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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단독] ‘과학방역’ 환기, 가이드라인에 예산·인력 계획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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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기 가이드라인’ 보고서 입수

의료기관 7곳 중 5곳 시설 미흡

‘1시간 2번 환기’ 정량기준 마련


한겨레

지난 2021년 3월9일 광주광역시의 한 요양병원에서 비대면 면회가 이뤄지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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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과학방역’ 일환으로 요양병원 등 취약시설의 집단감염 예방을 위한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요양병원 환기실태와 구체적 환기 기준을 담은 정부 보고서가 나왔다. 지난해 4월 윤석열 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코로나19 비상대응 100일 로드맵'을 발표한지 11개월만이다. 정부는 보고서를 토대로 올 하반기까지 환기·공조시설 설치·운영 가이드라인을 만들 계획이다. 하지만 강화된 환기 기준을 이행할 인력과 이를 위한 예산 제안은 보고서에 빠져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한겨레>가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의료기관 감염위험 최소화를 위한 시설규격 개선 연구’ 보고서를 보면 의료기관의 환기시설 실태는 심각한 수준이다. 국립중앙의료원(NMC)이 복지부 연구용역을 받아 환기 실태조사를 벌인 의료기관 7곳(요양병원 5곳·병원 2곳) 가운데 △환기 설비가 설치됐고 △내·외부 공기가 순환하도록 급·배기 기능을 갖춰 ‘적정’ 평가를 받은 곳은 요양병원 2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병원 2곳과 요양병원 3곳은 ‘미흡’ 평가를 받았다. 병원 2곳은 입원실에 환기설비가 없어 창문을 여닫는 자연환기 방식으로 운영됐고, 요양병원 3곳은 환기설비는 있지만 외부 공기가 내부로 들어오는 ‘급기’ 기능이 없었다. 보고서는 “창을 복도 쪽으로 설치하거나 병실 문을 개방해 환기할 경우 맞은편 입원실로 감염원이 전파될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보고서는 “자연환기 방식은 환기량 유지·제어가 어렵고, 여름·겨울철 실내온도 유지를 위해 환기횟수가 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다”며 “창을 복도 쪽으로 설치하거나 병실 문을 개방해 환기할 경우 맞은편 입원실로 감염원이 전파될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한겨레

복지부의 ‘의료기관 감염위험 최소화를 위한 시설규격 개선 연구’ 보고서에 담긴 한 병원의 환기시설 실태. 병원 입원실 안에 환기 설비가 설치되지 않으며, 화장실 창문이 복도쪽으로 설치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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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2003년)와 메르스(2015년), 코로나19 유행(2020년) 등 감염병 유행을 거치며 의료기관의 환기설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정부가 대표 감염취약시설인 요양병원을 방문해 환기실태를 점검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 책임자인 김태윤 국립중앙의료 공공의료 사업지원팀장은 “조사 대상인 5곳은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립 요양병원이라 그나마 현장조사가 가능했다”며 “민간 요양병원 상당수는 작고 영세해 환기 수준이 더욱 열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열악한 환기시설은 집단감염을 유발하고, 고령층 등 감염취약계층의 사망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9월 기준 전체 코로나19 사망자 2만8140명 가운데 요양병원 사망자는 7246명으로 25.7%를 차지했다.

보고서는 열악한 환기실태를 개선하기 위해선 현재 모호한 ‘의료기관 환기시설 기준’을 정교하게 바꿔야 한다고 제언한다. 시간당 환기횟수 2회 이상 실시와 외기도입 및 배기 가능 시설 설치 의무화를 의료법에 명시하자는 것이다. 시간당 환기횟수란 1시간 동안 공급되는 공기량의 교환 횟수로, 1인당 1시간에 36㎥ 체적(부피)의 내부 공기를 외부 공기가 2번 교환될 수 있는 설비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현재 의료법 시행규칙은 환기시설을 설치하도록 하고 있지만 어떤 설비로 어떻게 환기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고 있다.

정량적인 환기횟수(시간당 2회)를 강제했다는 점에서 의미있지만, 이를 위한 인력 기준과 예산 제안은 빠져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고서가 해당 기준을 지기키 위해 제안한 방법은 △정기적인 평가제도 마련 △관리자 교육 △상시 모니터링이 전부다. 2016년 처음 국내 의료기관의 환기 기준을 제안한 성민기 세종대 교수(건축학과)는 “환기설비는 설치 기준보다 이후 설비를 제대로 운영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이 더 중요한데 이를 위해 필요한 인력 등 기준이 좀 더 구체적으로 제안되고 의무화됐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짚었다.

보고서에서 기존 시설은 물론 새로 짓는 기관에도 적용하기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재갑 한림대 교수(감염내과)는 “대부분 요양병원은 단독 건물이 아닌 건물을 임대한 세입자이기 때문에 환기설비를 설치하거나 바꾸고 싶어도 건물주가 허락하지 않으면 쉽지 않고, 공사 기간 환자를 옮기는 문제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크다”며 “기존 기관들도 환기설비를 개선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와 더불어 이를 위해 필요한 예산 마련 계획 등이 5년·10년 등 장기적으로 제안됐어야 한다”고 짚었다.

복지부는 이 보고서를 토대로 올해 상반기까지 의료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입법 예고하고 하반기까지 환기·공조시설 설치·운영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예산마련은 커녕 의료기관과 협의조차 시작하지 못한 상황이다. 박미라 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장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해당 보고서에 대한 내부 검토가 끝난 뒤 병원협회 등 관련 단체와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장기요양보험이 지급돼 공적인 기능이 있는 요양원과 달리 요양병원은 환기 관련 예산을 확보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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