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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이슈 '미투' 운동과 사회 이슈

‘미투 운동’ 후 법 개정 논의, 5년 새 과연 얼마나 달라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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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5년, 지금은…

(하) 회복하는 피해자

성폭력 공소시효 논란 진행형

손해배상 소멸시효 개선 안돼


한겨레

5년 전인 2018년 2월1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검사 성폭력 사건’ 진상 규명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손팻말과 함께, #미투 캠페인의 상징인 하얀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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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한국 사회에서 ‘#미투’(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확산하면서, 성폭력 범죄에 대응하고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새로운 법 제·개정 필요성이 대두됐다. 하지만 주요 의제로 논의됐던 법안들은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가 죄에 합당한 처벌을 받기 위해 관련 법 제·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비동의 강간죄’ 신설 법안이다. 상대방 동의 없이 또는 상대방 의사에 반하여 이뤄진 성관계를 성폭력 범죄로 처벌하는 ‘비동의 강간죄’는 미투 운동으로 입법 필요성이 더욱 강하게 제기됐지만, 수년째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여성단체와 법학자,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여성인권법연대’가 2005년 형법 개정 운동을 시작한 이후, 2007년 임종인 당시 국회의원이 강간죄를 ‘동의 없는 성적 행동’으로 규정한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국회 상임위원회에 상정도 못 된 채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0대 국회(2016∼2020년)에서 발의된 비동의 강간죄 관련 형법 개정안 10개도 모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번 21대 국회(2020∼2024년)에서도 비동의 강간죄 형법 개정안 3개가 발의됐으나, 법무부가 “개정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은 상태다.

‘비동의 강간죄’ 도입이 미뤄지는 배경에는 ‘성범죄 무고’라는 편견이 있다. 2018년 법무부와 경찰청은 성폭력 사건 수사가 끝날 때까지 피해자의 무고 혐의 수사를 중단하도록 수사 매뉴얼을 개정했다. 하지만 수사 매뉴얼은 강제성이 없어 법률에 명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으나, 5년째 제자리다. 성폭력 무고죄 수사와 재판 시기를 가해자의 성폭력 사건 법적 절차가 마무리된 이후로 유예하는 내용의 법안이 지난 20대 국회 때 발의됐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더욱이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반대하는 정부는 성범죄 무고죄 처벌 강화를 내세우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성폭력 처벌법에 무고 조항을 신설하는 것을 대선 공약으로 낸 바 있다.

이소희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장은 19일 “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의 역고소로 무고 또는 명예훼손 피의자가 되면 피해자를 대하는 수사기관 태도가 달라진다. 이를테면 성폭력 피해자가 합의금을 받기 위해 인터넷에 글을 썼다는 식의 통념이 작동하고, 이런 통념이 가해자들의 기세를 더욱 강화시킨다”며 “법의 변화도 분명 검토돼야 하는 영역이긴 하지만, 그보다 먼저 성폭력 사건을 바라보는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성폭력과 관련한 공소시효 논란도 현재진행형이다. 2019년 8월 개정된 성폭력 처벌법에 따라 강간·강제추행 등의 피해자가 13살 미만이거나 신체·정신적 장애가 있는 경우엔 공소시효(10년)를 적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특정 연령, 장애 유무만을 기준으로 공소시효 적용을 나누는 것은 사각지대를 방치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인 게 친족 성폭력 피해자다.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은 친족을 고소한다는 죄책감, 가족의 만류 등으로 피해를 말하기까지 수십년이 걸리기도 한다. 현행법은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민법상 손해배상 소멸시효도 성폭력 피해 구제를 어렵게 한다. 현재는 피해자가 손해 및 가해자를 인식한 날로부터 3년, 범죄 발생일로부터 10년이 지나면 손해배상 청구권은 소멸한다. 하지만 친밀한 관계에서 성폭력 범죄가 많이 발생하고 있고, 피해자에 따라 20~30년이 지나서 피해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어 지금의 소멸시효 규정으로는 피해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실제 서지현 전 검사가 안태근 전 검사장에게 강제추행을 당하고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고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으나, 법원이 민법상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등의 이유로 원고 패소로 판결한 바 있다.

지난 5년 간 진전이 없었던 건 아니다. 대법원은 2021년 8월 과거 성폭력 범죄 발생일이 아니라 그 범죄로 인한 정신적 피해가 뒤늦게 발생한 시점을 소멸시효 기산점으로 봐야 한다는 판결을 했다. 또 미성년자가 성폭력, 성희롱 등의 성적 침해를 당했을 때 손해배상 소멸시효는 그가 성인이 될 때까지로 유예하는 조항이 2020년 10월 민법에 신설됐다.

최유연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은 “성폭력 피해로 인한 손해를 정신적인 문제로만 판단하는 것도 문제”라며 “성폭력 피해는 피해자의 일생에 걸쳐 그의 대인관계, 경제적 환경, 학업 및 사회 생활 등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피해를 종합적으로 산정할 수 있는 정성적·정량적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피해자와 가해자가 분리되지 못하고 공동생활을 하는 경우, 그 관계가 종료할 때까지 소멸시효가 진행되지 않도록 하는 별도의 규정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미투’ 게시글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았을 정도로 대중들은 현행 성폭력 대응체계의 빈자리가 무엇인지 인지하고 있었고, 변화가 필요하다고 외쳤다. 하지만 국가가 이 변화의 불씨를 살리지 못했고, 지금은 오히려 성폭력의 원인인 젠더 불평등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퇴행하고 있다”면서 “성폭력을 성폭력으로 보지 못하는 기존 법 체계와 인식이 바뀌어야 하고,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여러 개혁 과제들이 흔들리지 않고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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