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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36.5˚C] 지키지 못한 징용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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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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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바망간기념관 광산 입구. KIN지구촌동포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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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사과 발언은 없었다. 12년 만에 한국 대통령이 일본을 찾아 진행한 양국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해 사죄하지 않았다. 2018년 한국 대법원 배상 판결 이후 경직된 한일 관계를 풀겠다고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제3자 변제안'이 일방적 후퇴로 끝나버린 형국이다.

무성의한 일본 정부와 무능한 한국 정부에 개탄할 때, 한 재일동포의 얼굴이 떠올랐다. 약 4년 전 60분 남짓 만났지만 얼굴이 또렷하게 기억나는 이용식(65) 단바망간기념관장이다. 열여섯 나이에 탄광으로 끌려가 일하고 그 후유증(진폐증)으로 평생 고생했던 아버지 고 이정호씨의 뒤를 이어 단바망간기념관을 맡고 있었다. 당시 그는 1989년 개관한 기념관을 폐관 위기에서 살리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기념관은 좀 특별하다. 일본 내 5,000여 개의 박물관 중 유일하게 강제징용 역사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도쿄시 단바 지역에 일제 당시 강제로 끌려온 조선인 3,000여 명이 일했던 망간 광산 300여 곳 중 한 갱도를 이정호씨가 전시 공간으로 만들었다. 관람객들이 직접 보며 역사를 배우길 바라서다.

취재 이후 잊고 지내다 이제서야 알아보니 안타까운 소식만 들렸다. 방한 이후 이용식 관장은 암 투병 중이며 기념관은 사실상 문을 닫았다. 갱도에 설치된 박물관 시설을 유지·관리할 사람도, 관람객도 없으니 달리 방도가 없었다고 한다. 코로나19도 악재가 됐다. 방한 직후 모인 일시적 후원금으로 밀린 임대료 등을 해결할 수 있었지만 재정 상황은 결국 나아지지 못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4년 전에도 "은퇴하고 싶은데 후원금이 모여도 걱정"이라고 했던 그였다. 농담 섞인 말처럼 들렸는데 냉혹한 현실이었다. 기념관을 닫을 수 없어 후임자가 없어도 혼자 힘이 닿는 데까지 무리하고 있었던 거였구나. 뒤늦게 그 심정을 헤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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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식 단바망간기념관장이 2019년 11월 방한해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사무실에서 폐관 위기를 맞은 기념관 운영 상황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국노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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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키지 못한 건 작은 기념관 하나가 아니다. 진폐증으로 금방 죽을 테니 노후 준비가 필요 없다며 사비를 몽땅 털어 기념관을 세운 고인의 마음, 또 그런 아버지와 비슷한 처지의 동포들을 생각하면 물러설 수 없었던 아들의 마음까지도. 요즘 말로 하면 이들의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를 지키지 못한 건 한일 사회의 무관심이었다.

이번 회담으로, 안일한 우리 정부와 염치 없는 일본 정부·전범기업이 한 번 더 그들의 진심을 깎아내렸다. 배상금이 중요한 건 책임 인정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데 피해자가 어디서든 돈만 받으면 해결될 사안이라면 80년 가까운 시간 불화하지도 않았을 테다.

기념관 폐관으로 관내에 설치된 1호 강제징용 노동자상은 이전을 해야 한다. 어디로 가든 사과커녕 협박하는 일본 내 극우세력들과의 싸움을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이전 준비 상황은 기밀이라고 한다. 미래 세대를 위한 결정이라고 말하는 정부에 물어야겠다. 동상 하나 옮기기도 이렇게 어려운 현실에서 제3자 변제안으로 한일 양국은 어떤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건가.

기념관을 한일 화해의 역사를 위한 공간이라고 했던 이 관장의 발언을 다시 한번 전달하고 싶다. "일본이 자국의 가해 역사를 기억하고 사과해야 주변 국가와의 관계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때론 싸움을 하더라도, 진짜 친구가 된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요."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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