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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박래군의 인권과 삶] 2017년 3월31일에 있었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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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31일, 새벽 4시경 안산에서 목포로 향하던 버스 안에서 환호성과 박수가 터졌다. TV는 박근혜 대통령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는 전 과정을 따라가면서 생중계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뒤 7시간 이상 사라졌고 참사 이후 진상규명 요구를 권력을 동원해 철저하게 막았던 대통령, 한순간에 국가를 폭력과 퇴행의 정치로 1970년대의 유신 시대로 되돌리려 했던 대통령, 권력을 사유화하고 국정농단을 저지르다가 결국 시민들의 성난 촛불과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으로 쫓겨난 대통령이 수감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 순간을 3년 동안 바다 아래 침몰해 있던 세월호가 목포신항에 들어오는 걸 보러 내려가던 버스에서 세월호참사 유가족과 지켜봤다.

경향신문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동 트기 전에 목포신항에 도착한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은 몇 시간을 기다리다가 세월호가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술렁였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굳게 닫혔던 출입문을 밀고 선적장 끝으로 달려갔다. 점심 무렵 가로 눕힌 세월호가 배에 실려 들어오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자 동시에 엄마들의 통곡도 시작됐다. 유가족들이 처음으로 세월호를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그날은 금요일, 2014년 수학여행을 떠날 때 돌아오기로 했던 금요일이었다. 거대한 무덤이었던 세월호는 처참한 모습을 드러냈다. 선체는 따개비로 뒤덮여 있었고, 찢기고 할퀴어진 흉한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세월호가 육안으로 다가올수록 엄마들의 통곡소리는 더욱 커져만 갔다.

아직도 달래지 못한 그들의 통곡

그리고 그날 밤 11시가 넘은 시각에 브라질에서 철강석 26만t을 선적한 14만t급 화물선 스텔라데이지호가 침몰했다. 선원 24명 중 필리핀 선원 2명만 탈출하여 살았고, 한국인 선장과 선원 8명을 비롯한 선원 22명은 모두 실종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에서 잊혔고, 나도 잊고 있었다. 그들을 만난 것은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23차 마지막 촛불집회 때인 4월29일이었다. 그들은 광장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자신들의 얘기를 들어달라고, 실종된 선원들을 찾게 해달라고 울부짖었다. 그리고 스텔라데이지호 사건은 문재인 정부 제1호 민원사건으로 접수되었다.

그로부터 6년이 흘렀다. 그해 수감되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형사재판에서 2021년 1월 22년형을 확정받았지만, 그해 12월 말 대통령 특사로 풀려났다. 그는 폭압정치로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에 빠지게 했지만, 여전히 지지자들은 그의 명예회복을 주장하는 태극기 집회를 이어오고 있다.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서 2017년 선체조사위원회, 2018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지난해로 공식적인 국가의 조사기구 활동은 모두 종료되었다. 그렇지만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다. 국가권력을 동원한 유가족과 시민들을 사찰한 국가폭력을 밝혀내는 등 침몰 이후 제기된 숱한 의혹점들이 조사를 통해서 드러났지만, 침몰 원인만큼은 분명히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박이 침몰하면 피해자들에게 약간의 보상만 하고 수장시켜 버려왔던 대한민국이었기에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토대 역시 약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수심 3500m의 심해에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의 흔적을 찾기 위한 1차 심해수색이 단행된 것은 2019년 2월이었다. 자율무인잠수정(AUV)은 수색 3일 만에 72조각 난 스텔라데이지호의 수중촬영에 성공했으며, 유해도 확인했고, 블랙박스 1개를 수거했다. 심해수색의 경험이 전무한 우리나라에서는 이것만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뒤 2차 심해수색을 통해서 유해도 수습하고, 3D 영상촬영을 통해서 침몰 원인을 규명하여 “선박 안전성을 향상할 수 있는 단초”로 삼자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제시되었지만, 매번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예산이 편성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과제 미루면 미래에 떠넘기는 꼴

6년 전의 3월31일을 기억하자는 것은 중대안전사고의 나라, 참사공화국에서 벗어날 단호한 조처가 필요해서다.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 작업이 지속되어야 하고,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수색도 진행되어야 하는 이유도 그곳으로 귀결된다. 현재의 과제를 미루기만 하면 10·29이태원참사처럼 중대안전사고는 계속될 것이고, 안전한 나라는 요원해질 것이며, 미래에 문제 해결을 떠넘기는 꼴이 되고 만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6년, 세월호참사 9년을 앞둔 이 나라에서 이에 대한 응답을 바라는 것은 헛된 바람일 뿐인가. 그래도 누군가는 기억하고 요구해야 할 것 같아서 이 칼럼을 쓴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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