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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목멱칼럼]中企, 다 살리려다 다 죽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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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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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흔히 중소기업의 경제적 위상을 언급할 때 ‘9988’을 외친다. 소상공인을 포함한 중소기업이 우리나라 전체 기업의 99%를 차지하고 일자리의 88%를 기여한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2020년 기준으로 전체 기업 수 729만5393개에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은 728만6023개로 99.87%에 달한다. 종사자 수는 전체 2158만496명 중 1754만1182명으로 81.28%가 중소기업에 근무한다.

이처럼 경제적 비중이 크고 중요한 중소기업에게 사회적 관심이 쏠리고 정책적 지원이 제공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다만, 중소기업의 수가 많다 보니 정부의 정책은 다수의 중소기업에 보편적 지원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이뤄진다. 특히 경영위기로 인해 생존이 어려운 소상공인이나 중소기업을 연명시키는 안전판 성격의 지원에 치중된다.

당연히 생계를 위해 자영업에 종사하는 소상공인에 대한 보호와 지원은 사회안전망 차원에서 필요하다.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재난상황이나 경기침체기 일시적 경영위기에 봉착한 중소기업을 살리는 것도 타당하다. 하지만 평시에도 그리고 경기 호황기에도 어려움에 처한 중소기업을 살려야 하는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영리기업의 사명은 이익창출에 있다. 중소기업이건 대기업이건 경쟁력을 상실해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 하지만 이익을 내지 않아도 도태되지 않고 살아 있는 기업이 있다. 영업이익으로 금융비용조차 충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이다. 한계기업은 주로 연간 영업이익이 3년 연속 금융이자 비용보다 작은 기업을 지칭한다.

민간기업이 한계기업으로 분류되면 채권단이 주도해 구조조정에 들어간다. 그런데 경영위기로 이자비용을 벌지 못하는 중소기업은 가능한 한 살려 두는 방향으로 지원한다. 한계 중소기업을 연명시켜 종업원의 고용을 유지하는 것이 사회 복지 측면에서 더 유용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런 한계기업들이 일시적 경영위기를 극복하고 정상화되면 다행이다. 하지만 한계기업을 벗어나지 못하고 오래 살아남으면 ‘좀비기업’이 된다. 좀비기업은 경쟁력이 없어 시장에서 매출을 올리지 못하면서 정책지원이나 보조금에 의존해 살아남는다.

한계기업과 좀비기업이 많아지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우수한 중소기업이 피해를 본다. 과밀 과당 경쟁이 고착화돼 우량 중소기업의 성장기회를 고갈시킨다. 생산성을 향상하고 품질을 개선해도 성과로 연결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대다수 중소기업은 성장 사다리를 타지 못하고 영세한 상태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급격한 변화가 불어 닥치면 한꺼번에 다 망하게 된다. 자칫하면 ‘다 살리려다 다 죽는 꼴’이 될 수 있다.

선순환의 생태계 관점에서 기업의 생멸은 필요하다. 산업 전반적으로 창업과 소멸이 순환해야 역동성이 커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신생기업은 105만8842개이고, 소멸기업은 76만1221개로 조사됐다. 1년 생존율은 64.8%, 5년 생존율은 33.8%로 나타났다.

기술진보와 혁신성장이 진행되면 기업의 부침도 빨라진다. 혁신기술로 무장한 스타트업이 등장하면 전통기업은 경쟁력을 잃고 쇠퇴기로 밀려난다. 전통기업의 몰락은 사회적 갈등과 경제적 충격을 야기한다. 그러나 전통기업이 살아남으면 혁신기업이 자리 잡지 못한다. 전통기업이 사라지는 것은 시간의 문제이며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급격한 몰락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한계기업을 지원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계속 살려 둘 수는 없다.

중소기업은 ‘미생’이다. 자원과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자력으로 살아가기 어렵다. 그래서 정부가 도와줘야 중소기업이 ‘완생’한다. 하지만 정부가 도와줘도 자생력을 갖추지 못하고 미생으로 남아 있는 한계기업을 계속 지원해주고 생존시켜야 하는가는 좀 더 심각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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