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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25) 1만년의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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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문학의 거장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대하소설 ‘백년의 고독’. 남미 한 가문의 역사를 1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이야기하는 이 작품의 핵심은 그런데 왜 ‘고독’일까?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이주한 유럽인들에게 중남미는 언제나 미지와 신비의 세상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지독할 정도로 고독을 느꼈을 것이다. 앞으로 뿌리를 내려야 하는 새로운 세상과 마음속 기억의 고향은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미국으로 이주해 수십년을 살아온 대부분 재미교포 1세대들 역시 지울 수 없는 마음의 고독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이 말이다.

지구에선 인간만이 생각하고, 세상을 알아보고, 세상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다. ‘사냥과 채집’ 시절에는 그날 하루 생존에만 집중해야 했지만, 1만 년 전 농사를 지으며 정착하기 시작한 인류는 자신과 세상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여유 시간이 생긴다. 그리고 인류는 깊은 고민에 빠져버린다. 아픔과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이 험한 세상을 설명해주고 이해시켜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우리보다 더 먼저, 더 많은 걸 경험한 부모님들과 조부모님들은 이미 돌아가셨고, 그들은 아무리 불러봐도 대답하지 않았다. 인류는 ‘신’이라는 존재에게도 도움과 조언을 부탁해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역시 대부분 침묵이었다. 이 세상에서 우리와 대화를 나누고 우리의 걱정을 들어주는 존재는 오로지 다른 사람들뿐이었던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와 여전히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줄 다른 이들을 찾았던 인류는 외계 생명체의 흔적과 신호까지도 찾아보지만, 여전히 이 거대한 우주에서 우리는 홀로인 듯했다. 결국 인류의 역사는 1만년이라는 긴 시간의 고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최근 인간과 대화가 가능해진 생성형 인공지능, 우리가 아닌 다른 존재와의 첫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조상도, 신도, 외계인도 풀어주지 못했던 1만년의 긴 고독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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