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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美, 워런 버핏에 SOS 쳤다" 금융위기때처럼 '백기사' 나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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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가 촉발한 ‘은행 위기’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번지는 걸 막기 위해 2008년처럼 대형 금융사들이 ‘백기사’로 나서기 시작했다. 미국과 스위스 당국의 개입에도 부실 은행을 중심으로 자금 이탈이 계속되자 금융업계가 방파제 구축에 나선 것이다. 세금으로 금융사 구제에 나서는 것만은 피하고 싶어하는 미·유럽 당국도 적극적으로 대형 금융사에 손을 내밀고 있다.



“UBS, CS 인수 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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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디트 스위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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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UBS의 크레디트스위스(CS) 인수 합의가 19일 이뤄지거나 그 전에 성사될 수 있다”고 밝혔다. CS가 스위스 중앙은행에서 70조원의 유동성을 지원받은 뒤에도 불안이 가시지 않자 매각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UBS는 CS와 함께 스위스 양대 은행으로 꼽히는 대형 투자은행(IB)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는 UBS가 구제금융을 받고 CS는 정부 지원을 거절했다.

로이터통신은 “UBS가 CS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60억 달러(약 7조9000억원) 규모의 정부 지급보증을 요구했다”고 했다. CS를 인수하면 일부 사업을 접거나 축소할 가능성이 큰데, 이에 따른 비용과 소송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란 게 UBS의 설명이다.

CS는 관리 자산 규모만 한화로 2000조원이 넘고, 직원은 전 세계적으로 5만여 명에 달한다. 만약 파산하면 제2의 리먼 브러더스와 같은 핵폭탄급 충격을 금융계에 줄 수 있다. 이 때문에 스위스 당국도 UBS가 CS를 신속히 인수할 수 있도록 비상절차 마련에 들어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JP모건이 베어스턴스와 워싱턴 뮤추얼을 인수하면서 ‘백기사’ 역할을 자처했었다.



“미국도 워런 버핏에 ‘S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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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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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겪고 있는 미국 은행들도 대형 금융사에 ‘SOS’를 치고 있다. 18일(현지시간) 블룸버그는 “조 바이든 정부의 고위 관료들이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과 접촉 중이다”라고 보도했다. 버핏 회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위기를 겪은 골드만삭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에 각각 50억 달러(약 6조5000억원)를 투자하며 ‘구원투수’로 나선 적이 있다. 블룸버그는 2008년과 마찬가지로 “버핏이 (위기를 겪는) 미국 지역 은행에 투자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트위터엔 퍼스트리퍼블릭(FRC) 등 파산 위기에 몰린 지역 중소은행 최고경영자의 전용기 약 20대가 버핏 회장의 자택이 있는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 착륙했다는 내용의 게시물들이 올라왔다.

앞서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도 ‘월가의 황제’로 불리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에게 파산설이 돈 FRC에 대한 지원을 직접 요청했다. 다이먼 회장 주도로 JP모건체이스 등 미국 11개 주요 은행이 총 300억 달러(약 39조원) 예금을 FRC에 예치하면서 진화에 나섰지만, 추가로 주가가 24% 하락하는 등 위기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싼 예금’으로 미국채 투자, 리스크 키워



사태 진화를 위해 대형 금융사까지 나선 것은 연방준비제도(Fed)의 급속한 금리 인상의 여파가 은행권에 예상을 뛰어넘는 부담을 주고 있어서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 만들어진 저금리와 ‘싼 예금(cheap deposits)’에 익숙한 은행들은 Fed의 급속한 기준금리 인상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위기를 더 키웠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미국채에 대한 투자 실패다. 코로나19 당시 낮은 기준금리와 금융당국의 대규모 양적 완화 등에 힘입어 은행의 자금 조달 비용도 크게 떨어졌다. 이 때문에 은행들은 사실상 공짜에 가까운 ‘싼 예금’을 가지고 안전하다고 평가받는 미국채 등에 투자해 손쉽게 수익을 냈다. FT는 “2020년 4월부터 약 4조2000억 달러(약 5500조원)의 예금이 미국 은행에 쏟아졌는데, 10%만이 새로운 대출 자금으로 쓰였고 약 2조 달러(약 2620조원)는 주로 채권으로 유입됐다”고 했다.

문제는 Fed가 지난해부터 기준금리를 본격적으로 올리자 미국채 가격이 폭락(국채 금리는 인상)하면서 시작했다. 실제 미국 금융당국은 SVB처럼 미국 전체 은행이 국채로 입은 미실현 손실이 지난해 말 기준 6200억 달러(714조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예금 대안 찾아 ‘머니무브’



SVB 사태가 은행 예금보다 더 수익이 높고 안전한 자산으로 ‘머니무브’를 촉발하고 있는 것도 사태 해결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기준금리가 오르면서 더 이상 낮은 이자를 받고 은행에 예금을 예치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마이크 윌슨 모건스탠리 최고투자책임자는 “은행 예금주들이 다른 곳에서 훨씬 더 나은 금리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늦게 깨달았다”며 “최근 예금주들이 기존 은행에서 돈을 인출하여 머니마켓펀드(MMF)·양도성예금증서(CD) 등 수익률이 높은 증권에 투자하기로 결정하면서 상황이 바뀌고 있다”고 했다. 실제 올해 들어 MMF로 순 유입된 자금은 2500억 달러(약 327조3750억원)로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 2분기 이후 가장 많다. 이 같은 예금의 이탈은 특히 자금력이 부족한 지역 중소은행과 부실 은행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2008년급 위기 징후는 아직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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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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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최근의 은행 위기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급으로 확산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일부 미국 지역 중소은행 규제에 허점이 있었다는 게 발견되긴 했지만, 2008년 이후 규제 강화로 미국 은행권의 건전성은 전반적으로 개선됐다는 평가다.

특히 부동산 등 부실 자산에 대한 투자 실패로 금융권 위기를 초래한 2008년과 달리 최근 은행에 손실을 준 미국채는 만기까지만 보유한다면 원금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에 성격이 다르다는 분석이다. 뉴욕타임스(NYT)는 “2008년 스타일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징후는 거의 없다. 은행 시스템은 당시보다 더 강력하고, 예금 보험, 유동성 라인을 통해 전염을 막으려는 노력은 비록 도덕적 해이를 야기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 평온을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다만 SVB처럼 일부 특수한 사례에서 발생한 위기가 또 다른 위기를 불러올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제2의 워런 버핏’으로 불리는 빌 애크먼은 최근 미국 대형은행이 FRC를 지원하기로 나선 것과 관련해 “FRC를 살리기 위해 위기가 금융권 전체로 번지게 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했다.

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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