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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연금개혁 결국 해낸 마크롱 … 들끓는 민심 못잡아 '절반의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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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20일(현지시간) 프랑스 야권 정당 '라 프랑스 인수미즈(LFI)'와 좌파 연합인 '뉘페스(NUPES)' 소속 의원들이 내각 불신임안 표결 직후 "64세는 안된다"란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이날 표결에 부쳐진 내각 불신임안은 단 9표가 부족해 부결됐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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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현지시간) 야당의 내각 불신임안이 하원에서 부결되면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정치 생명까지 걸고 추진했던 연금개혁은 이르면 9월 시행된다. 정년을 현행 62세에서 2030년까지 점진적으로 64세로 연장하는 것을 골자로 한 연금개혁은 이제 입법 절차를 마무리 짓고, 헌법위원회 검토와 마크롱 대통령의 서명 절차만 남겨놓게 됐다.

연금개혁은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해 4월 재선에 도전하면서 내건 간판 공약이었다. 자신이 했던 약속은 지킬 수 있었지만, 하원 표결을 생략하며 민주적 절차를 건너뛴 데 따른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마크롱 대통령은 들끓는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 22일 대국민 연설에 나선다.

마크롱 대통령은 뚝심 있게 연금개혁안 공약을 통과시켰지만 한편으론 '무늬뿐인 성공'에 그친 것 아니냐는 냉정한 평가도 나온다. 야권과 국민을 설득하는 데 실패해 더 커다란 정치적 후폭풍 역시 피할 수 없게 됐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선 실익보다 손해가 큰 승리를 의미하는 '피로스의 승리'에 빗대기도 한다. 법안 강행에 앞서 국민 설득을 위한 노력을 보다 더 치밀하게 했어야 한다는 비판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사설에서 "인구 고령화 국가의 연금 적자를 메우기 위해서는 변화가 반드시 필요했다"면서도 "마크롱 대통령이 개혁을 관철하기 위한 과정은 연금 적자를 메울지 몰라도 '민주주의의 적자'를 남기게 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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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지지 없이는 입법이 어려운 하원의 여소야대 구조 속에서 우파 공화당(LR)을 제외한 다른 야당들과 척을 지는 악수(惡手)를 범했다. 앞으로 남은 임기 4년 동안 의회 동의가 필요한 정책을 추진할 때마다 불필요한 정치적 비용을 소모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의회에서의 과반 확보를 위해선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우파 공화당에만 의지하는 처지가 될 수도 있다.

야권에서는 연금개혁안을 무효화시키기 위한 모든 수단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개혁안에 정면 반대해왔던 자유·무소속·해외영토(LIOT) 그룹은 헌법재판소에 위헌 여부 검토를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위헌 판정 시 개혁안은 그 효력이 상실된다. 야당이 해당 절차를 밟을 경우 정부가 연금개혁을 시행하려는 시점은 올해 9월보다 더 늦춰질 가능성이 있다.

국민 여론도 악화하는 모양새다. 프랑스 여론조사기관 엘라브가 지난 18~19일 프랑스인 100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약 69%가 하원 투표를 생략해 연금개혁안을 추진한 것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해 대선 1차 투표에서 마크롱 대통령을 뽑은 유권자라고 밝힌 응답자 중 45%도 헌법 49조 3항 사용에 불만을 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여론연구소(Ifop)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에게 만족한다는 응답률이 28%로, 지난달보다 4%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지난해 5월보다 13%포인트 내려간 것이다.

역풍은 거세지만 마크롱 대통령이 국가의 미래를 위해 결단을 내린 것이라는 우호적인 평가도 적지 않다. 영국 잡지 이코노미스트는 "마크롱 대통령은 연금개혁이라는 골칫거리를 다음 정부에 넘길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귀중한 정치적 자산을 소모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연금개혁안은 매우 인기가 없는 정책이지만 프랑스에 옳은 정책"이라고 전했다.

프랑스 연금자문위원회(COR)가 지난해 9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재작년과 작년 프랑스 연금은 실제로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2023년을 기점으로 적자 전환해 2032년에는 약 100억유로(14조원)의 연간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비록 인기 없는 정책이긴 하나 미래 재정을 고려하면 필요한 조치라는 것이다. 프랑스는 유독 GDP에서 연금 지출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2021년 기준 프랑스의 GDP 대비 연금 지출액 비중은 14.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7.7%의 배를 웃돈다. OECD 국가 내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프랑스보다 높은 비중을 기록한 국가는 그리스와 이탈리아 정도뿐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대거 은퇴도 부담을 높이는 요인이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2004년 프랑스의 연금 수급자는 1300만명이었던 반면 2020년에는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평균 기대수명 증가가 겹쳐 연금 수급자가 1700만명으로 늘어났다. 시간이 갈수록 재정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과 달리 프랑스는 정년이 곧 연금 수령 시점이다. 정년을 연장한다는 것은 결국 연금 수령 시점을 뒤로 늦춘다는 의미다.

[한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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