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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이선의 인물과 식물] 돔 페리뇽과 코르크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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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술을 즐겨 마신 적이 있지만, 여러 이유로 간헐적 단주 중이다. 잠시 술을 잊고 있다가 얼마 전 이웃에 사시는 청매 선생 덕분에 돔 페리뇽을 맛볼 수 있었다. 말로만 듣던 돔 페리뇽을 마주하니, 모두가 기쁜 빛이 눈에 비치고 입꼬리가 올라갔다. 톡 쏘는 청량감과 함께 부드러운 목 넘김도 좋았다. 은은하면서도 복잡한 온갖 과일향이 어우러져 입안뿐 아니라 머릿속까지 상쾌한 느낌이 들었다. 포르치니버섯 모양을 한 코르크 마개 때문일까. 버섯향도 슬쩍 숨어 있는 것같이 느껴졌다.

돔 페리뇽은 발포성 와인인 샴페인의 이름이자 그 샴페인을 처음 제조한 수도사의 이름이기도 하다. 프랑스 북동부 샹파뉴 지방의 수도사였던 그의 본명은 피에르 페리뇽. 수도원에 헌신한 업적을 인정받아 존칭을 붙여 돔 페리뇽이라 불렸는데, 그것이 곧 브랜드명이 되었다. 품질 좋은 와인을 위해 그는 여러 품종을 혼합하여 새로운 와인 생산에 심혈을 기울였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발포성 와인이다.

그 후 샹파뉴 지방에서 생산되는 발포성 와인만을 샴페인이라고 했으며, 그중 돔 페리뇽을 으뜸으로 쳤다. 루이 14세의 식탁에도 올랐으니, 품질을 인정받은 셈이다. 그는 이전에 나무나 헝겊, 또는 가죽을 병마개로 사용했던 것을 신축성 있는 코르크로 바꾸고 철사 조임을 처음 고안한 사람이기도 하다.

코르크 마개의 원료가 되는 나무는 코르크참나무(Quercus suber)다. 종소명 ‘수베르’는 라틴어로 코르크를 뜻한다. 서유럽에 자생하는 상록수인 코르크참나무는 수령이 20년은 넘어야 코르크를 채취하며, 대략 10년 주기로 수확할 수 있다. 죽은 세포로 이루어진 코르크는 밀랍 같은 물질인 수베린을 함유하고 있어 물과 공기를 거의 통과시키지 않는다. 특히 샴페인에 사용되는 코르크는 품질이 좋아 단단하고 탄력이 있으며, 윤기도 흐른다. 타닌이 포함된 코르크는 와인에 풍미를 더해주니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다.

한편 방패와 샴페인 잔을 연상케 하는 돔 페리뇽 레이블은 튤립꽃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돔 페리뇽이 탄생한 17세기, 튤립은 유럽에서 부와 사치의 상징으로 광풍을 일으켰던 꽃이다. 게다가 왕을 상징하는 금색을 배경으로 수도사의 복장을 의미하는 검은색 글씨가 조화를 이루는 엠블럼은 화려하면서도 위엄 있는 자태를 뽐내며 호사가를 유혹한다.

돔 페리뇽 한잔에 루이 14세가 될 수는 없으나, 잠시나마 눈과 입이 호사를 누린 주말이었다.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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