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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갑질 의혹' 번진 아파트 경비원 사망…"문제는 간접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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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들 "일주일 사이 두명 사망"
관리소장 "갑질은 일방적 주장" 반박
'고용구조 개선이 근본해결책'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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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아파트 단지에서 70대 경비원이 극단적 선택을 해 논란이 되고 있다. /조소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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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ㅣ조소현 기자] 서울 강남 대치동 한 아파트에서 70대 경비원이 '갑질'을 호소하며 숨진 채 발견됐다. 동료들을 중심으로 아파트 관리사무소 소장의 갑질 의혹이 제기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일각에서는 고용 구조 개선이 근본 해결책이라고 본다.

20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수서경찰서는 지난 15일 오전 박모 씨의 동료 경비원 경비대장 이모 씨를 불러 전날 숨진 박 씨의 구체적인 사망 경위를 조사했다. 이 씨는 박 씨가 숨지기 전 관리사무소장 안모 씨의 '인사 갑질'을 폭로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인물이다.

조사 과정에서 이 씨는 "관리사무소 소장이 경비원들에 여러 차례 시말서를 요구하고 수시로 불러 모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6일에는 박 씨 배우자가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직장 내 괴롭힘 조사 권한이 있는 서울지방노동청 강남지청에도 조사 내용을 통보했다. 경찰 관계자는 "소장이 부당한 업무 지시를 내렸는지 등 전반적인 사망 경위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동료 경비원들 "3개월 내내 시달려" vs 관리소장 "갑질한 적 없어"

이에 앞서 지난 14일 오전 7시 40분쯤 대치동 한 아파트 단지 내 경비원 박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사망 전 동료 경비원들에게 '관리사무소 소장의 갑질 때문에 힘들다'는 유서를 문자메시지로 전송했다.

지난 15일부터 사흘간 아파트 단지 내에는 박 씨 사망 원인이 갑질이라고 주장하는 경비원·미화원 일동의 현수막이 걸렸다. 입주민 장모(63) 씨는 "20년 이상을 이곳에 살았는데, 다들 사이가 좋아 보였다"며 "항상 친절하던 분이셨는데 안타깝다"고 고개를 저었다.

박 씨는 지난 2019년부터 4년간 경비반장으로 일하다 최근 일반 경비원으로 강등됐다고 한다. 아파트 정문과 복도 등에는 경비원들 호소문이 붙었다. 입대의회장(입주자 대표회의 회장) 비호 아래 관리소장의 부당한 인사 조처 등을 견디지 못해 극단 선택을 했다는 내용이다.

호소문에는 '법의 보호와 안심하고 인격을 보장받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일터가 되게 도와달라'는 내용도 있다. 경비원들은 안 소장의 '갑질'에 견디지 못해 지난달 십여 명의 경비원이 다른 아파트로 이직했다고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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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정문과 복도 등에도 동료 경비원들의 호소문이 부착됐다. /조소현 인턴기자


안 소장의 갑질 피해는 처음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해당 아파트 미화원으로 일하던 70대 김모 씨가 지난 9일 심장마비로 자택에서 숨졌다. 숨지기 전날 아파트 청소 용역업체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비원 A씨는 "지난해 12월 부임한 소장이 사소한 것을 빌미로 트집을 잡고 모욕적인 발언을 해 경비원들이 스스로 일을 그만두도록 만들었다"며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사진을 찍고 이름을 적어가 입대의회장에게 전했다"고 말했다.

경비원 B씨는 "나이가 들면 머리가 세는 건 당연한 건데, 볼 때마다 염색하라고 강요했다"며 "지시 사항을 지키지 않았을 때는 서로 고발하도록 지시해 내부 갈등을 조장했다"고 말했다.

미화원 C씨는 "(안 소장이 오기 전에는) 지하실에서라도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안 소장이 온 뒤부터 지하실에서 옷을 못 갈아입게 막더라"며 "미화원들 사이에 불만이 많았다. 지난주에도 미화원 한 분이 돌아가셨다. 일주일 새 2명이 죽은 셈"이라고 말했다.

의혹 당사자인 안 소장은 '갑질'이 없었다는 입장이다. 그는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줬다는 것은 일방적 주장"이라며 "있었다면 (박 씨의) 호소문에 구체적으로 명시됐을 것이다. 한 게 없으니 (해당 내용이) 없는 것"이라고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면서 "트집을 잡은 게 아니라 경비의 기본 업무에 대해 말한 것뿐"이라며 "머리 염색의 경우엔 입주민들의 민원이 많았다. 모자를 쓰라고 지시한 게 전부"라고 해명했다.

안 소장은 해당 호소문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그는 "박 씨가 사망 9분 전 호소문을 경비대장(이 씨)에게 보냈다. 그런데 이 씨가 이 문자 메시지에 대해 '아주 잘하셨네요'라고 답장을 보냈다. 초안을 줬거나 그 전부터 교감이 있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안 소장은 "(이 씨가) 호소문을 대필한 것 같다"며 "(이 씨를) 자살방조죄와 명예훼손죄, 업무방해죄로 고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 9일 발생한 미화원 사망과 관련해서는 "해고한 적이 없다. 그분이 아파서 그만둔다고 했다"고 말했다.

◆'갑질' 여부 수사 진행…"고용 구조 개선해야" 지적도

진실 공방으로 번진 갑질 의혹은 결국 경찰 수사를 통해 실체가 규명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진실 규명과 별도로 아파트 노동자들의 고용 구조 개선이 근본 해결책이라는 목소리가 있다.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은 지난 15일 성명서를 내고 "죽음이 끊이지 않는 것은 간접고용 문제 때문"이라며 "노동자들의 실질 사용자인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가 자신의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용역업체를 통해 노무관리를 대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아파트 노동자들 대부분은 초단기 근로계약을 강요당한다"며 "특히 경비원은 '심신의 피로가 적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감시단속직인데도 감시 업무뿐 아니라 관리업무까지 과중하게 부과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임득균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경비노동자의 '갑'이 되는 사용자는 한 명뿐이 아니다"라며 "경비원들의 직접적인 고용 상대방은 용역업체이지만 현실적으로 관리소장이 업체랑 계약을 체결하기도 하고 압력을 넣을 수 있다. (관리소장이) 부당한 지시를 하더라도 경비원들이 참는 이유"라고 봤다.

이어 "직접적인 고용 상대방이 아닌 관리소장은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을 받지 않는다. 3개월 초단기 근로 계약이 대부분이라 문제 제기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갑질방지법'이라고 불리는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의 실효성도 지적했다. 그는 "법이 개정됐지만 여전히 애매하다"며 "'허용 업무'를 하면서도 갑질을 할 수 있다.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해 추가적인 금지 규정을 마련하고 직접적인 처벌도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ohyu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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