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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세금 알바’로 버티는 고용, 착시 걷어내고 제대로 봐야[광화문에서/박희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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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박희창 경제부 기자


올 들어서도 고용을 떠받치고 있는 건 60세 이상 고령자다. 지난달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31만 명 늘었지만 60대 이상을 빼면 오히려 10만 명 넘게 줄었다. 60세 이상 고령층의 고용률은 전년보다 1.5%포인트 올랐다. 전체 고용률 상승 폭의 3배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임금을 주는 직접 일자리를 늘린 영향이 컸다. 정부는 올 1분기(1∼3월)에만 직접 일자리로 92만 명 이상을 채용한다. 직접 일자리 사업의 70% 이상은 노인 일자리다.

“앞에서는 안 한다고 해놓고 뒤돌아선 엄청 열심히 하고 있다”는 한 연구기관 관계자의 말대로다. 정부는 지난해 ‘세금 아르바이트’라는 비판을 받아온 직접 일자리를 줄이기로 했지만 올해 예산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채용 인원은 늘었다. 그중에서도 노인 일자리 사업 규모는 전년보다 3만8000명 증가했다. 노인 표를 의식한 여야와 정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고용 한파가 예상된 상황에서 통계상 ‘취업자’로 분류되는 이들을 늘리라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정권이 바뀌어도 여전한 ‘셀프 고용’을 보며 떠오른 건 문재인 전 대통령의 ‘일자리 상황판’이었다. 2017년 5월 말 대통령 집무실에 지표 18개가 실시간으로 취합되는 상황판이 설치됐다. 일자리 현황을 보여주는 지표들뿐만 아니라 임금 상승률, 저임금 근로자와 비정규직 비중 등 ‘소득 주도 성장’과 ‘비정규직 제로(0)’ 관련 지표들도 표시됐다. 상황판이 설치된 날 문 전 대통령은 “재벌 그룹의 개별 기업별로 일자리 동향을 파악할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그때 썼던 취재 수첩을 들춰 봤더니 한 교수의 평가가 눈에 들어왔다. “해외 토픽감이죠. 일일 재해 보고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나라들은 일자리에 관심이 없어서 우리처럼 안 하는 게 아니잖아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의원이었던 2017년 6월 김동연 전 기재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대통령이 숫자를 이렇게 하나하나 세고 있으면 공무원들은 숫자의 노예가 된다”며 “이것이 무언의 압력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 작용 과정은 알 수 없지만 무언의 압력이 ‘통계 조작’ 의혹과 아예 무관하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한훈 통계청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이달 10일까지 감사원에서 3차 연장 감사를 했는데 지금은 철수한 상황”이라며 “실지감사(현장감사) 연장 통보는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감사원은 지난해부터 문재인 정부의 통계 조작 의혹에 대해 통계청에 대한 실지감사를 벌여 왔다. 한 청장은 “5개월 넘게 통계청 직원들이 고생이 많았다”고 했다.

셀프 고용으로도 ‘취업자 증가 폭 플러스(+)’를 지키기 힘들 때가 다가오고 있다. 경기 부진으로 올해 안에 취업자 수는 감소세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상반기(1∼6월) 취업자가 전년보다 9만 명 늘어나는 데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는 착시 효과를 걷어낸 고용 시장과 마주할 준비가 돼 있을까. 지금처럼 ‘고용 절벽’ 같은 단어가 언론에 등장하는지에 더 신경을 쓴다면 ‘통계 마사지’ 유혹은 또다시 고개를 들 수밖에 없다.

박희창 경제부 기자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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