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6 (화)

K전기차 수출 '불안한 질주'···美·EU 견제에 기세 꺾이나 [biz-플러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미국發 2차 테크빅뱅]

◆기업 홀로 뛰는 '미래차 전환'

평택항 기아 수출부두 선적한창

작년 전기차 수출대수 45% 급증

美·EU 등 자국산업 보호 정책에

빠르게 부상하는 中도 위협 요인

IRA 보조금에 북미산 요건 맞추려

폭스바겐·도요타·현대차 대거 투자

서울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EV6 들어갑니다. 선내 작업자들은 선적 위치 확인해주세요.”

17일 방문한 경기 평택항의 기아(000270) 전용 부두에서는 수출 물량을 선적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항만 작업자의 무전에 기아의 전용 전기자동차 EV6 12대가 평택항만을 일렬로 달리기 시작했다. 축구장 30개(21만 ㎡) 넓이의 기아 수출 전용 부두의 자동차 행렬은 정박 중인 5만 톤급 완성차운반선(PCTC) ‘동아매티스호’에 차례로 올라 자리를 잡았다. 선내 작업자들은 거센 파도에 차량이 흔들리지 않도록 바퀴를 선체에 꼼꼼히 결박했다.

평택항에서는 기아 오토랜드 광명과 화성에서 생산된 완성차 약 7000대가 선적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럽으로 향하는 동아매티스호는 덴마크·독일·아이슬란드·아일랜드·에스토니아를 차례로 들러 ‘메이드 인 코리아’ 완성차를 유럽 고객에게 건넬 예정이다.

서울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수출 물량 5대 중 1대는 전기차
“전기차가 평택항 수출 물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나 되는 게 확실해요? 다시 한 번 확인 좀 해줘요.”

경기 평택항에서 일하는 기아 수출 선적 담당 관계자는 올 들어 전기차 물량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한 비중이 예상한 것보다 높다며 연신 통계 자료를 들여다봤다. 실무자가 수차례 계산기를 다시 두드려도 19%라는 숫자에는 변함이 없었다. 올 들어 3월 중순까지 평택항을 통해 수출된 자동차 5대 중 1대가 전기차라는 사실에 현장 관계자들마저도 “이 정도로 높을 줄은 몰랐다”며 놀라움을 표했다.

지난해 이곳에서 선적한 완성차는 59만 대로 이 가운데 전기차가 8만 7000대였다. 전체 선적 물량의 13%를 차지한 셈이다. 이후 불과 세 달여 만에 이 비중이 20%에 육박하게 높아진 것이다.

현장을 찾은 17일에도 완성차 7000대를 댈 수 있는 기아 수출 부두에서는 EV6뿐 아니라 니로EV 등 전기차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기아 수출 담당자는 “확실히 전기차 수출 물량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며 “2년 전만 해도 선적 부두에서 전기차를 찾기가 쉽지 않았는데 전용 전기차 EV6 출시 이후 변화가 감지된다”고 설명했다.

서울경제


기아를 비롯한 국내 완성차 업계의 전기차 수출은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전기차 수출 대수는 22만 3623대로 전년보다 45%나 급증했다. 전체 완성차 수출이 13% 증가한 점을 고려하면 큰 폭의 성장이다. 2020년 11만 9718대 수준에 머물던 전기차 수출 대수는 이듬해 EV6와 현대차(005380) 아이오닉5 등 전용 전기차 출시에 힘입어 15만 4014대로 28%나 늘어났다.

수출 호조는 주요 선진 시장에서 국산 전기차가 상품성을 인정받은 결과다. 실제로 현대차·기아의 전기차는 미국과 유럽 등에서 호평받으며 준수한 판매 실적을 거두고 있다. 양사는 지난해 미국에서 전기차 5만 8028대를 판매하며 시장점유율 7.1%를 차지했다. 테슬라·포드에 이어 판매량 3위에 올랐다. 독일 등 유럽 10개국 전기차 시장에서도 9만 6988대를 판매해 폭스바겐·스텔란티스·테슬라에 이은 판매량 4위에 이름을 올렸다. 전기차 시장점유율은 10%에 육박했다. 특히 2004년 당시 현대차를 ‘바퀴 달린 냉장고’라고 혹평한 영국 유명 자동차 매체 ‘탑기어’가 아이오닉5를 ‘2022 영국 올해의 차’로 꼽을 정도로 국산 전기차는 자동차의 본고장 유럽에서 상품성까지 인정받고 있다.

서울경제




보호주의 장벽 세운 美·EU···中은 위협적 성장

국산 전기차는 글로벌 시장에서 선전하며 수출의 기둥 역할을 맡고 있지만 한국 업계를 둘러싼 대외적 상황은 녹록지 않다. 주요국은 전기차 시대의 패권을 잡기 위해 보호주의 장벽을 세우고 있고 중국 등 신생 전기차 업계도 위협적인 속도로 부상하고 있어서다.

