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단독]장애인 탈시설 인권침해, 조사대상 전장연이 조사 참여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서울시, 전장연 박경석 대표 등 2명 조사단 포함

2명은 장애인 인권침해로 조사받는 중

“서울시가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꼴” 비판론

조선일보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중구 지하철 1호선 시청역 승강장에서 '서울시 탈시설장애인 전수조사 표적수사 변질 규탄 기자회견'을 열며 오세훈 서울시장을 향한 규탄 발언을 하고 있는 박경석 전장연 대표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수도권 장애인 거주시설 ‘향유의집’이 중증장애인 명의로 가짜 퇴소 동의서를 만들어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 퇴소시킨 과정에 대해, 서울시가 인권침해 조사를 결정했다. 그런데 그 조사단에 ‘조사 대상’인 향유의집 운영 법인 출신 전장연 인사들을 포함한 것으로 확인됐다.

향유의집은 같은 사안으로 국가인권위원회 조사도 받는 중이다. 혐의가 뚜렷한데도 서울시가 전장연의 집단행동에 백기를 들고 ‘셀프조사’를 하도록 해줬다는 지적이다.

21일 조선닷컴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서울시는 ‘장애인 거주시설 강제 퇴거 과정’의 인권침해를 조사하는 조사단에 전장연 대표 박경석(63)씨와 전장연 산하 조직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 김모(48·여)씨를 포함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전장연 등 탈시설 찬성 측 인사를 조사단에 포함한다는 것은 시장 방침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탈(脫)시설이란 장애인을 보호 시설 밖으로 내보낸다는 의미다. 중증장애인이 시설 밖에서 살게되면 장애인생활지원센터가 보내주는 인력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거기에는 정부 예산이 들어간다. 전장연은 이런 과정 전반에 연관돼 있다.

더 큰 문제는 박씨와 김씨가 모두 조사 대상인 향유의집의 전·현 운영진이라는 점이다. 향유의집은 사회복지법인 프리웰이라는 단체가 운영하는데, 박씨는 프리웰 이사를 지냈고, 김씨는 이사장이다.

향유의집은 말도 못하고 손가락도 제대로 못 움직이는 중증장애인을 시설 밖으로 내보내면서, 법이 규정한 ‘퇴소동의서’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향유의집은 2019년부터 2년에 걸쳐 본인 혹은 법적대리인이 작성한 ‘퇴소 동의서’를 근거로 장애인 9명을 내보냈는데, 이들은 구두(口頭)로도, 행동으로도 의사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의 중증장애인들이었기 때문이다. 정부 조사에서는 9명 가운데 적어도 4명의 탈시설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프리웰 이사는 박경석씨, 이사장은 김씨였다.

조선일보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2일 서울시청에서 간담회를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시의 장애인 탈시설 인권침해 전수(全數) 조사단 구성은 시작부터 전장연 반대로 난항을 겪어왔다. 전장연은 “전수조사는 표적수사”라며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면담을 요청하는 집단 시위를 거듭했다.

오 시장은 전장연의 집단 행동에 백기를 들었다. 지난 2일 박 대표와 전장연 측을 불러 면담을 진행한 오 시장은 “전장연 등 탈시설에 찬성하는 분과 반대하는 분이 공동으로 조사에 참여하는 형태를 고민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인권침해 의혹이 있는 단체 출신 인사들이 인권침해를 조사하는 게 맞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서울시 측은 “서울시가 단독으로 조사하면 공정하지 못하다는 전장연 측의 문제 제기가 있어서 탈시설을 찬성하는 전장연 측과 탈시설을 반대하는 시민단체 측 인사를 각각 조사단에 포함시키려는 것일 뿐”이라며 “전장연에 누굴 포함시킬 거냐고 물었고, 전장연이 박 대표와 김 이사장을 추천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2020년 9월 프리웰 산하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향유의집에서 내보내져 혼자 살고 있는 고모(68·여)씨. 고씨의 퇴소동의서는 법적대리인이 될 수 없는 사람이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독자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탈시설 장애인은 본인의 집이나 지자체가 마련해 준 지원 주택에서 지내게 되는데, 지난해 4월 기준 서울시 지원 주택에서 사는 탈시설 장애인은 총 263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5명은 사망한 상태로, 2명은 프리웰 출신이다. 이 중 1명은 욕창에 따른 패혈증으로 사망했는데, 전장연 측은 이 죽음에 대해 “사람이야 죽죠. 언젠가는...”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욕창은 관리 부실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라고도 말한 바 있다.

조선일보

지난해 10월21일 전장연 시위에 동원된 김모(59)씨는 프리웰 산하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살다, 2020년 9월 강제로 내보내져 혼자 살고 있는 사람이다.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하고 몸도 움직이기 어렵지만 전장연은 이날 시위에 이런 김씨를 강제 동원했다. 프리웰 역시 자체 행사에 레빈 튜브로 음식물을 섭취해야 하는 의사소통 불가 장애인을 동원한 바 있다. /독자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시 측은 이 사실이 알려지자 “실제 조사를 하는 조사단에 전장연 인사들을 집어넣은 것이 아니라 조사에 앞서 탈시설 적정성 여부에 대한 조사 기준인 ‘조사표’를 만드는데 이들을 참여시킨 것”이라며 “조사는 서울시에서 직접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훈민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