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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대통령 한 명 더 뽑자'고 하면 尹대통령은 좋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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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기자(nowhere@pressian.com)]
△ 2024년 총선을 앞두고 국회가 선거제도 개편 논의를 시작했다. 어느덧 4년마다 되풀이되는 익숙한 풍경이다. 김진표 국회의장 산하 자문기구가 만든 3가지 안(案)이 지난주 국회 정치개혁특위 소위원회 제안으로 확정됐고, 국회는 27일부터 이 제안을 국회 전원위원회에 부쳐 토론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국민의힘 지도부가 돌연 제동을 걸고 나섰다. 정개특위 소위가 전원위 안건으로 정한 3가지 안 가운데 2가지가 의원 정수 확대를 전제한 안이라며 이에 대해 반대한다고 한 것이다. 김기현 대표는 "절대 증원하지 않겠다. 의원 수 늘리는 안은 상정 가치조차 없다"라고까지 했다.

불과 지난주 금요일에 여야 합의로 전원위에 제안된 3개 안을 갑자기 월요일에 뒤집은 배경이 무엇일지 정치권에서는 추측이 분분하다. 이날자 <조선일보>와 <서울신문> 등 일부 언론에 "밥그릇 챙기기", "국민 빠진 의원 늘리기" 등 자극적 비판이 실린 상황이나, 홍준표·조경태 등 여당 소속 일부 정치인이 소리높여 반대를 외치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야당 일각에서는 '용산 대통령실이 배후 아니냐'는 섣부른 의심까지 나온다.

초당적 '정치개혁 2050' 모임도 정개특위 소위 안에 대해 일부 비판을 하고 있는 만큼, 전원위를 거치면서 지역구 의원 축소 등 현재의 정개특위 소위 안이 수정·보완돼야 할 지점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의원 정수 확대는 논의 대상이 될 가치조차 없다'는 식의 주장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심지어 여론의 반향을 얻고 있는 상황은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 역사를 되돌아보면, 공화정 시절 로마는 원로원 정원을 300명에서 600명으로 한 차례 늘렸다. 민중파를 무력으로 진압한 원로원파의 독재자 술라는 원로원에 신진 세력을 수혈하고, 이탈리아 반도를 넘어 지중해 전역으로 넓어진 세력권에 걸맞는 국가 지도층 규모를 확보하기 위해 의석 수를 두 배로 늘려 원로원을 강화하려 했다.

그런데 원로원의 권위에 도전한 민중파의 카이사르도 독재관이 된 후 원로원 정원을 다시 900명으로 늘렸다. 카이사르의 개혁은 술라와는 정반대로, 원로원의 위상을 낮추기 위한 것이었다. 삼두정치 등 능력을 갖춘 소수가 국정을 끌어가고, 원로원은 자문역에 그치면 된다는 게 '공화정 로마'를 '로마 제국'으로 바꾸려 한 카이사르의 생각이었다. 실제로 카이사르의 이름은 후에 '황제'라는 뜻의 일반명사가 된다. 독일의 카이저, 러시아의 차르는 모두 그의 이름이 어원이다.

2024년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정원은 몇 명이 적당할까? 현재 300명인 국회의원 정원을 350명으로 늘리자는 국회의장 자문기구의 안은 의회파인 '술라'와 대통령제 강화론자에 가까운 '카이사르' 중 누구의 제안에 가까울까?

△ 현대사회의 복잡성과 다루는 예산·정책의 다대(多大)함은 의회의 정원을 늘릴 필요성을 제기한다. 의원 1인이 대표하는 유권자 수가 17만 명으로 독일(13만), 프랑스(7만) 등 다른 OECD 국가(평균 8만)에 비해 적은 상황도 그렇다.

그 반대 편에서는 미국은 상하원 양원을 합쳐 의원 1인당 63만 명이라는 사례를 들어 "80명이면 충분하다"(홍준표)라고 한다. 사실 의장 자문기구나 정개특위 소속 의원들의 입장조차도 '정수 확대가 바람직하다'는 쪽보다는, '현역의원 반발 때문에 지역구 의원 수를 줄이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니 비례대표 의원 수를 늘려 선거의 비례성을 보장하려면 어쩔 수 없이 정수를 늘릴 수밖에 없다'는 쪽에 가깝다.

양쪽 주장이 모두 일리가 없지는 않다. 다만 의원 수를 늘리는 것이 '정치인 밥그릇 보장'이고 심지어 '국고를 축내기 때문에 안 된다'는 식의 선동은 생산적인 정치개혁 논의의 일익을 이룬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현재 국회의원들의 직무수행에 대한 여론의 평가는 상당히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같은 평가가 '정수 확대 반대'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흐름은 모순적이기까지 하다. 오히려 현재 국회의원들이 잘하고 있다면 지금의 정수를 유지하거나 줄여도 충분할 테고, 잘못하고 있다면 그 수를 늘려 새 피를 수혈하고 의원들 간의 경쟁을 유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 국회의원 정수 논의는 구조상 택시·의대 정원 논란과도 닮아 있다. 현재 택시기사이거나 의사인 이들은 숫자를 늘리자는 주장을 아주 싫어한다. 반대로 이들이 가진 '기득권'을 더 다수에게 나눠줘서, 교통·의료 소비자들이 더 질좋은 서비스를 받게 하자는 것이 다수 대중의 생각이다. 그런데 국회의원 정수 논의에서는 거꾸로 '정치를 잘 못하니 의원 수를 줄이자'고 하는 주장이 다수를 형성하고 있는 상황은 아이러니다.

대법관의 권위는 3000명의 판사 중 단 14인이라는 소수에서 나온다. 헌법재판관은 '9인의 현자'로 불린다. 만약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을 20~30명으로 늘리면 이들 한 명 한 명이 가지는 권위와 대표성은 떨어질 것이다. 3214명인 판사 수도 전체 인구에 비해서나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소수라는 지적이 많다. 판사 수를 늘려야 판사 한 명이 처리해야 할 재판 건수가 줄어들어 사법 서비스의 질이 향상될 것이라는 주장이 꾸준히 나오는 이유다.

공화정 로마의 국정 최고 책임은 집정관 2명이 공동으로 졌고, 제정 시대에는 1명의 황제가 이들의 역할을 대신했는데 공화주의자들은 이를 '독재'로 규정하고 꾸준히 '제정 타도, 공화정 복귀'를 주장했다. 만약 대통령 1명을 2명으로 늘려 1명을 더 뽑자고 하면 과연 윤석열 대통령은 좋아할까 싫어할까? 대통령을 2명으로 늘리는 게 '대통령 밥그릇 강화'일까?

덧붙여. '의원 수를 늘리면 그만큼 세금이 더 들지 않느냐'는 걱정도 있지만, 의원과 보좌진 8명 등 1개 의원실이 쓰는 예산은 1년에 5~6억 원이고 이들이 심사하는 정부 예산은 한해 600조 원이 넘는다. 감당 못 할 비용도 아니거니와, 심지어 이미 국회의장을 포함해 정치개혁을 주장하는 정치권·시민단체 인사 거의 전부가 '의원 수를 늘려도 국회 예산은 동결하자'고 하고 있다. '혈세 낭비' 걱정은 할 필요가 없거나, 최소한 과하다는 얘기다.

프레시안

▲이탈리아 화가 빈센초 카무치니가 그린 '줄리우스 시저 암살'.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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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기자(nowhere@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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