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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프랑스 들쑤신 연금개혁, 왜 강행하고 왜 저항하나[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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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 15일(현지시간) 프랑스 서부 낭트에서 정부의 연금개혁 법안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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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시위에 불을 지핀 프랑스 정부의 연금개혁 법안이 20일(현지시간) 가까스로 의회 문턱을 넘었다. 의회의 표결없이 법안을 강행 처리한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에 대해 야당이 제출한 불신임안이 이날 하원에서 부결됨에 따라, 수개월째 프랑스 사회를 들쑤신 연금 법안도 자동 통과됐다.

이로써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는 오랜 ‘숙원’이었던 연금 개혁을 강행할 수 있게 됐지만, 전국 각지에서 격렬한 저항이 이어지며 마크롱 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상당한 정치적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마크롱 정부가 정치적 내상에도 밀어붙인 연금 개혁 법안의 주요 내용과 거센 반발의 이유 등을 문답으로 정리했다.

Q. 프랑스 연금 개혁의 주요 내용은 무엇인가.


A. 핵심은 ‘정년 연장’이다. 현행 62세인 퇴직 연령은 올해 9월부터 매월 3개월씩 점진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해 2027년에는 63세 3개월, 2030년에는 64세로 높아진다.

연금을 100% 수령하기 위해 노동해야 하는 기간도 기존 42년에서 43년으로 1년 늘리기로 하고, 시행 시점도 2035년에서 2027년으로 앞당기기로 했다. 즉 ‘더 오래 일하고 더 늦게 받으라’는 것이 개혁안의 골자다.

대신 연금 최저 수령액은 월 1015유로(약 142만원)에서 월 1200유로(약 168만원)로 더 높아진다. 프랑스 정부는 최저 연금 상한액을 최저임금의 85%로 종전보다 10%포인트 인상하기로 했다.

여기에 고령층 노동자를 기업에서 얼마나 고용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인 ‘시니어 지수’도 공개하기로 했다. 정년 연장이 고령층 실업률만 높일 것이란 지적이 나온 가운데 기업의 고령 노동자 일자리 창출 노력을 수치화해 각종 혜택에 차별을 두겠다는 취지다.

아울러 마크롱 정부는 우파 공화당(LR)의 요구를 받아들여 노동시장에 일찍 진입하면 조기 퇴직할 수 있고, 워킹맘에게 연금의 최대 5%를 보너스로 지급하는 내용도 새로 추가했다.

Q. 강한 반대 여론에도 프랑스 정부가 연금 개혁을 강행하는 이유는?


A.이번 연금 개혁안은 지난해 마크롱 대통령의 재선 공약 중 하나였다. 연금 개혁을 밀어붙이는 가장 큰 명분은 재정 악화다. 프랑스는 유럽 주요국 가운데 연금 수령 연령이 가장 낮아, 현행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선 막대한 재원이 투입된다는 것이 프랑스 정부의 설명이다.

프랑스 정부는 연금 제도를 현행대로 유지할 경우 올해부터 연금 재정이 적자로 전환되며, 2030년에는 135억유로(약 19조원)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연금 제도의 지속성을 확보하려면 세금을 투입하거나 연금 수령액을 깎아야 하는데, 그보다는 정년을 연장하는 것이 더 나은 대안이라는 것이다.

반면 ‘정부가 위기를 과장하고 있다’는 반론도 있다. 지난해까지 프랑스 연금은 나가는 돈보다 들어오는 돈이 많은 흑자 상태였고, 연금 재정이 아직 심각한 위기를 맞지도 않았는데도 정부가 위험을 부풀리고 있다고 노조는 반발한다. 이들은 대다수 서민들이 피해를 보는 정년 연장 대신 부유층에게 세금을 더 걷거나 부유층의 연금을 줄이라고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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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현지시간) 프랑스 하원에서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이 부결되자 야당 의원들이 피켓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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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연금 개혁 반대 시위를 벌이는 이들은 누구인가.


A. 프랑스는 상대적으로 시위가 잦은 나라지만, 이번 연금개혁 반대 시위는 그 규모와 강도 면에서도 프랑스 사회 곳곳을 ‘마비’시킬 정도로 거세게 이어지고 있다. 마크롱 정부가 지난 1월 연금개혁 발표하자 100만명 넘는 첫 대규모 시위가 열렸고, 지난 7일 열린 시위에는 주최 측 추산 350만명(정부 추산 128만명)이 참여해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역사상 최대 규모 시위’라는 보도도 나왔다.

온건·중도파를 포함해 프랑스 대다수의 노동조합이 시위와 파업에 참여하고 있다. 운수노동자, 에너지노동자, 항만 노동자, 교사, 공무원 등 직종도 다양하다. 청소노동자들도 파업에 동참해 수도 파리의 절반이 약 1만t에 이르는 쓰레기로 뒤덮였다. 노조들은 이번 개혁안이 노동시장에 조기 진입한 저임금 육체 노동자에게 가장 불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시위에 대한 지지 여론은 높은 편이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의 3분의 2가 연금 개혁안에 반대하고 파업과 시위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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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개혁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20일(현지시간) 파리 오페라 광장 인근에서 쓰레기통에 붙인 불이 타오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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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프랑스에서 연금 문제가 이렇게 민감한 이유는 무엇인가?


A. 연금 개혁은 여러 국가에서 통상 ‘세대 간 갈등’으로 다뤄지지만, 프랑스에서는 오히려 ‘세대 간 연대’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프랑스에서 연금 제도는 노동 인구가 퇴직 인구를 의무적으로 부양하고 은퇴 후엔 이런 수혜를 받는 일종의 세대 연대이자, 직업이나 소득에 상관없이 누구나 품위 있는 은퇴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사회보장제도의 주춧돌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 때문에 은퇴를 앞둔 중·장년층 뿐만 아니라 청년 세대도 연금 개혁에 반대하고 있으며, 역대 프랑스 대통령들도 지난 40년간 연금 관련 법률을 손보려 할 때마다 거센 반대 여론에 부딪혔다.

연금과 은퇴 이후의 삶이 프랑스인의 ‘국가적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라는 분석도 있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프랑스인들에게 은퇴에 대한 애착은 역사와 정체성, 어렵게 얻은 사회·노동 권리에 대한 자부심과 얽힌 문제라는 것이다.

브루노 크레티앵 프랑스 사회보호연구소 소장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연금제도는 프랑스 사회보호시스템의 핵심 중추”라며 “프랑스인들은 은퇴 연기를 자신들의 정체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는 문제로 경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세르주 게랑 파리 인섹경영대학원 교수도 이 신문에 “프랑스인에게 은퇴는 죽음을 앞둔 짧은 유예기간이 아니라 인생의 축복이자 평생의 노동에 대한 보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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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현지시간) 프랑스 서부 낭트에서 시위대가 조명탄을 들고 정부의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행진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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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노동자들이 ‘빠른 은퇴’를 원할 만큼 프랑스 연금 제도가 마련돼 있나?


A. 은퇴자 입장에서 프랑스는 세계적으로도 연금제도가 잘 마련된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프랑스는 연금의 소득 대체율이 74%로 독일(48%)이나 영국(28%)에 비해 월등히 높은 편이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62%나 유럽연합(EU) 평균 64%보다도 높은 수치다.

프랑스는 퇴직자의 4.4%만이 빈곤선 이하로 생활하고 있으며, 이는 OECD 38개 회원국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프랑스 정부 통계에 따르면 평균적인 프랑스인은 인생의 4분의 1 이상인 22~26년을 은퇴 생활로 보낸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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