주의와 반일을 외치면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으로 역공했다.

윤 대통령은 세 차례에 걸쳐 ‘선제적’이라는 표현을 쓰며 한국이 ‘선 조치’ 후 일본의 ‘호응’을 기다린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과거사 관련해 일본에 면죄부를 준 뒤 상응하는 조치를 얻어내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한국이 선제적으로 걸림돌을 제거해 나간다면 분명 일본도 호응해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제 분야에선 “선제적으로 우리 측의 일본에 대한 화이트리스트 복원을 위해 필요한 법적 절차에 착수”했다고 했고, 안보 분야에선 “한·일 정상회담에서 전제조건 없이 선제적으로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를 완전히 정상화할 것을 선언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대국민 설명은 정부의 강제징용 배상안 발표(6일) 이후 보름 만에, 한·일 정상회담(16일) 이후 5일 만에 이뤄졌다. 정부안 발표 전 ‘제3자 변제안’을 두고 피해 당사자들의 동의를 구하는 설득 작업은 형식적 차원에 그쳤다. 정부안이 나온 직후부터 피해자 반발과 부정적 여론이 형성됐지만 정부는 충분한 공론화 대신 속도전을 택했다. 정부안 발표 후 윤 대통령의 방일 정상회담으로 과거사 문제를 정부 간 일단락짓기까지 걸린 시간은 10일에 불과했다.

한·일관계 개선을 명분으로 내세워 피해자 동의 없이 과거사 문제를 매듭지은 뒤 국내 정치적 부담이 현실화하자 사후 설득에 나섰다는 비판이 불가피해 보인다. 윤 대통령 발언이 23분간의 일방적 전달 형식으로 이뤄진 만큼 추후 다각도의 소통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불거질 수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정상회담 결과가 어떻게 될지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최종 정리된 후 설명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유정인·유설희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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