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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광화문] 기부하듯 세금 낸 '세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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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주동 국제부장]
머니투데이

지난해 11월22일 300번째 경사로 만든 것을 기념하는 행사 때 하랄뒤르 소를레이프손의 모습. /사진=본인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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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괴짜 CEO(최고경영자)로 유명한 일론 머스크가 자신이 인수한 트위터의 직원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한 일이 화제였다. '그럴 사람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어서인데, 그러다 보니 상대가 누구인지 새삼 주목됐다. 처음에 직원은 트위터로 자신이 해고된 건지 확인차 물었고, 머스크는 근육위축증을 앓는 그의 장애를 거론하며 조롱하듯 답했었다.

이 직원 하랄뒤르 소를레이프손은 아이슬란드 사람으로 2014년 우에노(Ueno)라는 디지털 디자인 업체를 세웠다. 2021년 트위터는 이 회사를 인수했는데 소를레이프손은 일시불로 인수대금을 받는 대신 자신이 트위터 직원으로 있으면서 월급 형태로 나눠받기로 했다. 머스크가 사과한 건 그를 해고할 경우 남은 거액의 인수대금을 한꺼번에 줘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정확한 인수 거래 내용은 미공개)

궁금한 건 소를레이프손이 왜 인수대금을 월급으로 받았는지다.

이유는 의외로 세금을 '더 내기' 위해서였다. 아이슬란드에서 자본이득에 대한 세율은 22%인데, 그는 최고세율 46%인 소득세를 선택했다.

아이슬란드 언론에 따르면 그는 2021년 나라에서 세금을 2번째로 많이 낸 '세금왕'이었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국영방송 RUV, 영자지 아이슬란드 리뷰 등 이곳 4개 매체에서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최선을 다해 낸 세금으로 주목받은 것이다.

아이슬란드 리뷰에 따르면 그는 "업무적인 면만 떼어놓고 보면 미국이 우위에 있긴 하지만, 삶의 측면에서는 아이슬란드가 더 낫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사회에 대해 실패하면 위험해지는 '두려움에 기반한 사회'라면서 자국의 사회 안전망을 호평했다.

그가 세금을 더 내는 것은 결국 세금으로 안전망을 강화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왔다. 소를레이프손은 휠체어 타는 이들을 위한 경사로 1000개 만들기 캠페인(Ramp Up Iceland)을 진행하고, 지난해 말 300개 완공 기념식에 온 대통령이 목표치를 1500개로 올리는 선순환을 이끄는 등 여러 사회활동도 하고 있다.

어떤 단체에 기부를 할 때 그 단체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할 수 없듯이, 소를레이프손이 나라에 세금을 더 내기로 결정한 데에는 사회에 대한 신뢰가 바탕에 있다. 물론 그가 38만 아이슬란드인을 대표하는 건 아니지만 국민들의 사회 신뢰도가 높은 것은 지표로 확인된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더 나은 삶 지수'(better life index)에 따르면 아이슬란드는 사회 안전망으로 인해 실직할 경우 소득의 1% 손실이 예상된다. 이는 OECD 평균 5.1%과 차이가 있고 OECD 국가 중 가장 낮다. 또 필요한 때 의지할 사람이 있다고 답한 이는 98%였는데 이와 같은 '도움 네트워크'의 질에서 아이슬란드는 1위를 차지했다. 사회·정치적 참여율(최근12개월)도 61%로 유럽연합의 25%보다 월등히 높다.

한국은 실직할 경우 소득의 예상손실률이 2.9%로 나쁘지 않지만, 의지할 사람이 있다고 답한 이가 80%로(OECD 평균 91%) 낮아 도움 네트워크의 질 면에서 41개국 중 38위였다. 사회적 신뢰가 낮은 것이다.

지난 3일은 납세자의 날이었다. 모범납세자들이 상을 받고 수상 연예인을 중심으로 기사도 나왔지만 별 주목은 받지 못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9일 공개한 '한국인의 납세의식 조사'를 보면 8년 전보다 세금에 대한 인식은 개선됐다. 하지만 여전히 3분의 2가량은 세금을 내면 손해 본다(납부액 대비 혜택 수준이 매우+대체로 낮음 63.9%)고 생각하고 있고, 70%는 탈세가 적발될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

고령화가 진행되며 앞으로 더 많은 세금이 사회 안전망에 투입될 가능성이 크다. 잘 쓰인다는 믿음이 없다면 손해 본다는 생각으로 어쩔 수 없이 세금 내는 사람들은 계속 많을 수밖에 없다. 먼 나라의 사례는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준다.

김주동 국제부장 news9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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