미국은 북미에서 최종 생산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규정을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넣으며 자국 산업 생태계 보호에 나선 상황이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GV70 전동화 모델을 제외한 전기차를 국내 공장에서 생산해 수출 중이다. 아이오닉5·아이오닉6 등의 전기차는 미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이 2025년 가동하기 전까지는 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 업계에서는 IRA 발효에 따른 영향이 올해 상반기부터 판매 감소로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유럽연합(EU)도 IRA에 맞서 보호주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EU가 공개한 ‘핵심원자재법(CRMA)’ 초안에는 니켈·리튬·희토류 등 전기차 배터리 생산에 필수적인 원자재 소비량의 65% 이상을 제3국에서 수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일정 규모 이상의 역내 대기업에 대해 주기적으로 감사를 시행한다는 내용이 포함되며 새로운 독소 조항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특정 기업을 견제하는 식으로 규제가 강화되면 국내 기업에 비무역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김주홍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 수석본부장은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을 중심으로 자국 산업을 우선하는 보호주의가 확산하고 있어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자동차 산업이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커졌다”며 “수출에 차질이 발생하면 완성차 제조사는 물론이고 부품 업계도 타격을 받는다”고 우려했다.

서울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국의 부상도 주요한 위협이다. 자동차 산업 후발 주자인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전기차 전환에 드라이브를 걸어 빠른 속도로 생태계를 구축했고 글로벌 시장에도 진출하고 있다. 비야디(BYD)는 지난해 테슬라를 제치고 세계 전기차 판매량 1위에 올랐고 일본과 한국 시장에도 도전장을 던졌다. 니오와 샤오펑 등 신생 전기차 스타트업은 북유럽 등 선진 시장을 중심으로 장악력을 높이고 있다. 이미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60%가 넘는다. 시장조사 기관 블룸버그NEF는 올해 1360만 대로 전망되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이 약 800만 대(58.8%)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IRA 여파에···폭스바겐·도요타·현대차 美서 ‘격돌’

“폭스바겐이 전기차 보조금을 지급하는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유혹당해 북미 배터리 공장 건설에 나섰다.”(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미국 IRA의 효과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일본 도요타, 독일 폭스바겐, 현대차그룹 등 세계 3대 완성차 그룹 모두 지난해부터 북미 시장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선언했다. 최근 투자를 발표한 곳은 폭스바겐으로 해외 첫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을 캐나다에 짓기로 했다. 5년간 배터리 생산과 전기차 소프트웨어 개발, 북미 사업 부문에 총 1930억 달러(약 250조 원)를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서울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유럽 최대 완성차 업체인 폭스바겐이 북미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데에는 IRA의 영향이 크다. IRA는 북미산 전기차에만 7500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한다. 내년부터는 중국 등 해외 우려 국가에서 제조된 배터리 부품을 사용하면 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 폭스바겐이 니켈·코발트 등 광물자원이 풍부한 캐나다에서 직접 배터리 셀을 생산하겠다고 나선 이유다.

박철완 서정대 교수는 “테슬라에 이어 폭스바겐도 배터리를 직접 생산하는 내재화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전동화 전환에 뒤늦었다는 평가를 받는 도요타도 전기차 핵심 거점으로 미국을 택했다. 도요타는 2025년부터 미국에서 전기차 생산을 시작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내연기관차와 전기차를 함께 생산하는 방식으로 기존 켄터키주 생산 라인을 개조해 2026년 연간 20만 대의 전기차 생산 능력을 갖출 방침이다. 노스캐롤라이나주에는 전기차 배터리 공장도 신설한다. 사토 고지 신임 최고경영자(CEO)는 “전기차 우선 사고방식으로 사업 본연의 성격을 획기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도요타가 미국에 부품 조달부터 완성차 조립까지 전 과정이 가능한 전기차 생산 체제를 구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대차그룹 또한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 공장을 세우고 있다. 55억 달러를 들여 2025년 상반기부터 연간 30만 대의 전기차를 양산하는 대규모 생산 거점을 구축할 계획이다. 현대차·기아·제네시스 등 3개 브랜드의 전기차를 생산하며 다차종의 전기차를 탄력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방침이다. 미국에서 2030년 84만 대의 전기차를 판매하겠다는 게 현대차그룹의 목표다.

서울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관건은 세계 최대 전기차 회사인 미국 테슬라와의 경쟁 구도가 어떻게 펼쳐지느냐다. IRA 시행으로 상황이 급변하자 테슬라도 북미 생산을 확대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달 초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멕시코에 기가팩토리를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독일 배터리 공장의 생산 능력을 50GWh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계획도 수정하고 생산 물량을 미국으로 돌리기로 했다. 네바다주와 텍사스주의 배터리 생산 능력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테슬라는 전기차 가격도 대폭 낮췄다. 이달 초 미국에서 모델S와 모델X의 판매 가격을 각각 5000달러, 1만 달러 인하했다. 1월 모델3와 모델Y 가격을 내린 데 이어 올해 두 번째 인하에 나선 것이다.

미국 웨드부시증권은 전기차 가격 전쟁을 시작한 테슬라는 여전히 마진 확보가 가능한 만큼 다른 경쟁 업체들에 비해 우위에 있다고 분석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현대차그룹이 테슬라처럼 전기차 가격을 낮추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아직까지 전통적인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로 마진이 거의 나지 않는 구조”라고 진단했다.

서울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평택=유창욱 기자 woogi@sedaily.com서민우 기자 ingaghi@sedaily.com김기혁 기자 coldmetal@sedaily.com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