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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단독]‘선언’에 그친 ‘아파트 경비원 보호’ 조례…2곳 중 1곳은 구체적 사업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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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노동센터 보고서 보니

245개 광역·기초 지자체 중

지원 조례 제정 100여곳 추정

관련 사업 진행은 51곳 그쳐

경향신문

20일 오전 강남구 대치동의 한 아파트 앞에서 관리자의 ‘갑질’을 폭로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원을 추모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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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갑질을 방지하겠다며 전국 100여개 지방자치단체가 아파트 노동자 인권 조례를 만들었으나 절반 가량은 구체적인 사업이 뒤따르지 않은 선언적인 수준에 그친 것으로 분석됐다.

최근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갑질’과 ‘쪼개기 계약’에 시달리던 70대 경비원이 극단적 선택을 해 논란이 되고 있는데, 공동주택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지방자치단체가 아파트 경비원 처우 개선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이 노원노동복지센터 연구용역을 수행해 작성한 <노원 아파트 노동자·주민 상생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9월 기준 245개 광역·기초 지자체 중 아파트 노동자 지원 조례가 있는 지자체는 100여 곳으로 추정된다. 남 연구위원은 통화에서 “자치법규정보시스템에 ‘공동주택 인권’을 검색하면 약 90개 지자체에 관련 조례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면서 “좀 더 포괄적인 조례에 해당 항목이 포함된 경우 등을 고려하면 100여 곳 지자체에 경비원 인권과 관련한 조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020년 5월 서울 강북구 아파트에서 경비원이던 고 최희석씨가 입주민에게 폭행을 당한 후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각 지자체에서 관련 조례가 우후죽순 쏟아졌다. 그러나 남 연구위원의 분석 결과 조례를 제정한 지자체의 절반 정도만 아파트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실질적인 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남 연구위원이 약 90개 지자체에 관련 사업 진행 상황을 정보공개 청구해 받은 자료를 보면, 서울시를 비롯한 51곳에서만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나머지 지자체는 관련 사업이 존재하지 않아 ‘정보 없음’으로 통보했다.

남 연구위원은 “아파트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고조되고 지자체가 보호 조례를 제정하는 흐름이 생겼으나 경비원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큰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면서 “그마저 진행되고 있는 지원 사업도 대체로 휴게실 개선 등 시설 지원에 국한돼 있으며 지자체별로 예산 편차도 크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지원사업을 하는 51개 지자체 중에서도 아파트 단지 측이 경비원 처우 개선에 나서도록 ‘고용지원금’ 유인책을 시행 중인 곳은 서울시, 부산 수영구, 충남 당진시, 충남 아산시 등 4곳에 불과했다. 서울 자치구 중 경비원 단기 계약 등을 방지할 목적으로 고용지원금을 주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지난 14일 경비원이 사망한 서울 강남구는 아파트 노동자 인권 관련 조례 자체가 없다.

‘쪼개기 계약’은 3개월 미만 단기 계약을 맺은 뒤 이를 반복 갱신하는 것을 말한다. 아파트 경비원 중에는 이런 불안정한 고용형태가 많은데, 이것이 갑질에 취약한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에서 3개월 단위로 계약서를 쓰며 일한다는 박기연씨(66)는 “조회 시간에 분리수거 수당을 늘려달라고 했다가 (관리소장이) ‘어디 경비원이 그런 말을 하느냐’ ‘확 잘라 버릴까보다’라는 말이 돌아와 일주일 내내 속앓이를 했다”면서 “단기로 계약을 맺고 일하기 때문에 항변도 할 수 없었다. 항상 조마조마하다”고 말했다.

지자체가 경비원의 고용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점도 문제다. 2019년 서울시 노동권익센터는 서울 경비노동자 중 근로계약 기간이 3개월 미만인 비율이 30.9%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강서·노원·서대문·성북 4곳 자치구만 대상으로 한 것으로, 실상은 이보다 심각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서울시는 2021년 서울 전역 아파트를 대상으로 경비원 고용현황 전수조사를 시도했으나 관리소장만이 조사 대상이었던 데다 응답률도 낮아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남 연구위원은 “지역에 따라 3개월 미만 단기계약 비율이 절반 이상인 곳도 있다. 비상식적인 계약 방식은 점차 확산하는 추세”라며 “공동주택 관리·감독 주체인 지자체가 주어진 권한 내에서 조금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각 지자체는 공동주택에 대한 지원금을 산정할 때 평가 항목에 ‘단기근로계약 지양’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해당 항목의 배점을 적어도 10점(10%) 이상으로 하는 등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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