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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논단]미국은행 파산과 죄수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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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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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린궁핍화정책은 다른 국가의 경제 문제를 악화시킴으로써 한 국가가 경제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경제정책이다. 41년만의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미국이 금리 인상을 시도한지도 1년이 지났다.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하더라도 여전히 2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6%로 높은 수준이다.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강달러 현상의 지속으로 곤경에 처한 지 오래다. 지속되는 무역수지 적자 행진을 하고 있는 우리 경제도 시름이 깊어 가고 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금리 수준을 두고 ‘더 높게 더 길게’를 외치자 많은 나라들이 자국 금리 정책의 딜레마에 빠져 한숨을 크게 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다가 가랑이가 찢어질지 두렵기 때문이다. 그전에는 환율의 경쟁적 평가절하가 오히려 문제였다. 무역상대국으로부터의 수입 물량을 줄이는 대신 자국의 수출을 늘려 경기를 회복시키고 일자리를 늘리려 했다. 수출 측면에서 환율 인상, 수출보조금 지급과 수입 측면에서 관세율 인상과 비관세 수입 장벽이 만연했다.

지나친 금리 인상은 과유불급이었나. 높은 금리를 견디다 못한 은행들이 쓰러졌다. 스타트업의 자금줄인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했다. Fed는 시스템 위기 때나 쓸 예금 전액 보증 카드를 쓰며 위기의 전염을 막고자 했다. 뉴욕의 상업은행, 시그니처 은행이 연이어 파산하자 Fed는 금융기관의 유동성 부족 지원을 위해 최대 2조달러까지 사용할 신규 은행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Fed는 경기 침체 없이 은행을 지원하고 인플레이션을 완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하는데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미국의 금융 불안은 대서양을 넘어 잊고 있던 크레디스위스은행 부도 공포를 상기시켰다. 스위스 중앙은행과 금융감독청은 지난 15일 공동성명을 내고 필요하다면 크레디스위스 은행에 긴급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최대 주주인 사우디국립은행은 크레디스위스 은행에 대한 유동성 추가 지원 계획이 없다고 단언했다. 다행히 지난 19일 스위스 최대 금융기관 UBS가 크레디트스위스를 약 32억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높은 물가로 빅스텝 금리 인상을 논의하던 이야기는 이제 시장에서 쑥 들어갔다. 미국 주식시장은 여전히 거품 논란이 있는 가운데 Fed의 금리 인상에 문제가 있다고 못을 박는다. 오히려 이제 Fed가 금융 안정을 위해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많은 유동성을 찔끔 흡수한 상황에서 미 당국이 어떻게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SVB 등 3개 은행 파산 사태는 단기적으로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럼 이 사안을 어떻게 봐야 할까? 장기적으로 보면 미국은행이 구조적 문제에 직면할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유동성이 밀어준 높은 주가와 부동산 가격을 누가 뒷받침해 줄 것인가? 2007년 8월9일 프랑스 은행 BNP파리바가 갑작스러운 뉴스를 발표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투자한 세 개 펀드에 대한 자산 평가와 환매를 중단한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리먼브라더스 파산의 확실한 예고편인 베어스턴스 파산이 2008년 3월에 있었다. 같은해 9월15일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했다. 우리는 그날을 단 하루의 ‘자유시장의 날(Free Market Day)’로 기억한다. 다음날 미 정책 당국은 AIG 파산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자유 시장에 대한 국가적 의지는 단 하루만 지속됐다. 그래도 그때는 좋았다. 주요 20개국(G20)이 보호무역주의 동결을 외치며 함께 살자고 했으니 말이다. 미중 갈등이 고조되는 속에서 강대국은 자국 이익을 우선하고 있다. ’그린‘과 ’안보‘를 내세운 이들 강대국의 입법이 되레 세상을 위협하고 이런 모습은 죄수의 딜레마를 닮은 것 같아 걱정이다.

조원경 UNIST 교수/글로벌 산업협력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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